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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생 판사, 국가보안법 사건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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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전승일 감독의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에 대한 재심 개시 청구에 대한 심문이 진행됐다. 이 심문을 토대로 담당 판사가 재심 개시를 허락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김한철 판사는 1986년생이다.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대학가에 최루탄이 난무할 때 태어난 세대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세대이다. 이들에게 80년대 이야기는 "에이, 뻥이지?"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전설에 가깝다. 

 

전승일 감독은 '흔한 80년대식 불법체포'를 당했다

 

변호사의 재심 청구 요지를 들은 뒤 김판사는 전승일 감독에게 체포되기 전후 상황을 기억나는 대로 다시 말해 달라고 했다. 재심 청구의 핵심이 체포 과정에서의 불법성 여부이기 때문에, 김판사는 '몇시쯤 연행이 됐느냐', '도착한 곳이 안기부라는 것을 인지했냐'고 구체적으로 물었다.

 

서울대 인근 녹두거리를 걷고 있는데 차 두 대가 갑자기 옆에 오더니 7~8명의 수사관이 튀어나와 전감독을 집단구타했다. 얼굴에 강제로 천을 뒤집어 쓰고 차바닥에 던져졌다. 몸을 일으키거나 밖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한참 이동했다. 강을 건너는 느낌이 있었다. 도착하고 지하로 내려가기 직전에 천을 벗겨줬다. 고개를 숙인채 지하로 내려가 취조실로 들어갔다. (나중에 알고보니) 남산 국가안전기획부였다. 

 

이례적으로 빨리 잡힌 재심 개시 청구 심문 기일 

 

이날 검사측은 변호사의 재심 청구 요지에 대하여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김판사는 이례적으로 다음달 23일까지 재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전 감독 측 대리인 이종훈 변호사(법무법인 시민)에 따르면 이번 재심 개시 청구 기일은 예상보다 빨리 잡혔다. 담당 판사가 재심 여부를 언제까지 결정하겠다고 알려준 것도 이례적이다. 과거 국가보안법은 물론 긴급조치 위반 등에 대한 재심 청구는 기약 없이 수 년 동안 기다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범죄자는 전감독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악용한 국가 

 

1989년 통일운동 과정에서 '민족해방운동사'라는 대형 걸개그림을 그려 전시했다는 이유로 불법연행돼 구속연장 통보만 받으면서 구타와 고문에 시달린 전승일 감독은 이로 인해 교수직을 잃고 정신적 트라우마를 얻었다. 지금까지도 예술활동에도 어려움을 겪는 등 어려움을 겪어 왔다. 


전감독의 걸개그림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의해 민중미술예술작품으로 인정된 바 있다. 2007년 민주화운동관련자로도 인정되었지만 국가보안법 판결로 인해 여전히 빨갱이 취급을 받고 있다. 이 모순을 바로잡으려면, "국가가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서 스스소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상처를 보듬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전감독은 말한다.


통상 재심 심의가 10분 정도 진행되는데 반해, 이 사건에 대한 심문은 30분 가까이 진행됐다. 국가보안법의 존재 자체를 알기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80년대생 판사가, 우리 국가가 저지른 수많은 폭력잔혹사 가운데 하나인 이 국가범죄 사건의 재심 개시 청구에 대하여 어떤 판결을 내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