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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이 이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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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선생 4주기 학예굿(학술대회) 소식
모든 분야에 씨를 뿌린 김윤수 선생 이야기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2일 창비서교빌딩에서 김윤수 선생 4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모임이 있었다. 민족미학연구소 주최, '학예굿'이라는 이름의 학술대회였다. 학술대회답게 그가 생전에 남긴 저작을 기초로 민족미학, 리얼리즘미학, 민족예술론 등에 대하여 통사적인 면과 이론적인 면을 아우르며 꽤 어려운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얼마나 어려웠던가 하면, 토론의 좌장을 맡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유홍준 원장이, "그냥 그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우주까지 갔다와야 하냐 하고 청중들이 많이 놀랐다"면서 발표를 듣던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해주기도 하였다. 

 

 

난해한 학술발표 이후에는 '학예굿'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축원가무마당이 있었다. 70,80년대 대표적인 민주열사 전태일, 김상진, 박종철, 이한열, 김경숙 등이 오방신장으로 등장하여 오방신장무(五方神將舞)를 추었다. 무속에서 오방신은 잡신과 잡귀를 물리치고 횡액과 모든 부정을 정화하는 기능을 갖는다. 이번에는 민주열사 다섯명이 오방신이자 민중신장으로 등장한 것이다.

 

 

축원가무마당은 12월 공연을 앞둔 <수주탈춤예수전>의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수주탈춤패'가 맡아 진행하였다. 관련기사(박형규 목사의 삶을 탈춤으로, <수주탈춤 예수전>)

 

 

이후에는 김윤수 선생의 제자나 지인들이 김윤수 선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돌림이야기마당이 펼쳐졌다. 원래 다섯 명이 이야기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세 명이 코로나로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진영이나 기호와 무관하게 작가와 작품에만 입각해서 글을 쓰던' 공평무사한 태도, '추상화일지라도 리얼리티가 없다면 풍부함을 잃을 것이라는 선생의 경고' 등, 김윤수 선생에 대한 추억담은 차고도 넘쳤다. 

 

한예종 권영필 교수는 김윤수 선생의 넘치는 후배사랑과 포용력을 회고하였고, 동덕여대 김기주 명예교수는 가르칠 사람도 교재도 없었던 한국미술, 동양미술, 예술사 등을 선생이 어떻게 일으켜세웠는지 증언하였다. 김기주 교수는 선생이 '전 분야에 씨를 뿌린 사람'이라면서 이론이 예술세계를 확장하게 해준다면서 예술인들이 이론을 꼭 공부하기를 당부하였다. 

 

여기에 유홍준 원장이 무용학과에서 무용미학 강좌가 일반화된 것도 선생이 이화여대 무용과에서 강의를 했던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증언하여 '전 분야에 씨를 뿌린 사람' 이라는 김기주 교수의 말을 뒷받침했다. 

 

 

김윤수 선생 작고 2년 전 선생을 인터뷰하여 구술집을 냈던 신정훈 서울대 교수는, 구술 당시를 떠올리면서 선생이 가장 강력하게 기억하는 시대는 70년대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당시는 선생이 고초를 겪으며 글도 많이 쓴 시기이다. 신교수는 선생이 70년대에 쓴 글, 예를 들어 77년에 쓴 김환기론은 많이 과장되었던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였다고 한다. 선생은 그 당시는 추상을 지나치게 절대화한 시기였기에 그래야 했다고 솔직하게 말해주었다고 한다.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도 선생은 학맥과 인맥을 떠나 가식없이 작가 비평을 했으며 그 누구보다도 상상력을 자극하고 촉발하며 격려했던 사람이라고 하였다. 김윤수 선생에 대한 기억을 듣다보니, 우리가 정말로 큰 인물을 떠나보냈음을 실감한다. 

  

 

이하 기사는, 그냥 예술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청중을 '우주로 보내버린' 학술토론 내용이다. 뉴스아트 독자를 위하여 온 종일 진행된 내용을 아주 짧게, 그리고 우주까지는 안가도 될 정도로 쉽게 요약하였다.

 


 

리얼리즘이 예술에서 진실성을 확보하게 해 준다.

 

김윤수 선생은 리얼리즘이야말로 참된 휴머니즘을 실현하는 올바른 방법이며, 참된 예술은 참된 휴머니즘이라고 하였다. 또한 리얼리즘은 예술에서 진실성을 확보하게 해 주며 그렇게 만들어진 예술작품은 다가치적, 복수적이요 풍부함을 지닌다고 하였다.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는 이와 관련한 발제를 마치며 그가 남긴 글들이 아직도 "천둥처럼 큰 울림"으로 진동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영욱 미술평론가도 김윤수 선생이 균형잡힌 시각으로 기존 미술사 서술을 뒤집어 한국미술사에 대하여 새롭게 서술한 것을 보고 "깊이 감화받았다"고 하였다.

 

김영동 미술비평가는 김윤수 선생이 1967년 이륜, 1977년 오경환, 1993년 권기윤 작가에 대하여 쓴 비평을 토대로 발제에 나섰다. 그는 이 세 비평을 통해 본 결과, 김윤수 선생이 초기부터 서구 추종 미술에서 벗어나 민족미술을 지향하면서도 개방적 시각으로 철저히 작품 자체에 주목하여 비평하고 삶과 예술의 분리를 지양하여 풍부함으로 나아가는 예술적 효과를 드러내고자 하였다고 결론내렸다.

 

김윤수 선생이 1993년 평론에서 작가의 성실함, 정직함, 진솔함을 강조한 것은 미술의 쓰임새가 전례없이 요구되던 1980년대에 다소 간과되었던 덕목을 강조하며 새로운 시기 새로운 비평의 토대를 쌓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신정훈 서울대 교수

 

 

리얼리즘은 역사의 목격자이자 자기 시대의 증언

 

김종기 부산민주공원관장은 김윤수 선생의 민족예술론에 대하여 발제하였다. 김윤수 선생의 민족예술론은 리얼리즘에 바탕을 두며, 리얼리즘은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지향해야 할 사회적 이상을 함께 그리는 '이념'이며, 선생은 프란시스코 고야를 예로 들어 리얼리즘은 역사의 목격자이자 자기 시대의 증언이라고 했다. 

 

김윤수 선생의 민족예술에 대한 이론은 외국의 유명 이론에 굳이 대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고민의 산물이며, 그린버그나 뷔르거의 개념과는 차원이 다른 전망에 있는 개념    - 강성원 미술비평가

 

강 비평가에 따르면, 김윤수 선생의 민족예술론은 뷔르거의 아방가르드 개념보다도 4년 일찍 예술의 의미를 인식하여 공표한 것으로 두 사람은 같은 마음이었다고 볼 수 있다. 뷔르거가 아방가르드를 개념화함으로써, 문예미학상 진보의 종주국으로 알려진 독일 문예비평계도 체면치레를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