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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절의 춤, 이애주 선생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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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권효진의 춤판 <수레바퀴 율려의 몸짓>을 보고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억울하게 죽은 박종철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거리에 나선 춤꾼 이애주 선생. 그가 춤사위를 접고 별이 된지 1년이 넘었다. 지난 11월 16일, 그의 제자 권효진의 춤판이 벌어진다 하여 찾아갔다. 마침 이태원 참사 직후이기에 더욱 그 춤이 보고싶었는지도 모르겠다. 

 

5세부터 춤을 시작하여 34년간 춤만 추었다는 이 제자는, 이애주 선생에 대한 추모를 겸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삼성동 빌딩숲 한가운데 있는 아담한 건물,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다.

 

 

이번 무대에서는 이애주 선생이 생전이 직접 추고 가르쳤던 작품을 올린다고 했다. 그래서 매 공연 전에 동영상을 통해 이애주 선생이 춤의 원류를 따라 찾아갔던 장소와 인연들을 보여주고, 이것을 제자들과 반복하여 익히며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상을 통해 보니 이애주 선생이 1987년 6월 항쟁 시기에 거리에서 추었던 춤은 태평춤이었다.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흔들던 지전, 무명을 둘로 찢으며 영가를 안내하던 춤사위 등이 모두 태평춤의 일부였다. 태평춤은 한풀이, 넋풀이, 진혼굿을 비롯하여 상생평화와 생명을 모두 포함하면서 천지자연만물의 평화를 기원하는 춤이라고 한다.

 

이날 무대는 염불바라, 영가무도(詠歌舞蹈), 살풀이춤, 태평춤으로 2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다. 

 

염불바라는 바라의 진동과 울림으로 만물이 깨우침을 형상화한 춤이다. 손에 묶인 바라가 허공에 길이라도 있는 듯 부드럽게 흘러다닌다. 후반부로 갈수록 바라가 서로 맞닿아 부딪는 소리가 쟁쟁하다. 그 진동과 울림이 깨우침으로 인도한다고 한다.

 

 

영가무도는 소리를 길게 내며 반복하다보면 저절로 몸짓을 하게 되고 그대로 노래하며 뛰고 춤추다보면 참나를 찾아 스스로 치유하게 된다는 춤이다. 한국전통춤회에서 권효진과 함께 무대에 올라 각자의 소리와 동작을 보여준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동작이 춤이 된다는 면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춤이다. 그래서 어떤 장면은 무술 수련이나 선인들의 건강 체조처럼 보이고, 어떤 장면은 막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표정에 비치는 해맑은 즐거움은 그 어느 춤보다도 선명하다.

 

시간가는 줄 모르는 중, 무대에 소리꾼 강응민이 오른다. 김지원 고수의 장단에 맞춰 물에 빠진 심봉사가 자신을 구해준 화주승에게, 눈을 뜨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을 약속한 뒤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하며 탄식하는 장면을 애절하게 노래한다. 객석을 꽉 채운 관객은 연신 추임새를 넣는다. 

 

다음 무대는 한국 전통춤에서 빠질 수 없는 승무이다. 승려가 추는 것도, 절에서 추는 것도 아니지만 복식이나 가락에서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오히려 불교에서는 껄끄러워하는 춤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이 춤에는 예술성이나 심미성 못지않게 아슬아슬하게 마음을 간지르고 애타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해탈과 번민 사이에 있는 우리들 모습이리라. 춤사위 안에 반가사유보살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북소리에 힘입어 우주가 완성된다. 

 

 

한국전통춤회 이수자들의 살풀이춤이 끝나고, 마침내 마지막 무대이다. 18분 동안 펼쳐지는 태평춤. 무대예술로 정형화되어 엄격한 틀을 갖고 전승되는 '태평무'와 달리 '태평춤'이라는 말은 그 춤의 원류, 기원에 가까운 개념으로 쓰인다. 그래서 현장성이나 유연성이 뛰어나 전통춤 중에 창작춤이 되기에 가장 좋다. 이런 이유로 이애주 선생은 6월 항쟁 시기에 그렇게나 거리낌 없이 거리에서 태평춤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권효진은 한성준, 한영숙, 이애주로 연결되는 태평춤의 원류, 초창기 모습을 최대한 복원하여 보여주고자 애썼다고 한다. 이애주 선생이 태평춤에 무녀의 다양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무구를 들기 시작하면서, 항간에서 이는 이애주 고유의 태평춤이라 했지만 사실은 한성준 선생이 복원하고자 했던 바로 그 춤이다. 

 

한성준 선생님께서 경기·충청도 도당굿에 왕거리와 임금거리가 있는데, 왕거리는 위엄을 가지고 잘못하는 것을 꾸짖기도 하며 반성하여 바르게 살게 하는 군웅의 춤이다 이것을 춤으로 추어 앞으로는 ‘태평춤’이라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춤을 한영숙 선생님께서 오직 저에게만 전해주신 것으로 한성준 선생님이 발언하신 그 ‘태평춤‘입니다. 

- 춤웹진, 2014. 2 '대담_ 이애주 vs 채희완' 중에서 )

 

무대 사회를 본 민속기록학회 양종승 회장은 태평춤은 장단이 다양하고 까다로와 추기가 무척 어려운 춤이라고 소개하였지만, 관객으로서는 그저 너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춤사위와 장단을 따라갔을 뿐이다. 이번 무대에서 권효진은 초기 춤사위를 자진굿거리-당악과장에 연결하여 무구없이 맨손 태평춤을 선보였다. 

 

 

몇 대에 걸쳐 온 힘을 다해 발굴하고 살려내 재구성한 귀한 춤을 보았다. 들인 공에 비해 피상적인 볼거리가 풍성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아서 지금 시대에는 그 가치를 향유할 줄 아는 소수의 관객과 만날 뿐이지만, 우리의 원류와 본성을 담아내는 도구는 위기에 빛날 것이다. 이애주 선생의 춤이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