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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산재 대책 국회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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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산업 형태, 달라진 법 적용 필요
공연단체 계약 전수조사하고 자율안전체계 구축해야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19일 국회에서 문화예술노동안정을 위한 토론회가 있었다. 지난 2월부터 진행된 ‘예술인 산재보험 포럼’의 일환이었던 이 자리에 문화예술계의 노동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많은 단체와 활동가, 변호사와 공무원이 한 자리에 모여 그간의 정책 성과와 미흡한 점을 공유하였다. 

(지난 포럼 소식은 예술인 부상, 산재보험은 언제? 기사 참고)

 

 

토론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것은 노동법 적용 문제, 임의가입 문제,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안전사고 문제였다. 

 

조직되지 않은 예술인, 산재보험 의무가입 어려워
 

예술인 산재보험은 2012년 예술인복지법과 함께 출발했다. 예술인들은 조직화되어 있지 않고 특정 조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의무가입이 아닌 임의가입으로 하였다.

 

그 결과, 일부 정규직을 제외한 예술인 개인에게 산재보험가입 의무가 지워졌다. 2018년도와 2021년도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지한 표준계약서에 의하면, "을은... 사고에 대비하여 사업재해보상보험 또는 상해보험에 가입하여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예술인증명을 완료한 자가 표준계약서를 사용할 경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행정지원도 해주고 보험료 일부를 사업의 일환으로 지원하도록 했다. 하지만 극히 일부의 예술인만 이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임의 가입률은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전통적 산업 노동자에게만 안전이 필요한 건 아니다

 

이런 혼란은 예술인이 노동자가 아닌 예술인으로 따로 분류됨으로써 생겨났다. 용역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명백한 노동자이지만, 일하는 장소와 일하는 방식이 전통적인 산업노동자와 다르다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문화예술계에서 용역을 제공하는 모든 사람이 예술인의 지위를 갖는 것도 아니다. 예술인의 지위를 가지려면 '예술인복지법' 상의 자격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노동자로서도 예술인으로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용역제공자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근로기준법과 전혀 성격이 다른 예술인복지법에 예술인 산재 관련 조항을 끼워넣어 해결하고자 함으로써 문제가 복잡해졌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이상길 사무국장은 "노동자이고 예술인일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안전장치가 작동하면 되는 일이다"라고 하면서, 산재보험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재해로부터 예방 및 보호한다는 관점에서 변화된 환경에 맞게 법이 재해석되고 개정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산업안전의 개념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달라진 산업 형태, 달라진 법 적용 필요
 

문화예술계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쪼개 작은 업체들에게 나눠주는 일은 흔하다. 이런 이유로 50인 이상  사업체가 드물고, 따라서 산재보험 가입 의무가 면제되는 경향이 있다. 플랫폼을 통한 문화예술 활동도 계약 주체와 사용 주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산재보험 가입 책임 소재가 모호하다. 결과적으로 위험은 모두 예술인에게 떠넘겨진다. 달라진 산업 형태는 달라진 법 적용을 필요로 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인 최민은, 노동 문제는 예술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문제라고 하였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 기존 산업화 시대의 틀을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도급이 많이 발생하는 문화예술분야는) 가장 큰 이윤을 가지는 곳에서 책임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사 사례로, 건설 하도급의 경우 발주사에서 책임지고 있음을 제시했다.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 오빛나라 변호사도 여러 차례 도급에 의해 시행되는 경우 원칙적으로 원수급인을 사업주로 본다는 고용보험징수법 제 9조 1항을 들어 이 의견에  동의했다. 또한 2023년 7월 1일부터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온라인종사자는 모두 노무제공자로서 산재보험 당연가입 대상자이니 "예술인이 임의가입하도록 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하였다.

 

 

공연단체 계약구조 전수조사 필요

 

공공극장안전대책촉구연극인모임의 임인자 활동가는, 박송희씨 사망사건을 계기로 예술인의 안전을 입법화한 공연법 개정 뒤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국공립문화예술단체의 노동 형태와 그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구했다. 

 

그는 "우리가 살펴봐야 하는 것은 공연단체의 계약 구조이다"라고 하면서, 다층적 계약 행태가 구조적으로 위험을 외주화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가수 싸이 흠뻑쇼 무대 철거 중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고 처리도 이런 이유로 주최측의 '온정'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안전한 작업환경 만들 의무와 사고 책임은 누구에게?

 

산재보험 가입 주체에게 지워지는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들 의무'도 예술인 개인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박송희씨 추락 사망사고(관련기사 예술인 너 안전하냥?) 에서 보듯이, 무대에서 예술 감독이나 기타 현장 책임자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개인이 안전한 작업 환경을 만들거나 위험한 명령에 응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문화예술노동연대 안명희 집행위원은 문화예술단체의 정규직 비율은 20.6%라고 하지만, 이 가운데는 '객원 단원'이 아예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고했다. '유령 단원'이다. 이들에게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조치가 취해질 것인가?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업무상 상해를 경험한 예술인의 83.1%가 보상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과 같은 화려함 이면에 가려진 노동을 비출 때라고 했다. 국회의원 이은주는 대부분의 문화예술인들이 '위장된 프리랜서'로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로 불리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관련기사 무대추락사망 박송희 4주기 집담회)

 

당연가입을 위해 넘어야 할 수많은 산들

 

문화체육관광부 이은복 예술정책관은 예술인산재보험에 대하여 꾸준히 논의하고 있고 당연가입도 검토중이라면서도, "문화예술계의 분야와 직종이 다양해 법적용에 어려움이 많다"고 하였다. 현재의 법체계 내에서 변화하는 상황을 담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조오현 산재보상정책과 과정은 "예술인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것"이라는 전제로, 기업의 반발 때문에 당연가입을 이끌어내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현행법상 당연가입이 되려면, 자격정의, 노무계약, 보수, 보험요율(위험율), 재해인정기준, 보험급지금시 소득 기준 등 수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시간과 노력이 상당히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산재예방을 위한 업종별 자율안전보건체계 구축을 지원하라


그렇다면 기존 산업 노동자를 전제로 만들어진 법체계에서 예술인은 어떻게 자신의 안전을 지킬 것인가? 임인자 활동가는 업종별 자율안전보건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일괄 집체 온라인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산업 환경에서 현장의 경험을 반영한 개별적 안전지침을 만들고 이를 교육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산재를 최대한 예방하고, 산재가 발생했을 때 대처할 표준적인 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 조오현 과장은 노동부의 가이드라인보다는 법에서 다 담을 수 없는 산별, 업종별 가이드라인이 민간에 의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에 동의했다. 이제 노동부에서는 공적 자원을 통해 이 과정에 개입하는 숙제가 남았다. 이를 수행할 직원이나 조직, 예산 등이 필요할 것이다. 

 

이은복 예술정책관과 조오현 과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게되어 감사한다고 하면서, 예술인지원팀을 만들었으니 더 노력하고, 자율안전보건체계도 관련 부서에서 검토하겠다고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참석자들은 마지막으로, 임의가입 확대를 위한 노력보다는 예술인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과 문화  개선, 구조적 책임 문제 등에 대하여 문체부에서 대안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해달라고 요청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급한대로 산별 재해 체계보다는 상병급여 확대를 고민중이라고 하였다. 상병급여 제도가 잘 운용된다면, 산재보험 과도기에 사각지대에 있는 예술인들에게도 일단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