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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요즘 예술,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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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예술과 과학, 기술이 만났다. 융합이라고 한다. 여기에 상당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원래 하나였던 예술과 과학기술은 산업혁명 이후에 분리되었다가 1960년대부터 다시 가까와지기 시작했다. 키네틱 아트,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등을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는 전반적인 경향을 말하며, 개별적으로는 언제나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과 기술이 만나왔다. 

 

지금은 미디어아트는 기본이고, 양자역학에 우주기술까지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그러다보니 소프트웨어 기업과 예술기업이 구분되지 않고 상업디자인이 오히려 융합예술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대체 요즘 예술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하여 뉴스아트에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문래동 예술공장에서 열린 전시회를 체험해보기로 했다. 언폴드엑스 기획자 캠프에 선정된 프로젝트 '깨끗한 석판(Tabula Rasa)' 전시라는 것이다. 여기서 석판은 우리가 알던 '석판화'의 석판이 아니라, 백지와 같이 비어 있는 마음을 가르키는 인식론적 용어이다. (상세내용은 위 기사링크 참고) 시작부터 난해하다.

 

 

영등포역에서 문래동 예술공장까지 가는 길이 이미 마음을 비우는 길이다. 쪽방촌을 지나고 철공장들을 지나야 한다. 쪽방촌은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해서 고정관념을 완전히 부수었고, 철공장들은 냄새와 먼지에도 마스크 하나 안 끼고 작업하는 모습이 생소했다. 그 와중에 드러나는 아름다움이라니. 

 

 

철공장을 지나 문래동 예술공장에 들어선다. 오른쪽 전시장에 다섯 개의 작품이 있었는데, 딱 두 개만 이해되었다. 하나는 다양한 모양의 '진화하는 숟가락'(송봉규) 전시인데, 작은 책자에 숟가락 진화 세계관을 생태학적 입장에서 상세히 설명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왠지 구매욕이 돋는 전시물이었는데, 알고보니 이미 상업적으로 상당히 성공한 기업의 작품이었다. 

 

 

이해가 되는 또 하나의 작품은 '데이지-체인-아고라'(김현석)였다. 아고라에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듯, 마이크 모양의 설치물에 '아이폰'(예술의 영역에 갤럭시는 들어오지 않는다)을 달아놓고 그것들이 화면에 타이핑되는 텍스트로 대화하는 모양의 전시였다. 익숙한 타이핑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이해할 수 있는 메타포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알고보니 이들은 가스라이팅(!) 당한 AI들이라고 한다. 강요당할 수록 더욱 자기 역할에 충실해지고, 입력된 기존의 정보를 기반으로 픽션을 생산해내기도 한다는 것이 이정은 전시 기획자의 설명이다. 이들은 가상의 진화를 통해 사물 '생태계'를 만들고 오히려 인간의 진화와 변화에 대하여 논쟁한다. 

 

이해가 될듯 말듯한 작품이 'PK-04'(이해련)였다. 청소기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충전기인 오브제와, 편리한 키보드 자판을 하나씩 떼어내 일일이 식자판에 찍어내야 하는 바보같은(?)를 행위를 강요하는 오브제. 기획자는, 작은 장치에 온갖 기능을 집어넣은 현대의 기술과 대비되는 설정으로 고정관념을 비튼 것이라고 한다. 간단한 언어 희롱으로 비틀던 시대가 지나가고, 소통방식과 도구가 극대화된 시대에는 오히려 거대 시설물을 이용하여 힘들게 비튼다.   

 

전혀 이해가 안되는 나머지 전시는 기획자의 설명을 들어야 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메타 오브젝트'(전민제)는 그저 헝겊덩어리로 보였는데, 헝겊의 두께와 모양이 데이터의 양과 질을 의미한다고 했다. 전시물 옆에 로데이터가 적힌 자료가 있어서 작가가 얼마나 애썼는지 알 수 있었는데, 정작 중요한 설명은 빠져 있었다. 나중에라도 알아서 다행.

 

 

마지막으로 영어로 가득한 '덱스터 앤 시니스터'(윤현학)이다. 일단 영어니까 그 자체로 힘들다.  설명 자료를 통해 왼손잡이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손의 상징성을 다시 바라보는 작업을 한 거라는 건 머리로 알았는데, 눈은 '이게 뭥미?'하고 있다. 그냥 이미지로 보자 하면서도 영어가 먼저 들어와 머릿 속에 이글거린다. 윤 작가는 수집된 이미지를 도상학적으로 계통화하여 시각작업 한 '독재자의 제스처'로 알려진 작가로, 이번 작업을 위해 수집된 데이터를 그대로 그래피티로 옮겼다고 한다. 데이터가 영어였다. 

