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2월 5일, 서울연극협회와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진행하는 국립극단의 미래에 대한 제 2회 정기 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알 수 없는 국립극단 시스템?
이번 주제는 국립극단 운영시스템으로, 독일과 프랑스의 국립극단 운영시스템을 살펴본 뒤 우리나라 국립극단의 운영시스템을 살펴볼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립극단 시스템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은 데다가 그와 관련된 연구물도 구하기 어려워, 결국 국립극단 시스템에 대한 질문만 잔뜩 남기고 끝났다. 국립극단은 예술감독도 이사장도 임기 만료 전에 결정하지 않아 현재 모두 공석인 상태이다.
한편, 독일과 프랑스의 기초예술 지원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선망의 대상이 되어 왔다. 지역분권화된 두 나라에서는 극장도 각 지역으로 분산되어 있으며 연극을 '시민교육의 장'으로 보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유혈 혁명을 통해 시민사회로 이행한 프랑스는 연극현장의 민주적 운영방식을 강조하고 있었다. 내외부 정치환경의 영향으로 절대왕정을 포기한 독일은 연극현장에서도 직업교육을 강조하며 다양한 일자리 제공에 힘쓰고 있었다.
특정한 국립극장이 아닌 지역 공공극장, 다양성 추구하는 독일
발제에 의하면, 영국에도 프랑스에도 있는 "국가를 대표하는" 국립극장이 독일에는 없다고 한다. 연방국가인 독일은 각 자치주와 시마다 140여 개의 주립 및 시립극장이 '지역극장'으로서 존재한다. 이 가운데 규모가 큰 주립극장들을 때로 국립극장이라고 하는데, 아무도 '국립' 여부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
독일 극장은 '국립'보다는 '다양성'을 자랑한다. 공공극장 외 민간 극장도 200개가 있는데, 공공성을 띤다고 인정받으면 비용의 70%까지 자치단체에서 공적 기금으로 지원한다. 또한 상주극단 없이 대관만 하는 극장도 600여개다. 극장만 총 1000개에 육박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도 극장 수로는 독일과 프랑스에 뒤지지 않는다
2022년 기준 전국 문예회관(=지역 공공극장) 수는 262개로 독일보다 많다. 프랑스 공공극장은 129개로 우리보다 훨씬 적다. 우리나라 극장은 민간 공연장까지 합치면 2022년 기준 총 992개로 독일과 비슷하다. 문제는 극장의 가동률이다.
발제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극장은 대부분 대관 극장이기 때문에 실질 가동률은 25%에 그친다고 한다.¹ 전국의 문예회관들이 거의 문을 닫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독일 극장, 특히 공공극장은 연중 여름 휴가기간을 제외하면 주 7일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공연이 올라가면서 최대한 가동된다. 독일 극장의 40%는 상주단체가 있고 레퍼토리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¹ 편집자주.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발간한 공연예술조사보고서의 문예회관 및 공공 극장 가동률은 이보다 높게 나오는데, 이는 휴관일수와 시설점검일을 모수에서 빼면서 공연준비일수나 기타행사일수까지 가동한 날에 산입하여 계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가동률은 25%에 가깝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뉴스아트 2022년 기사에 의하면, 코메디프랑세즈는 직원 400명(단원 60명 포함)이 리허설을 포함해 연간 900회의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전속단체, 정규직 등의 직업적 안정을 제공하는 대신 공공의 기대에 최대한 부응하도록 하였다. (참고 기사 해외 예술단 채용, 평가, 급여, 운영방식은 어떨까?)
