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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부상, 산재보험은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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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나 방송출연자의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
신규 장르, 산업화시대 공장노동자와 비슷한 상황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7월 7일, 문화예술 9개 분야에서 다양한 산재 유형과 답답한 상황을 보고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 지원사업으로 열린 문화예술노동연대 커뮤니티포럼이었다. 무용, 예술강사, 음악가, 공연예술인, 영화, 방송, 웹툰 등의 분야가 참가하였다.

 

2시간 토론에 발제자가 10명이나 되니 발제에만 2시간 반이 걸려 질의응답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각 분야 발제에서는 주목할 만한 현장 상황이 보고되었다.

 

 

전 분야에 걸쳐 가장 어려운 점은, 질병이나 부상을 당했을 때 당사자도 사용자도 산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했다. 프레스에 팔이 절단되거나 공사현장에서 추락하는 등의 사고만 산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0년 경력의 기술감독이 무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를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불상사로 인식하고 산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구은서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사무국장)

 

문화예술이 산업화되면서, 그에 준하는 질병이나 부상을 입는 문화예술인이 늘고 있다. 박송희 사건으로 알려진 공연예술계 현황은 법이 개정된 뒤 약간은 나아졌지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은 자본력이 있는 대규모 극장이나 프로덕션 뿐이다. 

 

현장에서 보고된 무용수나 방송출연자의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무용수, 특히 발레리나는 부상 없이 활동해도 유럽에서는 45세를 정년으로 볼 정도로 혹독한 신체활동이다. 이들은 난이도 높은 동작을 반복하다가 복합골절 등의 부상을 당하기도 하는데, 이는 곧 경력 종결 및 실직으로 연결되지만 병원치료비만 받아도 다행인 상황이다. 

 

오랫만에 부활한 대하사극의 맥이 끊어질까봐 다쳤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방송출연자들의 답답한 사연도 소개되었다. 말이 넘어지는 장면을 촬영하던 중 말이 죽은 사건이 언론에 널리 보도되었는데, 말을 타고 있던 배우의 쇄골이 부서진 일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은 오히려 다음 캐스팅에서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일하는 문화예술인들은 개인 작업의 완성도에 몰두하다 보면 부당 행위에 집단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특히 속수무책으로 산재에 노출된다고 보고되었다.

 

이 가운데 며칠 씩 밤샘 작업을 해야만 완성할 수 있게 발주되는 음악, 게임, 웹툰 등에 종사하는 예술인들은 근골격계 질환은 물론, 수면장애와 우울증에도 노출되지만 계약에 매여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해야 한다.

 

게임 출시를 앞두고 회사 앞에 앰뷸런스 2대와 의사를 대기시키고 밤샘작업을 강요했다고 해요. 과로는 처벌하지 않지만 사망은 처벌하기 때문이지요. 관리감독 또한 심해서 3분 이상 키보드가 작동하지 않으면 해고위협에 처합니다. (김환민 게임개발자 연대 대표) 


독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웹툰 작가 또한 아파도 휴재하지 못하고 악성 댓글에 시달리면서 쓰러질 때까지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되었다.

 

저는 그렇게까지 밤을 새고 그러지는 않아요. 36시간, 72시간씩 안 자는 분들도 많다던데 저는 매일 조금이라도 자요. 책상에 엎드려서라도 잠깐 자고 일합니다. (B작가 인터뷰)

 

웹툰은 초기에 한 회당 50컷 기준이었는데 지금은 70컷 기준으로 노동 강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배경, 채색 등 작업 단계가 많아서 컷 하나 당 7번의 작업을 거쳐야 하니 감당이 안되어 자연스럽게 협업 시스템으로 넘어가 관련 종사자는 '무척' 많다고 한다. 

 

정보화 시대에 새로이 등장한 업종들은 산업화시대 공장노동자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집단 행동을 하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점에서, 상황은 더 심각할 수도 있다.

 

웹툰은 코로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어요. 폭발적으로 성장하니 해마다 완전히 달라요. 지금 1.2조 규모의 웹툰 시장 노동자가 고작 5천 명이라고 조사되어 있어요. 통계가 잘못된 거예요. 현황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정책을 세워야지요.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사무국장)


영화산업은 2019년 기준 2.5조였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현재 웹툰시장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문화예술 산업이 복잡해지면서 사용자가 누구인가와 관련된 문제도 심각하다. 예술강사들의 경우 사업소득자로 분류되다가 2년 간의 법정 다툼으로 2009년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문예진흥원)에서는 자신들은 예산을 받아 집행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아님을 주장하였다. 문예진흥원은 재판에서 패소한 뒤에 산재보험을 피하기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시켰다.

 

이 사건은, 산재보험의 문제가 근로자성만 인정된다고 해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안명희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은, 예술인 산재보험 설계 당시 대상 예술인은 출연도급 계약을 맺은 실연 예술인 5.7만명이었지만 현재 가입자는 누적 1만 건으로 가입률이 현저히 낮아 실효성이 없음을 지적했다. 

 

 

안명희 위원은 예술인 산재보험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당연(의무)가입, 모든 분야에 전면적용, 사업주가 산재보험료 전액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부가 책임지고 예술인 당사자와 논의하자고 한다. 

 

예술계가 처한 문제는 상당부분 우리 사회와 노동계 전반에 걸친 사회안전망 문제들과 맞닿아 있어서, 과연 예술계에서만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지, 나온다해도 형평성 문제의 도화선이 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산재보험은 산업화 시대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사고로 노동자들이 입는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산재보험은 1964년 500인 이상 사업장 적용을 시작으로 2000년에 비로소 1인 사업장까지 보편화되었다. 

 

그동안 산재보험은 사업장을 대상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기 때문에 사업장에 속하지 않은 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는데,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를 대상으로 2008년부터 적용하여 순차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다만, 이전의 산재보험은 보험료를 사업장에서 전액 부담한 반면, 특고는 절반씩 부담한다는 점에서 산재라기보다는 변형된 형태의 고용보험에 가깝다.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사무국장의 말대로, 정확한 현실파악을 토대로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하도록 법과 제도를 신속하게 개정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