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하 기획자 |
■ 개막 하루 앞두고 '긴급 폐쇄'... 이례적 검열 조치
대구문화예술회관이 '2024 올해의 청년작가전'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을 소재로 한 작품의 전시실을 폐쇄하면서, 문화예술계에서 행정기관의 자의적 검열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특히 이번 조치는 전시 개막을 하루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에서, 공공기관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예술 검열에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시 개막을 앞둔 지난 30일,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안윤기 작가의 작품에 홍준표 시장의 초상화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작품 교체를 요구했다. 작가가 이를 거부하자 해당 전시실을 전면 폐쇄하는 강경 조치를 취했다. 주목할 점은 전시 준비 과정에서 문제가 제기되지 않다가 개막을 목전에 두고 갑자기 '부적절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이는 1998년부터 26년간 이어져 온 청년작가전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처사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이 스스로 밝혔듯 "청년이라는 호칭은 단순한 연령을 넘어 시대와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과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예술가의 비평적 시선이 권력자를 향하자 '공공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검열을 강행한 것이다.
■ '윤석열차'부터 '홍준표 초상화'까지... 계속되는 예술 탄압
이는 정치권력의 입김이 문화예술계를 위축시키는 일련의 사태와 궤를 같이한다. 지난해 10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고교생의 '윤석열차' 작품을 전시했다가 정부로부터 엄중 경고를 받았다. 이후 만화영상진흥원의 국고보조금은 116억원에서 60억원으로 48%나 삭감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깎은 예산을 유사 사업에 배정했다며 해명했지만, 진흥원 관계자들은 "명백한 보복성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결국 올해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는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수상작 전시회가 취소됐고, 문체부는 후원기관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 표현의 자유냐 공공성이냐... 허울뿐인 '공익' 논란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이번 검열 조치는 이러한 '보복과 위축'의 악순환이 지방 문화예술계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윤기 작가의 작품 '언내츄럴 스펙터클'은 초상화라는 형식을 통해 권력의 기념비화를 비평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는 예술의 본질적 기능인 사회 비평의 영역에 속한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이 주장하는 '특정인 비방'이라는 해석은 작품의 예술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검열은 안 작가 개인을 넘어 함께 전시에 참여한 4명의 작가들에게도 피해를 끼쳤다. 개막식이 취소되고 언론 홍보가 중단되면서, 신진 작가들의 귀중한 전시 기회가 훼손된 것이다. 이는 '공공성'을 명분으로 내세운 행정 권력이 실제로는 얼마나 반공공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 문화예술계의 반발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은 "공공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자의적 검열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이는 문화예술 지원이 권력의 통제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은 명확히 국가기관의 예술 검열을 금지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예술의 자유와 공공성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취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자기검열과 관료적 눈치보기는 우리 문화예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