독일 극장공연 지원예산 = 우리나라 공연예술예산
= 3조원 =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독일의 연방 및 지방정부는 공공극장과 상주공연단체들에 대하여 연방 및 정부 총 지출의 0.2%에 달하는 3조원을 지원한다고 한다. 그런데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공연예술실태조사보고서"에 의하면, 2022년 우리나라 공연예술예산은 중앙정부(3780억원)와 지방자치단체(2조 6573억원)를 합해 총 3조가 넘는다. 이 많은 공연예술예산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는 "공연예술이 포함되는 축제, 전시, 문화행사를 모두 공연예술에 산입하였기 때문에 그 안에는 지방 축제와 문화행사 예산이 상당부분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공연예술예산을 따로 산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공연예술에 대한 예산의 수립이나 집행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예산 항목과 산입 방식이 계속 바뀌는데다가 문화관광, 산업, 심지어 홍보와도 뒤섞여버리기 때문이다.
문화부 설립의 배경과 목적이 달라서 나온 결과일까?
우리나라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보부에서 출발하여 지금도 공보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프랑스 문화부는 국립예술단체들과 정부가 서로 협력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1959년에 초대 장관으로 앙드레 말로 작가가 취임해 공공극장의 방향성을 주도하고 정책을 수립하였다.
(프랑스) 공공극장의 체계는 정부 주도하에 각 도시의 인구 수에 따라 국립극장, 국립연극센터, 국립무대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공공극장의 주된 임무는 창작 주체... 대관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극장 스스로가 예술 창작의 작업장으로서... 제작을 하거나... 배급을 확보하는 것... - 정애란 연극학자, 배우
목표가 다르면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공보기능을 겸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예술분야의 콘트롤타워가 될 수 있을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극장 - 낮은 입장료, 민주적 운영
문화부 주도하에 만들어진 프랑스 국립극장들은 민주적 운영을 위하여 구체적이고 투명한 장치를 마련했다. 또한 연극의 엘리트주의를 버리고 극장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개념으로 입장료를 낮췄다. 이는 경제민주화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대표적인 국립극장 코메디 프랑세즈의 경우 극장의 주요 의사결정을 운영위원회에서 한다. 운영위원 구성에 대한 권한은 극장장과 정단원총회가 동일하게 갖는다. 대본결정도 극장장을 포함하여 12명의 위원으로 이루어진 대본심사위원회를 통한다. 단원 거취에 대한 결정은 정단원총회에서 한다. 국립극장은 노동법의 규제를 받기 때문에 노사위원회도 있다. 극장 운영 규정에는 최소공연횟수, 배우고용방식, 예산사용기준까지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기능공이 극장에 상주하며 직업교육 실습장으로 활용
독일은 극장을 시민의 미적, 윤리적, 인성 교육기관인 동시에 직업교육기관으로도 활용한다고 한다. 독일의 공연제작시스템은 상주극단 체제를 기반으로 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공장식 제작시스템이다.
독일의 국공립극장들은 (공연 완성을 위한) 협업에 필요한 기본 인력을 고용... 직업군도 다양하다... 일반적인 스태프 뿐 아니라 헤어디자이너, 봉제가, 페인터, 구두수선공에 이르는 기능공들이 극장에 상근하는 것이 독일 제작극장의 오랜 전통이다... 또한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실습장으로서도 중요하다. - 장은수 연극평론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닫힌 건물인 극장이 열린 공간의 역할을 하려면 '광장' 필요
장은수 교수는 서계동 국립극장 자리에 세워질 새로운 극장을 의식한 듯, 발제 마무리에 "광장이야말로 극장의 공공성을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극장을 건물로 보면,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은 대상화될 수 밖에 없다. 극장이 관객을 대상화하지 않고 공연자와 연결시키려면, 자유롭게 들어와 만나고 휴식하며 이야기 할 공간으로서 광장이 필요하다. 이는 곧 극장의 접근성이 된다. 그래서 세계의 극장들은 건물보다 광장을 중시하고, 광장을 중심으로 관객의 동선을 고려한다.
극장 문이 닫혀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서 언제든지 찾아와 공연을 볼 수 있고, 관객 동선의 중심에 있는 '광장'에서 공연의 감동을 음미하며 서성거릴 수 있고, 예술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거닐 수 있는 생활공간이자 창작의 공간, 그것이 국립극장이고 공공극장이다.
한국의 극장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