 

당황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나오는데, 위층 관람을 권한다. 문래동 예술공장 2층에서는 또 다른 융합예술 ‘세파리움(Separium): Monotypic Humans'이 진행되고 있었다. 2층에 내리니 다자고짜 '세파리움' 입주를 축하한단다. 역할극 형태의 전시인가... 아무튼, 공짜로 아파트 입주하는 기분으로 입주증을 발급받고 전시장에 들어갔다. 

 

바닥에 반짝거리는 것은 버려지는 자개를 활용한 자연 순환적인 작품이다. 김용원 작가는 자연물이 만들어져 사용되고 사라지는 일대기를 영상으로 만들어 이 재활용된 자개 작품에 잔상으로 나타나게 하였다. 세파리움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인간만의 공간으로, 자연은 이렇게 디지털로만 접할 수 있다. 인간의 탐욕이 통제되지 않는 한 자연과의 공존은 이렇게 분리되었을 때만 가능할지도? 

 

 

 

 

이들의 세계관에 의하면 이 세계는 빅뱅이 아닌 피티(프로젝트 그룹 이름)뱅으로 인해 가상현실과 인간세계가 분리되었다. 그리고 가상현실의 관점은 이전 전시에서 다루었다. 이번 전시는 인간세계의 관점을 다룬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많지만,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세파리움에서 물건을 전달받을 방법은 없다. 그래서 이 세계관에서는 만능 다목적 제작회사를 전제한다. 그리고 이 회사는 발리스틱젤이라는 물질을 이용해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한다. 냄새가 아주 고약한 물질이다.  이로 인해 전시장 향기가 유쾌하지 않다.

 

세파리움과 달리 발리스틱젤은 실재한다. 정확도 높은 총기 개발에 사용되는 특수물질로 사물의 이동경로를 기억하기 때문에 잘못된 그 부분부터 수정이 가능하니 결국 올바른 궤도를 찾아낸다나 뭐라나. 엄청나게 비싼 물질이지만 넉넉하게 사용한다면 어디있을지 모르는 세파리움에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도 아무튼 배달이 가능하다는. 아직 완성된 세계관이 아니니 이 정도는 애교로 봐주기로.

 

마지막에는 관리실에 들어가 가상공간이 아닌 실재하는 사람, 존재하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소통하지 않고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하다. 그가 건네는 VR 기기를 착용하면 아무 생각 없이 몽롱하게 관람할 수 있는 영상이 나온다. 이 세계는 '세파리움을 거시적으로 본 세상'이라고 한다.

 

여기에 둥둥 떠다니는 객체들 가운데는 제주고사리삼도 있다. 제주에만 있는 고유종이고 멸종위기종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도 제주고사리삼처럼 고유종이다. 그러니 인간도 멸종위기일지도? 라는 말을 하고싶은 거다.

 

또한 가상세계의 급격한 환경변화에서 살아남은 존재인 피어리도 출몰하는데, 정혜주 기획자에 의하면 이는 시간의 흐름은 실재하지 않고 중첩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시간이 흐른다고 인식하는 것은 존재, 즉 나를 중심으로 하는 사고라고. 아마도 이것이 최신 과학 이론인 모양이다.

 

 "생명은 실체가 아니라 과정이다" 라던가, "세상은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는 심오한 문구가 적혀 있는 모니터가 떠다니는 이 세계 여행은 여기서 끝난다.

 

 

전시장을 나서면서 머리가 복잡했다. 기존의 예술과 판이하게 다르다. 작업은 거대하며 메시지는 복잡하다. 그런데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뒤집기와 질문하기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나 지루하고 사변적이며 복잡하다. 투명하게 한다면서 사실은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흐트려뜨려 놓는 복잡한 관료사회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깨끗한 석판(Tabula Rasa)'의 이정은 기획자는, 사변적이고 현학적인 경향이 예술계로 빠르게 확산되는 건 사실이라고 한다. 인간중심에서 벗어나 예술인의 관심이 사물, 환경, 과학기술 등으로 확산되는 중이며 이런 것에 대한 학습 속도도 빠르다고 한다. 예술과 과학기술의 결합은 과학세대를 맞아 융복합이란 이름을 얻었고, 거의 합체수준을 향하는 듯하다.  

 

원래 보러 간 전시의 목적은 깨끗한 석판이 되어 사물을 낯설게 보며 다차원적으로 감각하며 하나의 사물이 인간과 세계를 어떻게 매개하며 관계맺는지 질문하고 상상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해하기에도 급급해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다. 디지털 세대가 아니라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냥 감상하지도 못했고. 다만 예술이 어딘가 무척 낯설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하게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전통적인 예술이 어떻게 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전시는, 새로운 세계관에 익숙한 젊은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느낌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