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요즘 핫한 청계산 자락에 자리한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엑스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꽤 외곽에 자리하고 있지만 평일 낮 시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천주교 사제이자 화가인 "빛의 화가" 김인중 신부의 전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인중 신부는 상업 화랑에서 전시한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제 막 문을 연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엑스가 자리잡는 데에 기여하고자 흔쾌히 전시를 허락했다고 한다.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엑스는 현대미술작가 발굴과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게다가 김인중 신부의 작품들은, 이 갤러리의 첫 번째 영구소장품인 이민수 작가의 피에타와 조응한다. 김인중 신부의 작품은 창세기의 시작인 '빛'을 소재로 하며, 이민수 작가의 작품은 '예수의 죽음'을 소재로 한다. 이는 알파와 오메가를 한 공간에서 만나는 것과 같다.
압도적인 슬픔 혹은 그 너머에 있을 무언가를 베일로 덮어 극단의 은유에 도달한 이민수 작가의 <Shell_mercy, 悲>는 관객에게 겹겹의 베일 속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는 자유를 선사한다. 그리고 김인중 신부의 작품은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 베일을 뚫고 나온 빛이기도 한다.
이민수 작가의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 다 지은 갤러리 바닥을 다시 뚫어야 했지만, 작품은 아름다운 청계산 자락에서 비로소 안식하게 되었다. 이를 기획한 최건수 평론가는, 관객에게 상상할 자유를 더하기 위해 작가와 협의하여 조도가 가장 낮은 조명을 어렵게 구해서 설치했다고 한다.
전시에서는 김인중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의 바탕이 되는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다. 수묵화에 사용하는 동양화 붓에 유화물감을 묻혀 수채화 기법으로 탄생되는 그의 그림은 선명하면서도 투명한 색채감이 신비함을 더한다. 모든 작품의 제목이 '무제'인 것은 '빛'을 찾아 그린 작품에 선입견을 더하고싶지 않아서라고 한다.
김인중 신부는 그림 뿐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로도 유명하다. 전통적인 스테인드글라스에 사용되던 납선을 없애고 동양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화법을 통해 빛을 더욱 아름답게 펼쳐낸다.
그 압도적인 아름다움 덕분에, 세계 50여 개 성당에 그의 추상 회화가 새겨진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되어 있다. 국내에는 2008년에 제작된 대전 자양동성당의 삼위일체, 2019년에 설치된 용인 신봉동성당의 십자가의 길과 삼위일체, 그리고 최근에 카이스트 대전 본원 학술문화관 4층 천장에 영구설치된 ‘빛의 소명’ 등이 있다.
그림이든 스테인드글라스이든, 김인중 신부는 빛을 찾고 빛을 그린다. 그의 그림은 어떤 형상을 그린 듯하면서도 구상화가 아니고, 빛을 그렸다는 점에서 추상화도 아니다. 그래서 비구상화라고 하며, 작가 스스로는 세계화라고 부른다.
김인중 신부는 서울대 미대를 나와 스위스 프리부르(Fribourg)대학교로 유학갔다가 신학을 공부한 뒤 도미니크 수도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도미니크 수도회에서는 그가 작품활동에 전념하게 해 주었고, 그 뒤 50여년 동안 프랑스에 거주하며 화업에 정진했다.
그 뒤 파블로 피카소 작품과 함께 하는 공동 전시를 포함하여 전세계에서 200여 차례 전시회를 가졌다. '빛의 화가'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유럽 화단에서 인정받았다. 2010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훈장인 ‘오피셰’를 받았고, 2016년에 한국인으로는 처음 ‘아카데미 프랑스 가톨릭’ 회원에 추대됐다. 2019년에는 프랑스 중부의 소도시인 앙베르(Ambert)의 옛 재판소 자리에 ‘김인중 미술관’이 생겼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