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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별도 논의 필요성 수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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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국립극장 아님을 명확히 함
극장의 역할과 프로그램이 먼저 논의되어야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건립을 놓고 팽팽한 의견 대립을 보이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국립극장 바로세우기 범연극인연대(이하 범연극인연대)가 지난 21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 만남의 주제는 <창·제작 전용 국립극장이란 무엇인가?>였다.

 

 

현장에 참여한 대다수 연극인들은 그동안 갈등을 빚어오던 쟁점을 둘러싸고 첨예한 논의가 오갈 것을 기대했지만 제 1회 포럼이니만큼 주제에 충실한 발제들이 있었고, 토론에서도 창·제작 전용 극장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발언하였다. 다만 시의성을 의식한 듯, 문체부 윤성천 문화예술정책실장이 주도적으로 서계동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문체부 입장을 뉴스아트에서 요약한 것이다. 

 

저희 판단으로는 이정도면 굉장히 정상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국립극단의 대표성에 문제가 있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국립극단과 계속 소통하면서 진행했다. 행복주택 또한 예술인을 위한 것이다. 연극인을 중심으로 할 수도 있다. 극장 건립에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좋은 대안으로 진행한 것이다. 정부가 책임지고 하는 선택이 아닌가. 의견이 다 다른데 언제까지 그걸 다 들어줄 순 없지 않은가      - 윤성천 문화예술정책실장

 

 

이에 서울연극협회 박정의 회장은 문체부가 일을 잘못했다던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다음과 같이 입장 차이를 명확히 하였고 이 차이에 대하여 문체부의 윤실장도 동의하였다.

 

문체부와 연극계는 사고의 출발점이 다르다. 우리는 복합문화시설이 아니라 국립극장을 원한다   - 박정의 서울연극협회 회장

 

그동안 문체부는 서계동 복합문화공간이 국립극장 시설을 포함하는 것이므로, '원한다면 창제작 공간도 만들어주겠다', '극장 이름도 유지하겠다', '연극계 의견을 반영하려면 논의틀에 들어와라'고 해 왔다. 하지만 이것이 국립극장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다같이 써야 할 것 아니냐면서 애매한 입장을 취해왔다.

 

쌍방은 이번 포럼에서 처음으로 서계동 복합문화공간은 국립극장 시설이 아님을 명확히 함으로써, 국립극장은 별도로 논의해야 할 사안임에 합의한 셈이다. 그런 전제 하에서 보면, 포럼에서 발표된 내용들은 국립극장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기준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익한 내용들이 많았다.

 

 

극장에 담을 프로그램이 먼저 

 

첫 번째 발제를 맡은 류정식씨는 건축가이자 연출가로서 미국과 영국 등에서 국립극장을 포함한 여러 극장 건립에 관여한 바 있다. 그는, 극장은 공연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관객개발을 염두에 두고 배우, 관객, 프로덕션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래서 극장 자체보다는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할지 먼저 계획하고 그에 맞춰 극장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영국국립극장은 1908년 연출, 무대, 기술 등 현장 예술인과 예술경영자, 그리고 무대 전문 디자이너를 포함한 민관위원회가 새로운 형식의 연극이 가능하도록 1년 동안 아주 상세하게 12장에 걸친 예산계획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계획의 핵심은 극장 밖에 있는 사람들, 즉 비관람객도 관람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도록, 광장은 물론 극장의 모든 시설이 이용되도록 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1949년 국립극장법을 만들고 우여곡절을 거쳐 1977년 국립극장을 완성했다. 그리고 모두 7번의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배우와 관객 사이의 친밀함을 유지하고 현대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성공적인 공연을 올려 이익을 남긴다는 목표를 향해 극장을 계속 혁신하고 있다.

 

빈 공간이나 로비를 낮에는 휴식공간이나 소호사업공간으로 제공하고 그 공간이 저녁에 극장으로 변모함으로써 체류하던 이들을 관객으로 끌어들이는 디자인 전략이라던가, 예술 정규 교육을 거치지 않은 일반인도 예술인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창/제작공간을 신설하는 것 등은 국립극장만이 할 수 있는 대표적인 혁신이다.  

