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현장리뷰] 100만 관객 예술축제에 울려퍼진 비정규직 교육공무직 노동자의 목소리

URL복사

당현천의 달빛 아래서 만난 그들의 이야기
96만에서 100만으로 향하는 노원달빛산책, 공공예술의 새 지평을 열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꿈을 담아낸 박건재 작가의 '그 안에 나 있다!'

 

뉴스아트 편집부 | 밤이 깊어갈수록 당현천변은 더욱 밝아진다. 은은한 달빛과 어우러진 예술작품들이 가을밤을 수놓고 있다. 지난해 96만 관객이 찾은 노원달빛산책이 올해는 1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24명의 작가가 선보이는 41개 작품 137점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숨'이라는 주제를 풀어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긴 발걸음을 이끄는 작품이 있다. 설치미술가 박건재의 '그 안에 나 있다!'다. 5미터 높이의 붉은 철골 구조물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인체 실루엣. 그 안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들은 우리 교육현장의 또 다른 주역들을 만나게 한다.

 

 

"오늘도 많이들 못 오신 게, 아침에 다 병원 가요. 병원 다니고 도수치료 받고 이런 게 너무 많아서..." 한 급식실무사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수백 명의 학생 식사를 책임지는 현장은 늘 인력이 부족하다. 그 부족함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몸으로 메워진다. 튀김 연기 속에서 일하다 폐암으로 산재를 입어 돌아가신 동료들의 이야기는 급식실 환기시설의 열악한 현실을 드러낸다.

 

교무실무사, 과학실무사, 전산실무사, 특수교육실무사... 이들은 모두 '교육공무직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교육공무직이 원래 직업 코드에 없대요. 그래서 보험 들으려고 하면 우리는 직업 코드가 안 나온대요"라는 증언이 이들의 불안정한 지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작품은 단순한 고발에 그치지 않는다. 졸업식 날 학생들의 감사인사를 받고 울먹였다는 증언에서는 교육현장을 향한 뜨거운 애정이 묻어난다. 위험한 실험재료를 다루는 과학실무사와 장애학생들을 전담하는 특수교육실무사의 이야기는 이들의 노동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일깨운다.

 

작품 곳곳에 새겨진 손글씨들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전한다. 영상 중간중간 나오는 손글씨를 통해 이들은 사회에 꼭 필요한 노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드러낸다. 빔프로젝터로 투사되는 영상과 음성, 손글씨는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노원달빛산책은 단순한 야간 조명축제를 넘어 깊이 있는 공공예술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당현천을 따라 펼쳐진 작품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연과 도시, 인간과 예술의 관계를 탐구한다. 대만의 위위아트스튜디오가 선보인 '실프에서 실프로'는 바람의 정령을 형상화했고, 윤제호의 '빛결'은 레이저 빛으로 은하수를 그려냈다.

 

특히 올해는 지역 주민들의 참여가 돋보인다. 초안산숲속작은도서관 어린이들과 한호진 작가가 협업한 '빛나는 똥들의 습격'은 생태순환의 의미를 담았고, 김송 작가의 '숨, 쉼'은 예룸예술학교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졌다. 여기에 박건재의 '그 안에 나 있다!'가 더해져 공공예술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와 동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이웃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작가 박건재의 말처럼, 이 작품은 우리 교육현장의 숨은 주역들을 예술로 조명했다. 관객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당현천의 달빛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빛을 비추고 있다.

 

오는 17일까지 이어지는 2024 노원달빛산책은 상계역과 중계역 사이 당현천변에서 열린다. 자세한 내용은 노원문화재단 누리집(www.nowonarts.kr)과 노원달빛산책 누리집(moonlightwalk.kr)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