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우리나라 문화예술정책의 콘트롤타워는 어디일까? 흔히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로 알고 있지만 문체부는 국정홍보기관을 모태로 탄생하였다. 부서 이름에 '예술'이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런 이유로 문예진흥기금을 토대로 순수예술을 주로 지원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를 우리나라 예술정책의 수장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독립성도, 정책기능도 약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 아르코가 창립 50주년, 정병국 위원장 시대를 맞아 변화를 시도하는 듯하다.
창립 50주년, 변화 시도하는 아르코
지난 11월 8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립 50주년 기념 정책 심포지엄이 열렸다. <문화예술의 미래와 공공지원의 방향과 과제>라는 주제로 한국예술의 현황 및 문화예술지원 정책의 문제와 개선점을 살펴봤다.
50주년 축하 및 아르코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에서 정병국 위원장은, 교육부 산하에 있지 않은 예술교육기관인 한국종합예술학교 설립 이후 한국의 문화예술 특히 기초예술이 급속도로 세계화되어 그 결실을 거두고 있다고 하면서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이 문제와 관련하여 본격적인 심포지엄을 시작했다. 먼저 융합예술이 대세인 AI시대에 한국예술의 문화적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형식이 곧 예술이 된지 오래, 예술본질 탐구 필요
어떤 예술장르를 보호하고 발전시킬 것인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이진준씨는 어떤 예술장르를 보호하고 발전시킬지 선택하려면 몇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술 및 AI의 발전으로, "장르적 가치의 시대는 이미 유효기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이 좋은 예술입니까?"라는 질문 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음에 대하여 생각해 볼 것을 권했다.
▶예술에 대한 무관심: 지금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만나는 경계공간의 세대는 사라지고 있다. 그 대신 창작자 및 향유자로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디지털 네이티브가 예술대학을 거치지 않고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의 미적 감각을 따라잡지 못하면 기존의 예술은 무관심의 길에 빠질 것이다.
▶기술사용자의 몰락: 인문학적 소양이 결여된 예술가들은 창작자가 아니라 '기술사용자'이다. 생성AI는 바로 기술사용자들을 예술가로 대접하던 장치를 제거하기 때문에 예술계가 두려워한다. 하지만 생성AI와 첨단 기술을 동원해 현란한 미디어 기술을 이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미디어 아트나 다원예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생성AI의 위험성: 이제 예술의 본질에 대하여 질문할 때이다. 그러한 사색없이 백인 남성 중심 데이터로 구축된 생성AI에 휩쓸리면, 예술의 가치는 서양의 기준에 더욱 종속될 것이다. 기술과 예술 어느 쪽도 잘 모르면서 기술과 예술 중간의 어중간한 영역에 머물며 지원금 수령을 예술활동의 전제로 생각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새로운 종의 예술가들의 탄생을 (기대)... 그들의 산업이 '콘텐츠 생산자'들과 다르게 보호받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실험적이고 초학제적인 연구...에 주목... 현대 예술은 고등 과학의 현대 수학과 같이 순수하고 본질적인 영역에 대한 질문... 시와 같이... 침묵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창의성과 인공지능의 잠재력이 조화롭게 융합될 수 있기를...
-- 이진준 미디어아티스트
그는 융합, 다원 예술이 추구하는 미디어 미학 및 기술철학자들의 논의에 예술계가 귀를 기울여 예술의 본질을 다함께 깊이 있게 탐구함으로써 문화자존감을 회복할 것을 제안했다.
