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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화가 이쾌대 자화상, 베니스 비엔날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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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은 브라질 태생의 아드리아노 페드로사이다. 남미 출신 큐레이터가 총감독이 된 것은 비엔날레 역사상 처음이다. 그의 지휘 하에 4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열리는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전시 주제는 ‘Foreigners Everywhere(누구나 이방인)’이다.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는 지난 해 6월 비엔날레 전시주제 "누구나 이방인"를 발표하면서, 이번 비엔날레가 인종, 출신, 언어, 문화, 젠더, 부의 격차 등으로 인해 억압받거나 위기를 맞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민족성과 고유성으로 인해 생겨난 불균형이나 차이점을 표현하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외국인, 이민자, 실향민, 망명자, 난민 예술가들의 작업에 초점을 맞출 것,  성 정체성으로 박해받고 소외되는 퀴어 예술가, 독학으로 작업 활동을 시작한 예술가와 민속 예술가 등 미술계의 변방에서 겉도는 인물들, 그리고 모국의 땅에서 여전히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토착 예술가 등을 조명할 것   -- 베니스 비엔날레 큐레이터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본 전시 주제의 기반이 된 작품은 클레어 폰데인의 진화하는 네온 조각 시리즈 ‘Foreigners Everywhere’(2004)이다. 이 조각은 53개의 다른 언어로 설치된다. 페드로사는 “알려지지 않은 모더니즘 운동에 주목해보라”면서 “우리는 그들에 대해 그리고 그들로부터 더 많이 배워야 한다”라고 했다.

 

 

지난 1월 31일, 이탈리아 베니스 현지에서는 주제전에 참여할 미술가 331명을 발표하였다. 이 가운데에는 이쾌대, 장우성, 김윤신, 이강승 등 4명의 한국인이 포함되었다. 

 

이쾌대는 월북작가이고, 장우성은 백원짜리 동전의 이순신 그림을 그린 화가로, 일본화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문인화를 재현했다는 평을 듣는다. 한국 1세대 조각가 김윤신(89)은 아르헨티나의 나무에 매료돼 이주한 뒤 멕시코, 브라질,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영원한 이방인이며, 이강승(46)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며 동성애자 등 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 온 다학제적 예술가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 후보 작가로 전시가 진행 중이다. 

 

 

331명의 작가 명단을 발표하는 현장에서는 이쾌대의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이미지가 공개되었다. 르네상스풍 초상화에 한복 차림으로 팔레트를 든 단호한 표정의 이쾌대 모습이다. 천재 화가임에도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최근까지 금기시되어온 이쾌대라는 작가와 그의 자화상은  "누구나 이방인"이라는 이번 비엔날레 주제에 딱 들어맞았다.

 

작가 명단이 발표되던 1월 31일, 한국에서는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제 60회 미술전 연계 한국미술 공동기자간담회'가 있었다. 놀랍게도, 한국의 비엔날레 참여는 각자 알아서 행해졌기에 공동기자회견조차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공동기자회견에서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한국의 국가대표 작가들이 총출동하여 특별전시를 열고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 4개와 위성 전시 2개도 베니스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한국관 개관 30주년 전시는 한국관과 별개의 장소에서 열리며, 본 전시 주제와도 무관하게 ‘모든 섬은 산이다’(4월 18일~9월 8일)라는 주제로 선보인다고 했다. 올해 한국관 작가인 구정아 작가까지 포함된 역대 한국관 작가 30여명(팀)의 개별 작업을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총망라하여 총 80여점을 내보낸다. 전시장인 몰타 기사단 수도원의 유서 깊은 중세 건축 공간의 내외부를 가로지르며 한국 동시대 미술 30년을 보여줄 예정이다. 

 

병행전시는, 광주비엔날레 30주년 기념 아카이브 특별전 ‘마당-우리가 되는 곳’(4월 18일~11월 24일),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의 특별전 ‘유영국: 무한 세계로의 여정’(4월 2일 ~11월 24일), 역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이성자의 개인전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4월 20일~11월 24일), 이배의 개인전 ‘달집 태우기’(4월 2일~11월 24일) 등 4개가 열린다.

 

위성 전시로는 갤러리현대의 신성희의 개인전(4월 19일~7월 7일), 다국적 작가공동체 ‘나인드래곤헤즈(Nine Dragon Heads)’의 ‘노마딕 파티’가 있다.

 

한국인 작가가 4명이나 소개되는 본 전시 주제와 전혀 무관한 주제로 열리는 아르코 특별 전시와 병행, 위성전시라니? 

 


정병국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한국관 특별전과 병행 및 위성 전시가 "어떤 기획을 가지고 준비한 것은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아르코가 한국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갤러리나 재단이 현장에서 행사를 할 때 홍보해주고 마케팅 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기 때문에 "각 기관이나 갤러리가 준비한 대로 준비를 하되, 서포트 할 부분을 서포트 하려고 한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콘트롤타워가 분명하지 않고 지원기관만 여러 곳이다보니, 그동안 베니스비엔날레와 같은 큰 행사에 나가면서도 전체 전시 주제와 무관하게 민간단체들이 개별적으로 '괜찮은' 작가를 발굴하여 참여해 온 것이다. 정 위원장에 의하면, 늦었지만 그래도 이들을 엮어 '공동기자회견'을 한 것만으로도 "순수예술 지원의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는 월북작가라고 백안시하여 한국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던 이쾌대와 같은 작가를 총감독이 직접 본 전시의 주요 작가로 소개하였다. 이번에 소개되는 한국 작가가 총 4명이나 된다. 그럴 때, 한국관 특별 전시나 기타 전시가 본 전시 주제와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스토리를 담아 기획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처럼 오랫 동안 같은 민족을 이방인으로 대해야 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지 않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