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국립극단 망했어요? -다시 시작한 국립극단 담론(1)에서 계속)
평론가를 포함한 연극인들이 지난 12월 4일에 시작한 국립극단의 미래에 대한 정책 세미나 두 번째 토론자는 최영주 연극평론가이자 드라마투르그였다. 그는 표류하는 국립극단에 참고가 될 사례로 영국 내셔널 씨어터를 소개하였다.
영국은 세익스피어의 나라이자 풍부한 식민지 자원을 기반으로 생겨난 경제적 풍요 덕분에 문화소비가 활발한 나라다. 특히 연극은, 최영주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제반 생태가 가히 모범적"이라고 할만한 곳이다. 그런데 이런 나라의 국립극단은 우리나라보다 12년이나 늦은 1963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1848년 제안, 1879년 기부금 받기 시작, 1902년 극장건립기구 출범
1848년, 런던의 출판업자 윌슨이 셰익스피어 극장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웨스트엔드 뮤지컬 부상과 상업 극장의 대중적 취향에 맞서 진지한 연극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프랑스 꼬메디아 프랑세즈 극단이 런던 게이티 극장을 마련한 것이 자극이 되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 사후 300주년이 되는 1916년에 이를 기념하는 국립극장을 마련하자는 논의에 불이 붙었다.
1879년,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랫퍼드-어폰-에이본에 로얄 셰익스피어 기념 극장이 설립되었다. 이에 자극받아 런던에서 셰익스피어 국립 극장 기부금 모집 활동이 전개된다. 당시 영국에서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선호했지만 극장 건립에 관심이 없었다. 놀랍게도, 극장은 일회성 공연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국립극장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오래 걸릴 것을 각오하고 1902년 극장건립 실천기구인 '셰익스피어 리그'를 만들고 차근차근 추진한다.
1904년 국립극장 기획안 마련, 1949년 극장건립법안 하원 통과
2년만인 1904년, 『국립극장 설립을 위한 기획과 예산』이라는 기획안을 작성해 국립극단의 성격과 구성, 각각의 역할과 보수 및 운영 계획까지 상세하게 담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 뒤인 1909년 여기에 기반하여 『셰익스피어 기념 국립극장을 위한 핸드북』을 출판했다.
이듬해에는 극장설립의 정당성을 담은 희곡을 공연한다. 이 희곡에는 여왕도 등장한다. 그리고 극장건립기구인 '셰익스피어 리그'를 만든지 11년이 지난 1913년, 내셔널 씨어터 법안이 하원에 제출된다.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셰익스피어 사후 300년인 1916년에 국립극장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법안은 1, 2차 세계 대전으로 계속 지연되다가, 극장건립추진의 핵심인물 사망 등으로 법안 제출 후 무려 36년이 지난 1949년에야 하원을 통과한다.
1951년 극장 초석, 1969년 기공식, 1977년 완공
1951년 여왕이 놓은 국립극장 초석은 이리저리 옮겨졌고, 1955년 이후 정치가들의 비협조 등의 이유로 표류하다가 1962년 국립극장 상임위원회가 만들어진 뒤인 1969년에야 기공식을 가졌다. 이후에도 경제불황 등의 이유로 공사중단 위기를 겪었고, 1977년에야 지금의 국립극장이 완공되었다.
1963 국립극단 창단, 임기 5년 예술감독 재임 가능
국립극단은 국립극장 완공을 기다리지 않고 1963년에 임시 극장인 올드빅 극장을 본거지로 하여 창단되었다. 국립극장의 예술감독들은 5년 임기로 재임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10년 이상의 임기를 수행하면서 셰익스피어 작품은 물론, 신진 작가를 옹호하는 창작극과 현대극 등을 무대에 올리면서 레퍼터리의 균형을 잡는다.
이 과정에서 극장이 속한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관객의 정체성 인식, 억압된 문제를 공공연하게 드러내 정치권의 소극적 대응과 외면을 공격함으로써 연극을 공적 담론의 장이자 시대의 빅 이슈를 성찰하고 언급하는 곳으로 만들기, 젊은 작가와 연출가 발굴 등 세대 교체 및 적극적 지원으로 젊은 세대의 관심이 국립극단으로 향하게 하기, 저가의 티켓 제도와 스크린을 통한 송출로 누구라도 연극을 볼 수 있게 하는 관객 중심주의 실현 등 국립극단의 과제를 많이 발굴하고 또 해결해 왔다.
예술감독 선정 전 후보 자격 및 과제 공론화
또한 영국국립극단은 예술감독이 바뀌기 수개월 전부터 차기 예술감독을 아젠다로 삼아 공론화 한다. 현직 예술감독과 연출 배우 등이 공중파에 나와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국립극장의 다음 과제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이 과정에서 차기 예술감독의 자격과 과제도 논의하고 공유된다.
최영주 평론가는 영국국립극단의 공연 레퍼토리와 특징, 의미, 평가 등을 상세히 소개하였다. 예술감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 중요한 역할의 예술감독이 희곡 선택만큼은 일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예술감독은 '희곡 리딩위원회' 3명 중 한 명으로서 투표권을 가질 뿐이다.
소신과 합의로 만들어지 영국립극단의 이미지, 견고함과 진중함
국립극장 예술감독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사전 토론, 통상 10년의 임기, 합의 과정을 거치는 희곡 채택 등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영국 국립극단의 "견고함과 진중함"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물가 비싼 영국에서 저렴한 가격에 최고의 극장에서 고품격 연극을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작품 할만하면 그만둬야 하는 겨우 3년의 예술감독 임기, 짧은 기간 휘둘리기 딱 좋은 지나친 전권, 가성비 높은 음식점과 함께 놀러가기 좋은 강변에 위치한 영국국립극장과 달리 국립극장이 어디인지도 헛갈리는 우리의 현실을 풍자하면서 최영주 평론가가 발표를 마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