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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가해자 김기춘의 최후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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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25일은 블랙리스트 사건 파기환송심 최종심리기일이었다. 서울고등법원 302호에서 3시 50분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충분히 변론하고자 하는 피고인측 요청으로 3시 30분으로 앞당겨졌다. 하지만 앞선 강도상해와 건조물침입 재판이 길어지는 바람에 실제 재판은 4시가 훌쩍 넘어서 시작했다.

 

재판 전 피고측은 '무죄'를 주장하면서 밤을 새서라도 이번에 재판을 끝내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하지만 파기환송심 최종심리기일의 최후변론은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변론에 무게를 두고 같은 주장을 되풀이한 것은,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확신하면서 '역사'에 '낱낱이' 기록을 남기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검찰은 피고 김기춘에게 7년을, 피고 조윤선에게는 6년을 구형했다.

 

변호인단은 보수의 이념은 균등기회와 자유경쟁이고 진보는 분배및 결과의 평등을 주장한다고 하면서, 그래서 보수정권이 국가보조금을 낭비없이 공정 집행하는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99%의 영화인이 좌파라는 진술도 있었다면서, 그래서 이를 바로잡고자 한 것이고 출판 등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에 덧붙여, 파기환송이라 유죄 부분이 1/3로 줄었고, 고령이며 중환자인 점, 그리고 다른 유관자들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징역 1년 이하를 요청했다. 징역 1년이 선고되면, 피고 김기춘은 다시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된다. 

 

피고인 김기춘은 피피티 파일로 작성한 변론문을 화면에 띄우고 직접 최후변론에 나섰다. 그의 목소리는 피고인단 가운데 가장 크고 명료했다. 

 

변론은 재판과정에서 계속 반복된 내용이었다. 투표로 당선된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에 맞춰 실행한 직무이며 통치행위라는 것, 애초에 수사 구성요건이 안된다는 논란이 계속 있었다는 것, 1급공무원에게 사표를 강요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라는 것 등의 요지였다.

 

김기춘 피고인은 "여기서 밝혀지지 않으면 역사의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라고도 하였다.

 

 

형식적으로 그의 주장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 '통치행위'가 정치인이 아닌 문화예술인을 대상으로 행해졌으며, 지침과 기준 혹은 운영 방식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찍어내기가 행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행위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것이 블랙리스트이다. 분단국가이며 이념갈등이 엄연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있는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치자. 하지만 분단과 이념을 핑계로 통치행위를 확대, 과장, 왜곡하여 적용하고 현미경을 들이대 통제하려 한다면 그것은 명백하게 블랙리스트이며 검열이다. 

 

7년 동안의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들은 '통치행위'와 블랙리스트의 차이조차 배우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은 사과는 커녕, '유감'이라는 말조차 하지 않고 무죄와 억울함을 주장했다. 블랙리스트 행위에 대한 반성이나 부끄러움은 커녕, 직무수행에 대한 정치보복일 뿐 자신들은 무죄라는 주장과 논리를 '역사에 기록'하고자 하였다. 

 

유일하게 '반성'이란 말이 나온 것은 김소영 피고에 대한 변론이었다. 변호인은, 반성 속에 진행되는 첫 사례라고 하면서, 김소영 피고인이 다른 직무에도 충실했고 특히 블랙리스트 적용사례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점을 감안해 감형해 달라고 하였다. 블랙리스트 사건을 그동안의 관행에 대한 '반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유일하게 부각시킨 변론이었다.

 

분노에 찬 변론도 있었다. 신동철 피고인은, "인생 참 더럽고 허망하구나"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그만 끝내길 바란다고 하였다. 무죄를 주장한 정관주 피고인은 문체부 직원에게 면목이 없다고 하였다. 국민의 지지로 탄생한 정부의 가치실현을 법적으로 판단하려는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면서 더이상 이런 악순환이 없기를 바란다는 변론도 있었다.

 

김문희 변호사는 김기춘 피고인이 얼마나 흐트러짐 없고 유능한 사람인지 그 경력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장황하게 늘어놓은 뒤, 이 재판은 그의 범죄가 아니라 극단적 정치투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선악이분법적 구분 자체가 잘못이라면서 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 모두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하였다. 

 

조윤선 피고의 변호인은, 조윤선 피고가 문체부 장관 시절 진보성향 예술인에 대한 지원도 많이 했다고 하면서 선처를 구했다. 피고의 책임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었다는 것은 모든 행위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논리는 파기된 것이니 그 취지를 존중하여 판결해달라고 하였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불완전한 수사는, 파기환송을 불렀고, 처벌되지 않은 사례를 남겼고, 바로 그 사례가 형평성을 침해하니 감형해 달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는 악순환을 불렀다. 하지만 '통치행위'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블랙리스트 행위'는 명확히 다르며, 구체적으로 사람을 적시하여 찍어내는 일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되었다. 직무에 충실하고 지시에 따른다는 말의 허구성과 고위공직자의 복무원칙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피고인이 된 고위직 공무원들은 '국정기조와 가치실현을 위해' '그저 주어진 업무를 했을 뿐' 이라는 입장을 계속 고수하며 현실과 무관하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옛날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을 선택했다. 

 

2015년 9월 박근혜 정부의 연극 검열 사실을 최초로 폭로해 문화예술계 검열 징후를 세상에 알리고, 2018년 진상조사위 활동이 종료된 후에도 블랙리스트 백서 작업에 몰두했던 김미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2019년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 씨알도 안먹힐 분위기가 두루 조성돼야 한다"라고 하였다. 아직 충분하지 않지만 시작이 반이길 기대한다.  

 

선고공판은 12월 6일 오후 1시 40분으로 예정되었다. 재판부는 파기환송심이기 때문에 그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피고인들에게 중복되는 의견을 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보고 나면 똑같은 내용이다"라고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