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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물정 모르는 예술인 노동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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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 선정 레지던시 프로젝트 <바람의 노래>
개인작업보다는 마을의 문제를 우선할 사람을 선발중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전남문화재단에 <바람의 노래>라는 사회적 협력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할 레지던시 참여자 모집 공고가 나왔다. "예술가와 환경활동가의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임시일자리"라는 부제가 붙었다.

 

 

일당 13만 원 노동할 예술인 모집?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 지원사업을 문화재단에서 공지한 것이니 믿을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예술활동 지원 부분에 대한 서술이 명료하지 않고, 심지어 제작비나 재료비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예술인들 사이에서 해조류 양식 일손돕기 내지는 일당 13만 원 외국인 노동자를 구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일었다. 하지만 아르코 지원사업인데 그럴리가?

 

 

이에 뉴스아트는 아르코, 전남문화재단,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인 오선영 큐레이터를 취재하였다. 그 결과, 전남문화재단에서 이 프로젝트를 공지할 때 가장 중요한 설명을 빠뜨려서 오해가 발생했음이 드러났다.

 

프로젝트 Q&A에 근거하여 이 프로젝트의 목적을 요약하자면, "예술인이 경제활동을 하면서 지역사회와 협력탐구하고 이주노동자와의 이해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또한 그 방법으로 "프로젝트의 참여자는 모두 ‘이주 노동자’가 되어 살아감으로써,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을 통해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도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제안하는 듯하다.

 

예술인에게 이주노동자가 되어보라는 건지, 작품을 하라는 건지 매우 혼란스럽다.

 

<바람의 노래>는 활동가로서의 예술인을 위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취재 결과 <바람의 노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시장과 작품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술인보다는, 활동가로서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예술인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해외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움직임이라고 한다.

 

오선영 큐레이터는 2014년부터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 질문에서, 비어 있는 공간을 찾아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7 1/2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바람의 노래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완도'라는 낯선 공간에서 기획자는 물론 레지던시 참여자 전원이 이주노동자가 되어 그들의 눈으로 해당 지역과 환경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각자의 방식으로 결과물을 내는 프로젝트이다.

 

프로그램의 결과물은 예술작품이 아니라 마을이 "필요로 하는 것" 발견

 

통상의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가장 다른 것은, 결과물이 예술작품이 아니라 '에세이'라는 점이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예술 창작이 아니라, 마을 사람과 함께 노동하고 연대하면서 그 마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다. 마을의 필요를 예술적으로 충족시켜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예술적 결과야말로 오선영 큐레이터가 추구하는 "공공예술"이다.

 

약산도 마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주노동자 문제이다. 현재 정부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하여 여러가지 관리 및 보호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주민들은 이 기준이 경직되고 현실과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이주노동자는 편견과 무시, 하대로 어려움을 겪는다. "활동가"들이 이러한 현실을 직접 경험하면서 도움이 될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이게 과연 예술 프로젝트인가 싶을 정도로, 일반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것이 과연 예술 프로젝트인가?

 

공지 내용에 의하면, "어촌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고려한 사회적 경제 시스템을 현대 공공 예술과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예술가, 문화실천가, 생태학자 등이 각자의 연구 분야에 맞춰 지역 사회를 경험..."이라고 되어 있다.

 

예술과 연결하고자 하는 것이긴 해도 예술프로젝트라기보다는 사회프로젝트의 느낌이 강하다. 예술과 사회를 분리할 수는 없겠지만, 통상적이지 않은 프로젝트임은 분명하다. 기획자인 오선영 큐레이터는 "<바람의 노래> 레지던시 프로그램 컨셉은 전 세계 처음으로 진행되는 첫 사례"라고 한다. 그는 예술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으로 '사회적 협력 예술 프로젝트'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총 200명 지원자 중 외국인이 170명 이상 


이 프로젝트는 2023년 5~6월, 9~11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이번에 1차 레지던시 기간에 참여할 "예술가, 문화실천가, 생태학자" 등을 모집하였다. 총 10명의 레지던스를 참여시킬 예정인데, 200여명이 지원하였고 대부분은 외국인 지원자라고 한다. 마감은 11월 30일이었다. 1, 2차 연속 참여를 권장하기 때문에 1차에서 공석이 발생하지 않으면 2차 모집은 없을 예정이다.

