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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심연의 이단적 제의(祭儀), 사바하(Sabbaha)의 연주로 울려 퍼지는 불경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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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빛 제의 속, 금단의 사운드가 깨어나다
싱글 픽업 텔레캐스터로 쌓아 올린 이단적 무게감, 둠과 드론의 경계를 허물다
가장 고독한 예술, 가장 뜨거운 연대로 빚어낸 역설의 미학

 

뉴스아트 편집부 | 최근 공개된 듀오 사바하(Sabbaha)의 "Debt Shroud" 영상은 하나의 강렬하고도 불경한 시청각적 제의(祭儀)처럼 보여진다. 영상은 시작과 동시에 보는 이를 현실에서 분리해, 숨 막히는 붉은빛의 심연으로 끌어들인다. 이 작품은 경기도 예술가 공동체인 '경기아트콜렉티브 협동조합'의 전폭적인 협력 아래 탄생했으며, 밴드의 확고한 음악적 고집과 공동체의 창작 에너지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예술적 성취라 할 수 있다.

 

시각적 혼돈: 연출된 사이비-오컬트 미학

 

영상은 시각적인 측면에서부터 '사이비-오컬트'라는 밴드의 정체성을 집요하게 구축한다. 수원 ACME STUDIO의 잘 설계된 스튜디오는 거미줄과 붉은 천으로 뒤덮여, 마치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비밀스러운 제단이나 이단의 내밀한 성소처럼 변모했다. 이 연출된 혼돈의 중심에는 영상의 핵심 아이콘인 기타리스트가 서 있다. 얼굴 전체를 가린 하얀 천은 고전적인 유령의 형상을 차용하는 동시에, 특정 종교 집단의 예복이나 시신을 감싸는 수의(Shroud)를 연상시킨다. 얼굴 부분은 거칠게 뜯겨져 나가 검은 심연만이 남아있어, 비명이나 존재의 소멸을 상징하는 듯한 섬뜩함을 자아낸다.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강력한 시각적 장치는 바로 그가 쓴 금색 왕관이다. 누추한 천과 화려한 왕관의 기묘한 조합은 몰락한 왕, 폐위된 신, 혹은 스스로를 신격화한 사이비 교주의 이미지를 중첩시킨다. 이는 신성함과 불경함, 위엄과 퇴락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이미지를 통해 보는 이에게 아름다우면서도 불편하고, 성스러우면서도 기괴한 이중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탁월한 시각적 은유다.

 

소리의 심연: 둠과 드론의 경계에서 빚어낸 이단적 무게감

 

사바하의 사운드는 이러한 시각적 도발을 청각적으로 완벽하게 뒷받침한다. 그들의 음악적 뿌리는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로부터 시작된 둠 메탈(Doom Metal)에 깊이 닿아있다. 극도로 느린 템포, 육중하게 내려찍는 기타 리프, 절망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는 둠 메탈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사바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들은 멜로디와 리듬이라는 전통적 구조마저 해체하고 지속되는 저음과 질감, 즉 '소리의 덩어리' 자체에 집중하는 드론(Drone)의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Debt Shroud"는 바로 이 두 장르의 경계에서 피어난 기형적인 꽃과 같다. 곡은 극도로 느린 속도로 잠식해 들어온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듯한 리프는 미세한 변주와 레이어링을 통해 점차 살을 붙여나가며, 청자의 공간 감각을 왜곡하고 시간의 흐름을 무디게 만드는 거대한 '음압의 벽(Wall of Sound)'을 쌓아 올린다. 이는 음악을 듣는 행위를 넘어, 소리라는 물리적 실체에 온몸이 잠기는 듯한 체험을 선사한다.

 

이 이단적 사운드의 핵심에는 기타리스트의 놀라운 악기 선택이 있다. 둠/슬러지 장르의 기타리스트들이 두텁고 강력한 출력을 위해 험버커 픽업 기타를 사용하는 것은 거의 불문율에 가깝다. 그러나 사바하는 날카롭고 선명한 고음역(Twang)이 특징인 싱글 픽업의 텔레캐스터를 통해 이 모든 무게감을 만들어낸다. 텔레캐스터의 본질적인 날카로움은 수많은 퍼즈와 디스토션 페달을 거치며 뭉개지는 대신, 육중한 저음의 질감 속에서 칼날 같은 선명함으로 살아남는다. 그 결과, 사바하의 사운드는 무작정 둔중하기만 한 소리가 아닌, 거대한 암석의 질감과 그 안에 박힌 날카로운 파편의 예리함을 동시에 가진 독보적인 톤을 완성한다.

 

이 거대한 소리의 건축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것은 제의의 집전자처럼 흔들림 없는 드러머의 연주다. 그의 드러밍은 속도나 현란함이 아닌, 절제의 미학을 보여준다. 빙하가 움직이듯 느리고 육중한 리듬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제어하며 곡의 뼈대를 세우고, 기타가 만들어내는 혼돈 속에서 굳건한 중심을 잡는다. 그는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것을 넘어, 느림과 멈춤을 통해 긴장감을 조율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모든 에너지를 응축시켜 폭발시키는 리듬의 지배자에 가깝다.

 

협동이 피워낸 가장 순수한 창작의 불꽃

 

 

놀라운 것은, 영상에 담긴 이 고독하고 기괴한 의식이 실제로는 따뜻한 연대와 협동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 작품은 '경기아트콜렉티브 협동조합' 조합원들의 전적인 참여로 완성되었다. 여러 조합원들이 함께 거미줄을 치고 조명을 설치하는 등, 영상의 모든 시각적 요소를 함께 구축했다. 화면 속 외로운 제의는 사실, 창작의 고통을 나누고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자 모인 예술 공동체의 축제였던 셈이다.

 

사바하의 "Debt Shroud"는 음악과 비주얼, 그리고 철학이 완벽하게 결합된 하나의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이다. 이는 한 밴드의 뛰어난 작품을 넘어, 2025년 한국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이단아의 출현과, 그들을 지지하는 건강한 로컬 생태계의 존재를 동시에 알리는 중요한 선언이다. 이 붉은빛의 제의가 앞으로 어떤 새로운 파장을 일으킬지, 그 행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