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3월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웹툰작가 노동환경 및 건강문제 관련 토론회에서 당장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표준계약서 뿐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 안미란 과장은 웹툰작가의 쉴 권리를 계약서에 못박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하였다. 또한 이후 만화진흥법, 저작권법 개정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웹툰작가 335명을 조사한 결과
웹툰작가는 다른 모든 예술인들과 마찬가지로 산재보험 적용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 계약서에 입각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신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건강도 크게 해치고 있음이 밝혀졌다.
90% 이상이 안구건조증, 50% 이상이 우울증을 호소했고, 40% 이상이 수면장애와 불안 혹은 공황 장애를 겪고 있다고 했다. 그 밖에 소화기계 질환, 방광염, 강박장애를 호소하는 사람의 비중도 35%~18%였다.
특히 자살을 생각해본 사람은 17.35%, 계획을 세워봤다는 사람이 8.5%,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4.08%로 일반인의 3배에 달하였다.
연관성 분석 결과, 작가들의 우울 불안 수면 장애는 악성 댓글이나 작품에 대한 비난과 마감일정이 모두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만화 창작환경은 과거 '도제식'이 사라지면서 더욱 나빠졌다. 문하생들간의 소통이나 정보교류 통로가 없어졌고 그간 통용되던 계약관행도 사라졌다. 작가, 에이전시, 스튜디오, 플랫폼 등 복잡해진 노동구조가 불공정하고 책임이 애매한 계약형태를 낳았고, 작가의 자율성이 줄어드는 대신 노동강도는 높아졌다.
악화된 만화창작 환경, 자율성 줄어들고 노동강도 높아진
대표적인 예가 작품당 컷 수의 증가이다. 2017년 50컷에서 2022년 70컷으로 5년 만에 40프로 증가했다. 연재는 마감이 있어서 정해진 시간에 그려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노동강도가 올갔다는 말이다.
마감 주기도 과거에는 주간, 격주간, 월간 등 선택지가 있었지만 웹툰은 거의 주 1~2회로 고정되어 있다. 여기에 플랫폼에서 프로모션, 상위 노출 이벤트, 명절 특집 등을 기획하면 작가는 늘어난 분량과 앞당겨진 마감시간을 맞추기 위해 추가로 일을 해야 한다.
2021년 카카오플랫폼의 웹툰은 무려 7만 건이었다. 경쟁이 심화되는 것이야 전방위적 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최저 기준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쟁의 심화는 결국 작가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하는 방향으로 귀결되었다. 이런 환경에 있는 웹툰 작가는, 그에 상응한 보상을 받고 있을까?
웹툰작가 연봉 1억이라는 오해, 실제 소득은 마이너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2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년 내내 연재한 작가의 경우 1억 1870만 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조선일보는 "웹툰 작가, 지난해 평균 수입 1억1870만원"이라고 보도했다. 억대연봉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이다. 이 금액은 작가의 연봉이 아니라 매출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여기에서 어시스턴트나 스텝의 인건비, 월세, 식비 등 운영비와 재료비 등을 모두 지출해야 한다. 따라서 억대 수입(매출)을 올리는 작가라 해도 실제 수입은 월 수백만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는 다시 말해서, 작가가 억대 매출을 올리지 못하면 플랫폼과 스텝들에게 오히려 빚을 진다는 말도 된다. 하신아 웹툰노조위원장은 이런 면에서 웹툰작가들은 화물연대 노동자가 겪고 있는 문제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이수경 지회장의 발표다. 웹툰 작가 중 여성 작가 비중은 69%인데, 계약서 등에서 모성보호 기능은 전혀 작동하지 않으며 '재택'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돌봄노동을 도맡아야 하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페미니즘 사상을 검증하고자 하는 악성 댓글로이나 별점 테러로 더욱 고통받는다는 것이다.
여성작가의 삼중고, 쉴 권리, 불공정관행 타파 등 과제 산적
토론회를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웹툰작가는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일하지만 비정규예술노동자로서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여 노동 사각지대에 들어가 있다고 하였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문화예술계 전반의 노동 실태를 점검하고 특히 웹툰 작가의 휴재할 권리와 업체 불공정 관행 타파 등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문화예술노동연대 안명희 집행위원은 ‘마감노동’으로 인한 고통은 비단 웹툰작가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며 산재보험 적용을 요구하였으며, 이는 또한 “실질적인 사용자(플랫폼)에게 노동의 책임을 지울 수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였고, 플랫폼희망찾기의 오민규 집행총괄은 해외 플랫폼 창작노동자조직의 교섭 현황과 우리나라 영화산업노조의 단체협약 사례를 전하며 “적정한 노동 시간과 강도를 정하는 것은 가능하다”며 “플랫폼노동에 적정임금·최저임금 보장 법제화”를 주장하였다.
토론 말미에 문체부에서는 당장 할 수 있는 일로, 현재 개정이 추진되고 있는 “표준계약서에 휴재권을 못박겠다”고 하였다. 고용노동부는 좀더 어려운 입장이다. 산재보상과 조오현 과정은 여느 예술인들과 마찬가지로 웹툰 작가의 노동시간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과, 보험요율을 정할 근거도 주체도 없어서 산재보험 적용도 어렵다는 말을 하면서 고용노동부에서도 일단은 계약서를 통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변화된 사회에 맞게 노동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토론을 통해 궁극적으로 확인한 것은,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노동'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범유경 문화예술스포츠 위원은, 아무리 계약 구조가 복잡해도 의지가 있다면 기존의 법체계를 통해서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플랫폼노동자들은 다양한 사용자 책임 규정을 들어 단체교섭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많은 조항들이 새로운 노동관계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근거로 쓰이고 있다. '노동'의 틀이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 정의당 류호정 의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 콘텐트창작노동자지회, 웹툰작가노동조합 주최로 마련되었다.
이번 토론회의 기반이 된 ‘웹툰작가 노동환경과 건강실태 조사’는 한양대학교 병원 직업환경의학과 민지희 전임의(연구 책임자),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형렬 교수, 신촌 세브란스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이유민 진료 교수, 한일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센터 이진우 과장,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박민영 전공의가 2022년 1년간 설문과 그룹 인터뷰를 통해 밀도 깊은 연구를 수행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