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큰 손 MZ세대에게 '먹히는' 미술품은?

URL복사

상당수가 딜러이자 컬렉터로 10년 내 재판매하기도
회화 작품, 해외갤러리와 옥션, 어드바이저 통한 구입 선호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젊은 컬렉터"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젊은 사람이, 저가도 아닌 고가의, 부동산도 아닌 미술품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실체가 궁금할 즈음,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한국 MZ세대 미술품 구매자 연구>라는 것을 내놓았다.


설문 응답자 1361명 가운데 구매자는 809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MZ세대는 404명 XB세대가 409명으로 각각 절반을 차지했다. 구매 총액은 XB세대가 높았다. XB는 베이비부머(B)세대와 베이비부머직후(X)세대를 아우르는 말로, 현재 절정의 경제력을 가진 세대이다. 따라서 실구매는 MZ세대보다는 XB세대에서 높다. 하지만 나이를 감안하면 MZ세대의 구매잠재력이 높이 평가된다.  

 

MZ세대 상위 구매자의 높은 미술품 구매력 

 

MZ세대 구매자 404명 가운데 지난 3년간 미술품 구매 총액이 1억 원을 넘는 사람은 20%에 달했다. 연구에서는 이들을 MZ세대 상위구매자라고 한다. MZ세대 상위 구매자의 20%는 지난 3년 간 5억원 이상의 미술품을 구매했다. 여기에는 10억원 이상, 50억원 이상 구매한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당연히, 구매한 작품 수도 많다.

 

 

개별 작품 구매가로 보면, MZ세대의 대부분은 500만원 미만 작품을 구매하였다. 그러나 MZ세대 상위 구매자는 1천만원 미만의 작품을 구매한 사람은 20% 미만이었고, 이들이 가장 선호한 작품은 1억~3억원이었다. MZ세대 상위 구매자 가운데는 미술품 1점에 투자할 가용금액이 30억원이라고 답한 경우도 있다. 

 

미술품의 의미보다는 금전적 가치 중시

 

전 세대가 공히 '작품이 좋아서' 구입한다. MZ세대는 ‘공간 인테리어’ 목적과 '작가 후원' 목적도 XB보다 강하고, 특히 ‘장/단기 투자’ 목적과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함'이라는 답변도 많다. MZ세대에게 미술품은 복합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대상이다.

 

MZ세대 미술품 구매자 중 상당수가 딜러이자 컬렉터의 형태를 보인다. 작품이 좋아서 샀다는 MZ세대 상위 구매자 2명 중 1명은 지난 10년 사이에 재판매 경험이 있었다. 작품 구매가 단기적 수익 창출로도 연결된 셈이다. 

 


이들은 어떤 작품을 좋은 작품으로 볼까? 이들이 작품 구매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은 것은 시각적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이는 예술적 심미안이라기보다는 장식적 가치에 가깝다. 이런 면에서 MZ세대의 미술품 투자가 "미술의 본질적 가치와 컬렉션의 다양한 의미보다는, 투자적 가치 혹은 시장적 가치에 편중되어 있다"는 말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MZ세대 상위 구매자는 작가의 성장 가능성, 투자가치, 작품의 학술적 미술사적 가치, 보관 및 관리의 용이성 등에서 일반적인 MZ 구매자보다 훨씬 높은 중요도를 부여하고 있다. 심미안적 관점이라기보다는 투자적 관점이다.

 

미술품 구입 자금은 어디에서 나올까?

 

설문에 응한 구매자들의 월평균 소득은 확실히 높은 편이었다. 특히 지난 3년간 5억 원 이상의 미술품을 구매한 MZ세대 상위 구매자 가운데 연간 개인 소득이 3억 원 이상인 사람은 41%로 여타 그룹에 비해 월등히 높은 소득수준 경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연간 개인소득 1억 미만인 사람도 30%, 심지어 월 소득 500만 원 미만인 사람도 18%였다. 개인 소득과 미술품 구매 경향이 무관하다는 특징은 모든 세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MZ세대 구매자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미술관여도가 높고, 부모님이 오랫동안 미술품을 구매해 와 자연스럽게 미술품을 접했으며, 비용이 더 들더라도 갤러리나 어드바이저를 통해 작품을 구입하며, 출장이던 여행이던 연 평균 20일 이상 외국에 머문다고 하였다.  

 

몇 년치 연봉을 넘어서는 가격의 미술품 구매가 가능한 것은, 구매와 판매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연봉 이외의 자산이 많다는 말도 된다. 부모님이 미술품을 오래 구입했다거나, 일년에 20일 이상 해외 체류한다는 등의 공통된 라이프 스타일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이유로, MZ세대의 큰 빈부격차가 가져온 극심한 자산의 차이가 미술시장으로도 번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미술품 투자, 미술 시장에 독일까? 득일까?

 

부동산에 대한 대출 규제와 세금 규제가 강화되면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한 미술품 시장에 자금이 몰리는 것은 반복되어 온 현상이다. 게다가 미술시장은 자금출처에 대한 규제도 없고, 필요경비도 높게 인정해주므로 세금, 상속, 증여가 훨씬 자유롭다.

 

실제로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미술품을 구매한다고 밝힌 사람은 밀레니엄과 X세대에서 10.1%였는데, 아직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는 젊은 나이인 MZ세대 상위 구매자들은 10.7%가 자녀에게 물려줄 목적이라고 했다. 

