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영국국립극단 잘되는 이유? - 다시 시작한 국립극단 담론(2)에서 계속)
평론가를 포함한 연극인들이 지난 12월 4일에 시작한 국립극단의 미래에 대한 정책 세미나 플로어 토론에서는 영국국립극단에 대한 질의응답과 함께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다음은 질의 응답 및 플로어 발언 내용을 뉴스아트에서 정리한 것이다.
연극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국립극단 시스템
연극인들은 무기력감을 느낀다. 국립극단의 정체성에 따라 극장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국립극단의 폐쇄성으로 인해 정체성이고 뭐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내부에 평가시스템이 있다는데 평가 요인조차 비공개이다.
지난 해 서계동 창제작극장이 문을 닫게되면서 우리 문제는 국립극단 문제로 바뀌었다. 극장은 한 번 만들어지면 바꾸기 힘들기 때문에, 당시 창제작 극장이 크게 문제가 되었지만,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국립극단의 운영시스템이다.
극단의 정체성은 예술성과 문제의식에 있다
국립극단의 정체성은 오랫 동안 쌓여온 레퍼토리에서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립극단은 과거 전속극단 시절부터 관료 공무원이 레퍼토리를 간섭하고, 국립극단의 연극을 국책홍보에 사용하면서 국립극단의 이미지(혹은 정체성)는 낡고 고루하고 보수적이며 과거회귀적이라고 인식되었다.
다행히 지금의 국립극단에는 다양한 연출가들이 유입되면서 잘 만들어진 작품이 꾸준히 올라온다. 하지만 그 연극들이 너무 '들쑥날쑥'하여 민간극단이 아닌 국립극단에서 할만한 공연인가 싶은 것이 많았다.
예술감독의 역할, 임기, 선출방식의 차이
예술감독의 임기가 3년밖에 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1~2년 시스템과 업무 파악하면 그만둘 때다. 그러니 누가 제대로 할 수 있겠나? 게다가 단절적이다. 영국은 예술감독 퇴임이 다가오면 재임기간 평가 및 차기 과제 등을 놓고 개방적으로 광범위하게 소통한다.
해외(영국)에서는 예술감독 임기가 5년이고 5년씩 연장된다. 보통은 본인이 언제 그만둘지 결정한다. 예술감독을 뽑을 때 우리는 문화체육부에서 하지만 영국은 국립극단의 이사진이 큰 역할을 한다. 예술감독 후보는 자신의 포부를 이사진에게 어필하고 이사진이 결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외압이 많고 예술감독의 역할 자체도 너무 번거로와서 훌륭한 후보들이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단계적으로 국내 극단과 국립극단의 시스템을 숙지한 상태에서 예술감독에 지원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단계 다 생략하고 선발한다.
국립극단에서 볼만한 연극이란 무엇인가
우리 국립극단이 다작주의로 정체성이 모호해졌지만, 국립극단의 문턱을 낮췄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면도 있기는 하다. 기회균등은 시대담론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다만, 관객에게는 평등이 중요하지 않다. 관객은 '국립극단까지 가서 볼만한 연극'을 봐야 한다. 평소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연극을 국립극단 무대에 올리는 것은 관객 입장에서 실망이다.
물론 국립극단이 지속적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어왔기 때문에 어떤 연극이 국립극단에서 볼만한 연극인지조차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한국 연극계를 흔들 수 있는 국립극단이기를
이런 면에서 그동안 계속 논란이 되었던 단원제도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국립극단에 어울리는 작품과 방향이 더 중요하다. 지금 국립극단의 연극은 관객이 많지만 파급효과는 거의 없다. 국립극단은 작품이나 극장 뿐 아니라 한국 연극계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국립극장의 문턱은 높이되 문은 열어두면 좋겠다. 지금처럼 국립극장에서 오디션을 하지 않고 민간 극단의 작품을 올릴 기회를 주는 것이 합리적인가? 영국국립극단은 오디션제다. 단원제로는 그 역할에 딱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작품 수다. 지금의 국립극단처럼 연간 20개씩 하면 오디션이 불가능하다.
한편 이날 원로배우인 우상전씨는 국립극단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담은 13페이지 짜리 유인물을 현장에서 배포하였다.
대책없는 예술대학 정책으로 실업자 양산
그는 지금 연극계 위기를 초래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졸업생들에 대한 대책이나 예술 현장과의 논의없이 연극학과 입학 정원을 대폭 늘려 실업자를 양산한 교육부, 연극은 인지적 능력도 중요한데 수능 없이도 들어갈 수 있게 한교육부를 비판했다. 또한 국립극단을 둘러싼 자신의 경험과 함께, 과거 국립극단 단원제의 폐해 및 블랙리스트 문제를 상기시켰다.
그는 연극이 생존하려면 ▲공평주의보다는 오디션제도를 확립하고 ▲지원금보다는 중고등부 연극교사 배출 통로를 만들어야 하고, ▲지자체 지원을 받는 극단을 만들어 정원을 늘려놓은 연극학과 졸업생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