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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 소설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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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꺽어 슬픔을 죽이다>, 김이하, 푸른사상
<누가 소리의 주인인가>, 정혜원, 현북스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일부에서는 사진가인 줄로만 아는 김이하 시인의 시집이 출간됐다. 무려 여섯 번째 시집이다. 사진가인가 할 정도로 촬영에 열심이면서 시집까지? 부지런도 하시지... 그런데 제목이 <목을 꺾어 슬픔을 죽이다>이다. 무섭다.  

 

저, 저, 저 파도 같은 울음에

밀물 같은 검푸른 눈물에

가던 길 비틀거리는

그 밤 뜬금없는 부고는

내 문간에서 다른 이에게 서둘러 가다 말고

처마에 축 늘어진 전선 줄을 따라

눈물 한 방울 동그랗게 매달아두고는

이내 정신을 추슬러 골목을 돌아나간다

 

      - '목을 꺽어 슬픔을 죽이다' 중에서.

 

왜 이런 제목이 붙었을까? 시인은 우리 시대 민중의 삶과 생의 질곡을 기록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삶이 얼마나 퍽퍽한가. 견디기 위해 다들 아닌척 해서 그렇지. 외롭고 서글픈 정념이 짙게 배어든 시들의 모임에 시인은 무척이나 솔직한 하지만 중의적인 제목을 붙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고독과 처연한 슬픔을 견뎌내는 낙천적 힘도 느껴진다. 그래야지. 그래야 시지. 그렇게 여섯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너털 미소를 머금고 굴곡진 시대의 거리마다 억센 발로, 형형한 눈으로(시인 박재웅)" 올곧고 단호한 기억을 남긴다. 

 

발밑으로 깊게, 아주 깊게 엎어지려는 목을

끝내 하늘로 꺾고, 하늘을 향하여 눈 치뜨고

눈물을 묻는다, 슬픔을 죽인다

 

      - '목을 꺽어 슬픔을 죽이다' 중에서.

 

늘 챙겨주는 주변 사람과 피붙이들에게 멋쩍어 죽겠지만, 그래도 힘닿는 데까지 끼적거리겠다는 시인이 독자에게 묻는 것만 같다. 당신은 어디로 목을 꺽어서 이 슬픔을 견디고 이겨낼 것인가?

 

늘 카메라를 메고 남보다 한 발 앞서 격변의 사계(四季)를 기록하느라 해진 발, 푸른 멍의 어깨로 만든 김이하 시인의 이번 노래는 어느 봄날 눈 시리게 월문리를 울리던 풀피리 소리 같다. 재주가 많은 시인…… 이제 카메라와 펜이 아닌 등 긁어줄 짝을 만났으면 한다.

                                                                                                               박재웅(시인)

 

등 긁어줄 짝 대신, 시인은 챙겨놓은 "글 쪼가리"가 많다고 한다. "용렬한 재주로 이만큼 썼으면 됐다 싶으면서도 늘 성에 차지는 않고" 그래서 멋쩍고 민망하다. 그래도 이걸로 "여러 동무들과 선배, 후배들과 어울려 술 한잔 마실 핑곗거리나 되었으면 됐다."고 한다. 시집 잘 팔려서 술마실 종잣돈도 마련하시면 좋겠다. 

 

 

한편, 자타공인 '귀명창' 정혜원 작가가 새 책을 냈다. 원래 문학을 전공하다가 판소리에 푹 빠져  2005년 KBS ‘흥겨운 한마당’에서 주최하는 ‘제1회 귀명창대회’에서 장원상을 받았다. 그 뒤론 판소리 전도사가 되어 오랜 시간 판소리의 근원을 탐색해 온 결실로 나온 책이다.

 

청소년 소설의 형식을 빌었고, 소리책 <적벽가>를 소재로 하였다. 저자의 오랜 연구를 토대로 실존 인물들이 섞여 나오니 스토리가 탄탄하고 흥미진진하다. 판소리가 아니면 듣도보도 못할 단어들이 등장하는데, 이 단어를 익히는 과정이 곧 판소리 학습 과정이기도 하다. 

 

정혜원 작가의 이번 소설은 판소리 역사와 이론, 그리고 판소리에 명운을 건 사람들의 삶과 절박함을 이야기로 엮어내 판소리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낯선 단어들로 인해 판소리가 지루하다고 했던 젊은이들도, 소설로 그들의 삶과 내면 세계를 접한다면 태도가 달라질 것만 같다. 

 

1993년에 영화 <서편제>가 판소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23년에는 <누가 소리의 주인인가>가 판소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