다음 발제자는 아르코 위원이자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인 김진각씨였다. 그는 아르코의 현황과 과제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15조 넘게 쏟아부어도 미미한 문화소비,
지속적으로 약해진 아르코 위상은 '어정쩡'
연간 문화예산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합쳐 전체 15조가 넘는다. 이 가운데 문화예술 예산은 8조 8000억원, 공연예술 예산은 2조 6000억원이다. 그리고 아르코 예산은 3846억원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지원이다. 그런데, 이렇게 지원함에도 문화소비는 미미하다. 국민들의 여가 시간은 여전히 대중예술 콘텐츠로 채워진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정책의 콘트롤 타워이자 대표기관이어야 하는 아르코는 이런 상황에서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비슷비슷한 문화예술지원 기관으로 예산 분산 ▲순수예술 지원은 예술경영연구소(이하 예경), 예술인복지재단(이하 예복) 등으로, 중복되면서도 복잡하게 배분되면서 아르코의 조직 위상이 지속적으로 약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별 문화 지원이 급증하여 중앙 정부의 지원 규모를 넘어서면서, 아르코의 위상은 '어정쩡'해졌다. 문예기금 고갈로 재정확보도 어렵고 정책기능은 약하다. 게다가 문체부와도 여전히 수직적 관계에 있어 자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중복기관 통합으로 문화예술 대표하는 콘트롤 타워 필요
아르코, 단순 교부업무보다 정책조직으로 변화해야
아르코와 유사 예술지원 기관을 통합하여 복잡, 중복, 비효율을 없애고 시너지를 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특히, 통합문화이용권 사업은 이제 아르코가 수행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사업이다. 지자체 통해 예산을 교부하는 단순업무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 융합하는 시대이다. 아르코가 이를 주도할 수 있도록 조직과 정책을 변화했을 때 아르코의 설립 목표인 대한민국 문화예술 대표기관이자 콘트롤 타워로서 존재할 수 있다.
아르코 혁신 위해 자금 배분의 자율성, 성과에 대한 책임 필요
패널 토론 중에 정광렬 문화가치연구소 대표가 "미래를 위한 예술위원회의 지원제도의 혁신"이라는 제목으로 아르코 혁신의 필요성과 과제를 발표하였다. 그는 아르코 혁신의 원칙으로, 자금배분의 자율성 획득 및 성과에 대한 책임을 꼽았다.
아르코 기능의 혁신을 위해서는, ▲정책목표 분명히: 전국을 대상으로 하고 지원 기준을 명확화할 필요성, ▲핵심역량에 집중: 타 기관과 기능을 조정하여 재정지원 기관에서 복합지원기관으로 전환할 필요성, ▲책임성 제고: 문예진흥기금 성과와 신뢰를 바탕으로 재정확중 등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구체적인 지원정책과 제도 혁신과 관련해서는, 어떤 예술을 지원한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것인지와 관련하여 전통적인 다양한 문제점들을 소개하였다. 특히 그는 공급자의 가치를 수요자에게 강요하면서, 영화 한 번 본 것도 문화향유라고 평가하는 양적 지표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또한 "예술은 지원할 가치가 있지만 모든 예술인(단체)가 지원받을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 포퓰리즘을 경계했다.
문화예술 압력단체 필요, 아르코가 나서줘야
전국지역문화재단과 관련해서는 지역문화재단의 취약한 재정과 단절성이 지적되었다. 재단의 재정자립도는 15%에도 미치지 못하며, 지역문화진흥기금은 고갈상태이다. 최근에는 문화재단이 문화관광재단화되면서 창작의 비중도 줄어들고 있다. 지역 사업이 모두 지역문화재단으로 이관되고 중앙과 지방을 아우르는 문화예술지도체계는 없다보니, 전국 문화활동가가 1만명에 육박해도 서로 경험과 데이터를 공유할 플랫폼조차 없이 단절을 겪고 있다.
양효석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사무처장은 문화예술진흥 압력단체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이를 위해 아르코가 나서줄 것을 촉구하였다.
객석에서 의견을 낼 시간은 거의 없었다. 이에 원로 연극인은 대안도 토론도 없이 문제제기만 하는 심포지엄 진행 방식에 대하여 거세게 항의하였다. 심포지엄 이후 로비에서는 참석자들이 비공식적으로 남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