 

프로젝트 참가자에게는 참여비(아티스트피)로 50~100만 원이 책정될 예정이며, 완도군 약산면 해당 섬까지의 교통비 및 체류기간 동안의 숙식이 제공된다. 하지만 '이주노동자'가 되어 그 지역의 삶을 '체험'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예술인도 다시마 농사를 중심으로 '이주노동자'처럼 약속된 노동을 소화해 주어야 한다. '책임'을 다해주어야 생산에 차질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활동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예산도 따로 없다. 다만 노동 과정에서, 지역에 적합한 예술이나 교육 제안을 해서 받아들여질 경우에 소요되는 비용 등은 지원한다. 

 

외국인 지원자의 경우 비자 신청을 위한 공식 초청장과 항공료도 지원되기 때문에 소속 국가에 따라서 위의 조건들이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예술인에게는 그리 매력적인 조건이 아니다. 최소한의 참여비가 주어지기는 해도, 주요 수입은 '예술활동'이 아니라 '노동'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술인 커뮤니티에서 이 공고문이 문제가 된 이유이다.


개인 작업보다는 마을의 문제를 우선할 사람을 선발 중이다

 

프로젝트 소개와 레지던시 모집 문안이 더 정확하고 쉽게 작성됐어야 한다는 말에 오선영 큐레이터는 곧바로, '죄송하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예술인들의 반응도 '그랬겠다'고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는 지난 5월부터 완도에 거주하면서 마을버스를 타고 약산도로 출퇴근한다. 직접 다시마 말리는 일도 하고, 친해진 마을 주민집에서 머물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레지던시 지원자들과 함께 일하겠다는 집을 확보했다. 그는 또한 한정된 예산으로 지원자들을 어떻게 먹이고 재울 수 있을지도 고민한다.

 

"펜션은 너무 비싸고 다른 숙박시설도 없어요. 그러다가 버려진 옛날 마을 회관을 찾아냈어요. 우리 예산으로 이걸 쓸만하게 수리해주는 대신, 1년 동안 무료로 사용하기로 했지요. 그래서 지금 마을회관 수리 중이예요. 완공되면 여기서 머무르면 돼요." 

 

 

땅끝에서 벌어지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레지던시 실험이 어떻게 끝날지 결과가 궁금하다. 200여명의 지원자 인터뷰는 곧 이 프로젝트에 대한 교육이기도 하다. 개인 작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보다는 지역에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 이 레지던시에 적합하기 때문에, 오선영 박사는 시간을 많이 들여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바람의 노래> 홍보영상. 지역 주민들의 노래를 배경으로, 지원자들이 활동할 지역의 아름다운 풍치를 보여준다. 

 

 

*** <바람의 노래>는 2022 아르코 공공예술사업(주제심화형) 선정 작품이다. 이번 주제는 "UN 지속가능발전목표"이기에 그에 입각하여 기획한 예술 프로젝트라고 한다. 프로젝트 기간 2년으로 총 3억 6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아르코 공공예술사업은 공적 이슈를 반영하여 환경 등 사회문제를 의제화 한다는 것을 목표로 한다.

 

*** 기획자이자 진행자인 오선영 박사는 경희대를 거쳐 영국 웨스터민스터 대학에서 공공미술을 전공한 독립전시기획자이다. 예술과 사회의 상호작용, 문화와 지역 정체성, 예술을 통한 지역사회 확장과 연결 등을 주제로 인도네시아와 한국을 오가면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