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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연주회, 특별했던 <고향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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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독자 이수산나 |

 

 

 

 

합정동 스카이로드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수상한 포스터를 발견했다. <탈북피아니스트 김철웅의 하우스콘서트>. 재작년 지역아트홀에서 그의 연주를 들은 적이 있다. 거기서 처음 <조선은 하나다>를 들었다. 당시에는 연주회라기보다는 행사분위기여서 연주 자체는 미흡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가슴 찡한 면이 있었기에 그 교향곡을 찾아 가끔 들어보곤 했다. 오늘 혹시 그 곡을 다시 들을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으로 입장했다.

 

 

 


공연은 무료로 진행됐다. 카페 공연이니만큼 음료는 구입해야하지 않나 했는데, 카페에서 기획한 연주회라면서 음료에 후식용 케이크까지 무료로 제공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내 몫의 다과를 받아들고 연주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아뿔싸, 커플 지옥. 그리고 너무나 프라이빗한 분위기. 다소 민망하지만 빈 자리에 앉았고, 다행히 먼저 앉아 있던 커플들이 친절하게 말을 건네고 다과를 먹기 좋도록 탁자를 가까이 끌어준다. 김철웅연주자의 팬들이 모인 것 같은데, 화기애애하다. 먼 발치에서 가볍게 목례만 했다.

 

 

이번 광복절에 대통령과 여당은 세종문화회관에서, 광복운동단체와 야권 인사(야당은 아님 -.-)들은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따로따로 광복절 기념식을 열었다. 광복 후 79년 만에 처음 벌어진 일이다. 독립기념관에서 37년 동안 진행했던 광복절 경축식도 신임 관장님의 역사관이 문제되어(?) 취소되었다. 아무리 갈등이 심해도 서로 외면하고 침을 뱉어도 기념식만큼은 함께 해 왔는데, 올해는 모두 아주 솔직해지기로 한 모양이다. 

 

연주 프로그램이 배포되었는데, 쇼팽의 녹턴 2곡과 프렐류드 1곡 그리고 베토벤 소나타 월광과 리차드 클라이더만의 가을의 속삭임... <조선은 하나다>가 없었다. 내심 실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중간에 그가 갑자기 이 곡이 생각난다면서 익숙한 곡을 연주했다. 바로 '찔레꽃'이다. 동요라고 하기에는 너무 처연한 가락의 이 곡을 김철웅 연주자가 연주하니 코끝이 찡하다. 아무래도 '탈북'이라는 그의 배경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그는 눈물이 날 것같다면서 짧게 연주를 마치고 예정된 곡으로 넘어갔다.

 

 

우리가 오랫동안 분단되어 있었어도 기본적인 정서는 아직 비슷하다면서 북한 민요 '돈돌라리'도 들려주었다. 도라지타령의 변주와 같은 가락이 반복되는데, 우리 가락이 분명했다. 그는 "이 가락이 우리가락과 전혀 다르다고 생각된다면 통일이 안되어도 좋다"고 했는데, 아직은 다행이다.  

 

민족의 음악 '아리랑'을 교향곡처럼 편곡한 곡도 들려주었다. 엄청난 변주와 강력한 타건이 <조선은 하나다>를 연주할 때보다 더 강력하게 느껴진다. 오늘 이 컨디션으로 <조선은 하나다>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지난 번보다 배도 들어가고 근육질이 된 것같은데. 타건도 좋고. 아리랑을 마지막으로 연주가 끝났는데, 아쉬운 마음에 앵콜을 요청했다.

 

 

 

 

김철웅 연주자는 앵콜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다 아는 노래를 연주하겠다고 한다. 그 곡이 <고향의 봄>이었다. 그런데 그의 고향과 그의 봄은 부드럽고, 아름답고, 그립기만 하지 않다. 굽이치고, 몰아치고, 내리꽂고, 고함친다. 그렇게 그의 <고향의 봄>을 들으면서 광복절을 맞아 <조선은 하나다>를 듣고싶던 마음이 채워졌다.

 

연주 중간중간 들은 이야기 중에는, 북한의 음악 전공자들은 무조건 국악을 2년간 배워야 하고 고전무용은 물론 발레까지 배운다고 한다. 아니 왜? 작게 말했는데도 알아듣고 답해 준다. "몸매 관리를 위해서예요." 어머나? 술고래로 알려진 김철용 연주자가 아직 저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인 모양이다. 

 

 

너덜너덜해지고 찢겨진 광복절에, 정말 소수의 사람이 참여한 연주회에서, 탈북 피아니스트의 <조선은 하나다>같은 <고향의 봄>을 듣다니! 광복절 리얼리즘이 너무 강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오늘이 김철웅 연주자의 생일이란다. 고향을 떠나 분단이 심화된 곳에서 광복절 겸 생일을 맞아 열린, 김철웅 연주자 남한 생애 최초의 하우스 콘서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