 

물론, 상당수의 MZ세대 상위 컬렉터들은 지난 몇 년간 급격히 상승한 미술품 가격의 혜택을 받아 작품 재판매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창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유한 예술애호가들이 자기 취향에 따라 예술인을 후원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투자의 일환으로 미술 시장에 접근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미술계 다양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고, 주가조작과 유사한 현상이 벌어져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우려된다. 

 


이번 설문에 응한 사람들은 모두 미술품 자산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했다. 특히 MZ 잠재구매자들은 5년 후 미술품 자산 비중을 2.4%에서 9.0%로 4배 이상 늘리고싶어 한다. 하지만 이들의 희망이 현실이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가격이다.

 

미술품 구매 경로와 가격의 관계

 

이번 연구 결과 구매자들의 미술품 가격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다. 특히 잠재 구매자들은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너무 비싸서 구매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금력이 부족해 공예/디자인 작품이나 드로잉, 에디션 등을 중심으로 구매하고 있는데, 가장 선호하는 장르가 회화인 것으로 보아 자금력이 커지면 회화로 옮겨갈 전망이다. 

 

 

보통 젊은 콜렉터들은 아트페어에서 시작한다. 그러다가 관심 작가가 생기면 갤러리나 옥션을 찾는다. 따라서 작품 구매 경험이 많은 MZ세대 상위 구매자는 아트페어 이용비율이 낮고, 시장이 넓어 '적중률'이 높은 해외 시장도 선호한다.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을 때도 MZ세대 상위 구매자는 작가에게 직접 묻거나 아트페어를 찾아다니기보다는 옥션 낙찰 정보나 갤러리와 딜러의 추천을 통한다. 미술 시장 경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 온라인 경매에 대한 선호도는 낮다. 국내 온라인 경매는 상대적으로 저가인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투자 성향이 강한 MZ세대는 인지도가 높은 작품을 '구매하기 좋은' 작품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보고서에서는, "MZ세대 상위 구매자는 투자 가치를 우선시하고, 또한 해외 작품에 대한 구매 의향이 높기에, 해외 작가를 다루는 해외 갤러리와 해외 옥션, 국내 주요 블루칩 작품을 거래하는 국내 현장 경매에서 구매 희망 의사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하였다.

 

넘치는 미술품 구매력, 방향이 문제

 

지난 해 10월 13일부터 17일에 열린 키아프 서울 2021(KIAF, 제20회 한국국제아트페어) 누적 방문객은 8만 8000명이고 판매액은 650억원이었다. 코로나 이전에 비하여 누적 방문객 수는 비슷했지만 판매액은 두 배를 넘었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키아프는 지난 9월 2일부터 6일까지 프리즈(Frieze)와 공동개최하였다. 순방문객만 7만명, 매출은 수천 억으로 추정된다. 특히 프리즈 서울에서는 수 억원, 수십 억원의 작품이 개막 첫 날부터 팔려나갔다. 중국인 고객이 포함되어 있기는 해도, 한국 시장의 미술품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구매력에 세계적인 화랑들도 놀랐다. 반면 키아프는 조용했다고 한다. 지난 해 키아프에 몰렸던 MZ세대들이 프리즈로 쏠린 결과이다. 

 

 

프리즈는 2003년 런던 공원에서 "예술은 백만장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기치 아래 텐트를 치고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시작했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프리즈 성공 뒤에는 탄탄한 토대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을 열어젖힌 미술계의 리더들이 있었다.

 

프리즈는 전문 비평가에 의해 계획된 성공이었다

 

프리즈 아트페어를 시작한 매튜 슬로오버는, 미국의 유명 출판기업 집안에서 태어나 20대 초반부터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진 미술비평가였다. 프리즈를 시작하기 전에 정상급 미술 잡지 <프리즈>를 10년 이상 발행하였는데, 창간호 이전에  발간하는 파일럿 호에 데미안 허스트의 그림을 넣고 그의 인터뷰도 실었다. 데미안 허스트가 학생 시절 기획한 같은 발음의 프리즈(Freeze) 전시회에서 매튜가 그의 작품을 눈여겨 보았었기 때문이다.

 

매튜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큐레이터였고, 사우스 런던 갤러리 이사회 의장이자 터너상 심사위원이었고, 저비용 대용량 에디션 회사를 설립한 기업인이다. 그가 가진 미술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기반으로 젊은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목적으로 프리즈 아트페어를 조직하여 미술 시장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상업화'라는 흐름도 적당히 타면서 말이다.

 

 

한국 미술을 세계화하겠다는 2022 키아프의 전략은, 미술품 구매력이 있는 젊은 컬렉터들의 눈높이를 높여놓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높아진 MZ세대 눈높이의 방향이다. 매튜 슬로오버가 높은 안목으로 젊은 현대미술가들의 생태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듯이, 한국 미술계에서도 MZ세대의 높아진 안목과 구매력이 분출될 방향을 신중하게 제시해야 한다.

 

지금 MZ세대의 미술품에 대한 관심은, 예술적 성취와 아름다움 추구라는 면과 부모세대의 풍요와 자산을 기반으로 한 투자라는 양면성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투자가치가 높은 해외미술품 추격매수에 MZ세대의 구매력이 소모될 지, 국내 젊은 미술인들의 후원자가 되어 미술계의 BTS를 만들어낼 지 갈림길에 서 있다.

 

MZ세대들의 미술품 구입 행위가 부를 과시하고 양극화를 심화할 지, 예술가치를 향유하고 예술의 내적 가치에 투자하는 행위가 될 지는 미술계 리더들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