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1월, 헐리우드 예술가 7명이 생성형 AI 기업인 미드저니, 스태빌리티 AI, 런웨이, 데비안아트 등을 고소했다. 이들 원고가 저작권법 위반 증거로 제출한 ‘미드저니 스타일 목록’ 문서에는 인공지능 훈련에 사용된 작가들의 명단이 포함되어 있었다.
생성형 AI 기업 대표가 흘린 저작권 침해의 증거
증거는 피고의 입에서 나왔다. 데이비드 홀츠 미드저니 CEO는 2022년 2월 디스코드 서버에 유명 아티스트 스타일을 모방할 수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 메시지를 올리면서, "4000명의 아티스트와 1000개의 스타일"을 언급했다. 그리고 구글독스에 ‘미드저니 스타일 목록’이라는 스프레드시트 링크도 게시했다.
당시에 그는 저작권이나 사용료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홍보 목적으로 올렸을 것이다. 생성형 AI가 창작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면서 문제가 커지자, 지금은 이 문서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무단 사용된 작가 1만 6000명의 저작물에 대한 소송
원고가 제공한 ‘미드저니 스타일 목록’에는 앤디 워홀, 쿠사마 야요이, 데미안 허스트, 뱅크시 등은 물론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파블로 피카소,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 그리고 월트 디즈니와 같은 저명한 인물들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상업 일러스트레이터, 게임 원화가, 디지털 아티스트, 기타 수상작가 등 나이와 성별, 분야가 다른 1만 6000명의 작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생성형 AI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무상으로 학습하고 있는지 보여주고있다. 창작자들은 그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던 생성형 AI 데이터 출처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영국 작가들도 영국 내 소송과 함께 헐리우드 소송에 합류할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한다.
AI 이미지 생성은 저작권 세탁?
AI 이미지나 스타일이 자신의 작품과 비슷하다면 창작자 입장에서는 섬뜩할 것이다. 사용자들은 실제로 특정 작가의 스타일로 그려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예술인들은 소송장에 "이미지 생성 AI는 '저작권 세탁 장치'로 볼 수 있다"고 썼다. 담당 판사는 이 주장을 기각하여 소장을 다시 제출하라고 하였지만, 예술인들의 반발은 쉽게 가라앉을 것같지 않다.
AI 생성물에 대한 창작자들의 반발은 저작권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미국법원에서 AI 생성물에는 저작권이 없다고 판결함으로써 일단락됐다. 남은 문제는 인간의 창작물이 데이터로 쓰이는 데에 대한 보상과 그로 인한 일자리 위협이다.
일자리에 대한 위협부터 살펴보면, 지난 2월 간단한 텍스트로 고화질 동영상을 만들 수 있는 생성형 AI 모델 ‘소라’(Sora)가 발표되었다. 영상업계는 크게 긴장하여 다양한 테스트 영상을 만들며 소라를 평가했다. 전반적으로, 군데군데 어색한 부분은 있지만 놀라운 수준이라는 반응이었다.
적당한 영상 제작은 소라가 독식할 지도
소라는 유튜브 쇼츠나 틱톡 같은 숏폼(길이가 짧은 콘텐츠) 동영상 제작에 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시간과 비용 문제로 동영상을 만들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에서도 쉽게 동영상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고도로 세련된 상업 영상이나 영화업계까지 위협하지는 않겠지만, 중등도의 일자리는 위협할 수 있다. AI더빙이나 이미지생성을 '적당히' 이용하는 것은 이미 일반화되었다. 일반적인 콘티(대본)나 스토리보드, 간단한 모델링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진입장벽 높아지고 고급인력에 의한 승자독식 심화 가능성
미국의 한 게임회사는 직원의 90%를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적당한’ 그림이면 되기 때문이다. 헐리우드의 콘셉트 아티스트들의 일거리와 보수도 줄고 있다고 한다. 소라에 텍스트로 기획의도를 넣어서 '적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업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동차 디자이너, 아트디렉터 등, 과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던 업종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흐름은 AI를 지휘하고 뛰어넘을 정도로 전문성이 충분히 갖추어진 소수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시장 양극화로 이어질 것이다. AI 생성물을 디테일하게 수정하는 종류의 일은 인간에게 남겨지겠지만, 이런 일은 아마도 창의적이기보다 3D업종에 가까울 것이다.
실무를 AI가 대신하면서, 새로 입직하는 사람들이 일을 배울 기회는 더욱 줄어들어 커리어를 쌓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장치와 사회적 합의가 없다면, 높은 진입장벽과 승자독식, 그로 인한 양극화는 심각해질 수 있다.
제공된 데이터에 대하여 보상해주는 곳도 있지만
생성형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 무단 수집 논란 속에서, 어도비는 인공지능 학습을 위한 데이터에 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영상 1분 당 3~7달러를 준다. 울고 웃는 감정 표현을 하는 등 일상 활동 모습을 담은 영상을 제출할 경우 최대 120달러까지 지불하기로 했다.
오픈에이아이는 씨엔엔(CNN)·타임지 등에 뉴스 사용료를 내고 콘텐츠를 기계 학습에 이용하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셔터스톡은 이미지생성 인공지능 달리에게 데이터를 판매하고 사진 제공자에게 수익을 분배하기로 하였다.
인공지능의 학습을 방해하는 파괴 프로그램 등장
이러한 보상 방식은 작품성 여부와 무관하게 그야말로 데이터로서 지급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에 창작자들이 동의할지는 알 수 없다. 동의하지 않는 창작자들은 다소 파괴적인 대안을 채택할 수 있다.
시카고 대학 벤 자오 시카고 교수팀이 지난해 발표한 ‘나이트세이드(Nightshade)1.0’라는 프로그램은 생성형 AI에게는 손상된 이미지를 제공하도록 만들어졌다. 이들은 음악 쪽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배우조합에서도 인물 사진을 손상하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자신의 작품을 온라인에 올린 뒤, 이를 본 제작사의 연락을 받아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할리우드 창작자들은 이렇게 올린 작품이 엉뚱한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파괴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인공지능의 혜택을 볼 수 있어야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때 우리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인공지능은 유명 작가의 작품만 학습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학습한다. 인공지능 학습에 어떤 데이터가 더 많은 기여를 하는지도 구분하기 어렵다. 인공지능의 학습에 기여하는 모든 창작물에 대하여 포괄적으로 보상하도록 하면 어떨까?
기업이 세금을 내는 것은,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사회 인프라를 사용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기여에 대한 대가를 사회로 환원하게 하는 장치이다.
인공지능이 예술인 기초소득 기반이 될 수도
예술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예술가 한 명이 탄생하는 것은 개인의 재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예술을 사랑하고 지지해야 한다. 다양한 이유로 일인자가 되지는 못해도 예술에 자신의 삶을 바치는 수많은 예술가가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은 예술인 기초소득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이 기존의 결과물을 활용해 다른 결과물을 생성해 어떤 형태로든 소득을 올릴 때마다, 학습 기반을 제공한 원 창작자들에게 기초소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지금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인공지능 기업들의 약진은, 자신들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이 분명히 할 때 인공지능과 창작자가 윈윈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기사 [2024에 바란다] 인공지능과 창작자 기초소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