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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중, 오랜만의 무대 여전한 감성 새로운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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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대중성과 예술성의 조화,
재즈 피아니스트 이영경의 탁월한 즉흥 연주와 놀랍도록 잘 버무려진

아트뉴스 이명신 기자|

 

개그 프로그램에서 쑥대~머리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국악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세대를 첫 소절만으로 한 번에 사로잡은 그 노래의 주인공, 강호중 선생을 3월 26일 마포 아트홀에서 다시 만났다.

 

 

강호중 선생은 80년 역사의 창작국악(신국악)의 존재감을 대중 속에 깊이 각인시킨 창작국악연주그룹 슬기둥의 1대 소리꾼이다. 1985년 6월 용평리조트에서 열린 MBC-FM 청소년음악회 무대에서 강호중 선생이 ‘꽃분네야’와 ‘쑥대머리’, ‘어디로 갈거나’ 등의 국악가요를 선보였는데, 이것이 라디오 전파를 타자 전국에서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이후 창작국악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으며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였다.

 

방음문을 열고 들어가니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무대에 국악기뿐 아니라 기타와 피아노까지 올라와 있었다. 클래식, 가요, 힙합을 두루 섭렵하여 탁월한 즉흥연주로 널리 알려진 재즈 피아니스트 이영경 선생이 강호중 선생과 협연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배치된 악기와 피아노의 조화를 보니 더욱 기대가 되었다.

 

 

월드뮤직그룹 공명이 경쾌한 타악기 연주로 막을 열었다. 무대에서 듣는 국악 타악기 연주는 마음대로 뛰놀 수 없다는 장소의 한계로 인해 늘 어딘가 허전한 구석이 있었다. 오늘 공명의 연주는 그 허전함을 메꾸는 무언가가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예술과 그것이 행해지는 공간 사이의 격차는 생길 수밖에 없고 이를 메꾸는 것이 창작자의 역량일텐데, 스승의 첫 단독 정규앨범을 축하하는 마음이 더해져서인가 공명은 격차를 넘어서는 풍성함을 선사했다.

 

경쾌하고 풍성한 공명의 연주가 끝나 객석이 활짝 열렸을 때 강호중 선생이 등장했다. 양금과 대금 소리로 차분하게 시작되어 단순한 듯 묵직한 가락이 반복되는 ‘내게 다시’라는 첫 곡을 시작으로, 피아노와 기타로만 연주되는 ‘상주 모심기’로 넘어갔다. 도입부의 피아노 반주는 절묘하게 노랫가락을 끌어냈고, 맑음을 한껏 강조하도록 조율된 듯한 피아노 소리는 강호중 선생의 원숙한 소리에 군더더기 없이 잘 어울렸다. 노동가요가 주는 미묘하고 애달픈 감성은, 역시 이영경 선생의 피아노구나 싶은 주고받음에 올라타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빠져든다.

 

 

나른할 정도로 고조된 감성은 ‘난 너를’이라는 곡에서 경쾌한 감성으로 바뀐다. 아이를 처음 품에 안은 벅찬 마음을 표현한 이 노래는 강호중 선생이 만든 노래 가운데 몇 안 되는 밝은 분위기의 노래라고 한다. 이후 애절한 해금 가락으로 시작된 ‘바람부는 날에는 너에게로 가고싶다’로 다시 관객의 감성을 한껏 자극한다.

 

1부 마지막 곡인 ‘믿어줘’는 이후 나올 노랫가락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담담하고 경쾌한 가락으로 시작된다.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되는 간절함은, 절정으로 향하는 강호중 선생의 노래를 받쳐주는 단단한 피아노 연주로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이 노래는 소리꾼이 아니더라도 부르는 맛이 있을 듯 했다.

 

 

인터미션 뒤 2부는 슬기둥의 히트곡인 ‘꽃분네야’로 시작했다. 장중한 대금 가락 위로 해금이 간절한 가락을 얹고 이후 따라 나오는 명징한 소금 가락이 피아노와 함께 가슴을 후벼 파면 강호중 선생이 따뜻한 목소리로 위로한다. 그래도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깊은 슬픔은 마지막 소금 가락으로 한껏 고양된다. 이후 고양된 슬픔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은 듯한 힘찬 피아노 소리로 시작되는 ‘너라는 의미’,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아버지의 노래’를 징검다리 삼아 우리의 감성은 마침내 ‘그대를 위해 부르는 노래’에 도달한다.

 

 

‘그대를 위해 부르는 노래’는 신경림 시인의 ‘씻김굿’이라는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뮤직비디오로 선공개 되었다. 산뜻함과 비장함을 넘나드는 피아노 연주를 중심으로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조화를 이루었다고 평가되는 뮤직비디오다. 노랫말에 담긴 비장함을 피아노의 선명한 불협화음으로 담아내면서도 연주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산뜻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모든 영혼을 위로하는 절절한 가락을 강호중 선생 특유의 호소하는 듯 애절한 목소리로 담아내며 무대가 끝났다.

 

이후 누구에게나 익숙한 노래인 ‘쑥대머리’와 교과서에도 실린 ‘산도깨비’를 앵콜곡으로 격앙된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풀어주면서 공연을 마쳤다. 오랜만에 만난 품격있는 공연, 세월이 가도 시들지 않고 건재한 소리꾼,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피아노 선율에 저녁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