 

꿈같은 이야기, 레퍼토리 극장

 

이화여대 독일어 교수이자 연극학자인 이안 코이즌베악(Ian Creutzenberg)씨는 독일 베를린의 공공극장인 막심고르키극장의 사례를 발표하였다. 이 극장은 한 달에 23일 동안 20편의 서로 다른 작품을 27회 공연한다. 고전과 신작, 그리고 늘 재공연되는 레퍼토리 작품을 섞어 거의 매일 다른 공연을 올리는 셈이다. (관련기사 해외 예술단 채용, 평가, 급여, 운영방식은 어떨까?)

 

 

이런 시스템 덕분에 관객은 마음에 들었던 과거의 공연을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고 연극계는 공연유산을 연속적으로 재연할 수 있다. 여기에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작품도 운용하기 때문에 단골 고객은 물론  다양한 연령과 정체성을 가진 신규 고객도 끌어들일 수 있다. 다만 이 많은 공연을 지휘하는 총예술감독이 권한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잘 관리해야 하고 인건비 등 유지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이런 방식일 때 공공극장의 공익 기능이 잘 유지된다고 본다고 이안 교수가 결론을 내릴 때, 이를 듣고 있던 한 원로 연극인은 "꿈같은 이야기구나 허허" 하는 반응을 보였다. 

 

독일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극장, 그러나 역할이 없다 

 

마지막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이자 평론가인 장은수씨가 서계동 국립극단 문제와 연관하여 국립극장에 필요한 시스템에 대하여 발언하였다. 많은 참석자의 부러움과 탄식을 자아낸 앞의 두 발제 내용과 대비하여 장 교수는 "최근 10년간 한국 연극은 엄청나게 발전하였다"는 말로 발언을 시작하였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극장보다는 배우라고 하였다. 포럼 시작 전 국회 회의실에서 연극 <관객모독>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공연은 어디에서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 140개의 극장이 있는 반면 우리에게는 256개의 극장이 있다"면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극장의 수가 아니라 극장의 구체적 역할에 대한 합의가 없이 모두 대관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는 창/제작 부속건물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앞으로 창·제작 극장을 포함하여 대관 중심 극장, 상주 극단이 있는 극장,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는 프레젠팅 극장 등 다양한 극장의 역할을 토의하는 자리가 지속적으로 마련되길 바란다고 하는 그의 발언에는, 2019년에 연극계에 일었던 공공극장의 역할에 대한 토론이 코로나 등으로 인해 지속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극장은 시설이 아닌 조직, 시민 참여 필수

 

발제 후 지정토론에서 발언한 이양구 연출가 겸 작가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국립극단의 대표성이 일정하게 훼손된 결과, 문체부가 국립극단과 소통한 것이 연극계와 소통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이 논의가 국립극단이 공공성을 획득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독일 하이델베르그 극장을 사례로 들면서, 극장의 공공성은 건립 과정에 시민이 참여함으로 획득된다고 하면서 이런 이유로 극장을 시설이 아니라 조직으로 보아야 하며 이는 극장 운영에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국연극협회 손정우 이사장은 문체부가 공공극장 건립을 책임지려하지 말고 공공건축제도를 이용할 것을 권하면서, 앞으로 이 포럼을 문체부와 함께 해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노경식 범연극인연대 공동위원장은 폐회사를 통해 이번 포럼에서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건립을 둘러싼 쟁점이 직접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아쉬움을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이번 포럼은 범연대의 제안으로, 국민의 당 최승재 의원실에서 주최하였다.  최승재 의원은 환영사를 통해 차분한 어조로 연극이 문화예술 분야에서 갖는 의미를 언급하면서, 제대로 된 극장이 부족한 현실이 의지의 문제인지 시스템의 문제인지 포럼을 통해 명확히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하였다. 

 

홍익표 의원(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이용호 의원(문광위 간사), 정진석 의원(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 성일종 의원(국민의 힘 정책위의장)도 각각 축사를 통해 창·제작 전용 국립극장 논의에 힘을 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