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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여섯 채로 만든, 한국 최초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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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1969년에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독립영화 <아침과 저녁사이> 상영 및 감독과의 대담이 지난 7월 14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MMCA 영상관에서 있었다. <아침과 저녁사이>는 이익태 감독의 첫 실험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대사없이 흘러간다. 낡은 필름이라 노이즈가 꽤 있었지만, '최초의 독립영화'라는 타이틀과 매우 잘 어울렸다. 54년 전 작품이지만 제목에서 볼수 있듯이 일상을 담은 영화이기 때문에 영상에 보이는 사물이나 사람, 풍경과 배경은 모두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단박에 이해하기는 어렵다. 실험적인 영화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아서 뭐지? 왜 저러는 거야? 엥? 하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는, 전개가 흥미롭기 때문이다. 

 

영화 상영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7월 16일까지 진행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라는 기획 전시의 일부였다. 이익태 감독은 1960-70년대에 미술, 영화, 패션, 연극, 무용, 종교, 문학을 넘나들면서 실험적 작업을 시도한 ‘제4집단’의 주요 멤버였다.

 

마동석 배우의 부친이 집 여섯 채 값 투자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영화관에서 개관 10년만에 처음으로 한다는 감독과의 대화도 있었다. 이 자리에서 충격적인 사실들이 다수 폭로(?)되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독립영화제작비로 당시 집 6채 가격인 300만원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마동석(본명 이동석) 배우의 부친은 이익태 감독의 둘째 형으로, 스스로도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강해 월남에서 번 돈을 이 영화에 투자했다고 한다. 

 

운이 좋았는데... 인디영화가 아니라 빈대영화였지... 독립영화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인데... 요즘엔 독립영화를 축소된 극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죠. 

 

두 번째로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NG필름을 이어붙여 탄생한 것이라는 점. 정상적으로 촬영된 필름은 뭔가 만족스럽지 못하여 못마땅하던 중에 NG필름이 더 효과적이라 판단하여 잘라서 이어붙여보니 사운드도 튀면서 감독의 의도에 잘 맞는 영상이 완성되었다는 것. 감독은 당시 불안정한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사람들의 심리를 나타내고자 했다. 

 

세 번째로 놀라운 점은 이 영화에 나오는 주택이 '공병우안과'로 유명한 공병우 박사의 집이었다는 것. 당시 부잣집은 지금의 주택과 견주어도 크게 뒤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감독은 이 주택에서 야간 촬영을 하면서 허기가 지면 부엌의 갈비와 막걸리 등을 꺼내 먹었는데, 그 때 '비교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게 불만이죠. 막연한 불만이 많았어요. 나도 그 영향권에 있었고... (영화 속) 백수 청년은 나고, 내 존재를 규명하는 거였어요. 그렇게 청년들이 느끼는 사회적 중압감, 불안감, 슬픔 등이 뒤섞인 마음을 영화에 담았어요.

 

한국 영화계에 경종 VS 감독 닮은 백수 이야기

 

이익태 감독과 정지영 감독은 역설적이면서도 납득이 되는 논쟁(?)을 벌였다. 정지용 감독은, 작품 초반에 자명종이 나오는 것은 60년대 영화 황금기를 거친 뒤 70년대 독재에 억눌려 저항적 작품이 전혀 없이 매너리즘에 빠진 한국 영화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자 이 감독은 '그냥 무지에서 나온 거야'라고 부인하였다.

 

 

난 아나키스트예요. 세상살기 싫은 백수 청년의 하루를 그린 것 뿐이죠.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고 여자 만나 시시덕 거리는 잉여인간을 그린 거요. 한국 최초 인디영화라기엔 창피해서 하나 다시 만들고 싶은데...  

 

그러나 정지영 감독은 서로 연결되지 않는 파편적인 영상은 포스트모더니즘 기법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재반박하였다. 정 감독은 누구도 정치(시대상황을  의미)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였고, 결국 이 감독은 스스로 그 영향권에 있었음을 인정했다. 

 

메꿔지지 않는 허무를 파격적으로 표현

 

꿈과 현실이 섞인 듯한 괴리감 속에서 방향없이 헤매는 허깨비같은 존재... 존재론적 염세주의에서도 로맨티시즘에 대한 기대... 무엇으로도 메꿔지지 않는 공간, 그 허무감을 아침과 저녁의 괴리로 표현한 것... 

 

감독들은 자신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히로시마>의 알랑르네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등 전설적인 감독과 고전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제 4그룹이 추진한 한강에 관을 던지는 퍼포먼스 '기성문화의 장례식'과 당시 기탁금이 없는 대통령 선거제도를 이용하여 후보를 내고자 했던 일 등 다양한 에피소드를 펼쳐놓았다. (대통령선거 기탁금제도는 1987년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객석에서도 다양한 질문이 나왔는데, 어느 여성 관객이 영화 속 여성의 역할에 대하여 질문했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여성은 무기력하고 피동적이며 갇혀 있는 존재로 나왔고,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파격적으로 보이는 장면도 나왔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성의 내면을 말해요. 주인공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했어요. 방, 어항 등에 갇혀 있다거나 철로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보여준다거나... 

 

대사 한 마디 없이 자유로운 앵글로 찍은 54년 전 영화는 생각보다 세련되고 파격적이었다. 감독과의 대화는 그보다 더 파격적이고 즐거웠다. 지금의 영화가 너무 정형화 되어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거나 되레 피로감을 자극한다면, 54년 전 영화를 감상해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