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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추락 사망 박송희 4주기 집담회, 우리는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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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법 개정 공문, 전체의 32.4%에게만 전달
사고 나면 77%가 구성원들이 알아서 대처한다 응답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9월 7일 박송희씨 4주기를 맞아 기억집담회의 형태를 빌어 공공극장 안전 토론회가 열렸다.

 

박송희씨는 2018년 김천시 산하 문화예술회관에서 무대 채색 작업 중 6.9미터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하였고, 본인 과실을 주장하던 김천시에게 2021년 100% 책임배상 판결이 나온 바 있다. (관련기사 '예술인, 너 안전하냥'  '공연예술인의 안전을 강화했다는 박송희법')
 

 

이날 집담회에는 다수의 연출자들과 국민일보, 월간 한국연극, 공연기획자, 배우, 문화행정종사자 등 다수가 참여했고 한국산업기술시험원 공연장안전지원센터(이하 안전지원센터)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도 참여하여 높은 관심을 보였다. 

 

집담회를 주최한 공공극장안전대책촉구연극인모임(이하 공공극장안전모임)은 박송희씨 사망사건에 대응하기 위하여 2020년 만들어졌다. 이들은 지난 9월 1일 김천문화예술회관 사고 현장을 방문하고 박송희씨가 묻혀 있는 부산추모공원을 참배하는 등, 박송희씨 사건이 잊혀지지 않고 무대안전의 상징으로 남게 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집담회를 준비하면서 박송희법 시행령이 적용된 지난 7월 19일 이후 공연안전문화가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500석, 1000석 이상의 극장이 있는 전국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를 대상으로 공연법 개정안 인지 상태를 조사하였는데,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17개 지역 140개 지자체에 직접 전화 문의를 하는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공연법 공문 자체를 수신하지 않거나 수신여부가 확인이 되지 않는 곳이 57군데였다. 수신된 지자체 가운데에서도 공문을 관련자에게 아직 전달하지 않았거나 내용을 모르는 곳이 39군데였다. 내용이 '전달'된 비율은 32.4%로, 실행될 확률은 이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 문제이다. 

 

발표에 따르면 공연법 개정에 대한 인식 차이도 매우 컸다.

 

사고 지역과 가까운 대구 동구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 문제를 중시하여 직접 법령을 찾아보고 관련자에게 전달기도 한 반면에, 박송희 사건 자체를 알지도 못하고 '(공문을) 받은 걸로 해 달라'고 무감각하게 대응하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공문을 발송한 채널도 문체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이하 한문연) 등 다양했다. 이는 극장안전 문제가 통합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공공극장안전모임에서 공문수령 여부를 확인하고자 할 때에도, 어디에 연락해야 할지 누가 담당자인지 알아내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이는 곧 현장에서 사고가 났을 때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 모른다는 말도 된다.

 

 

현장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공연예술인 무대 사고 실태 파일럿 조사에서는 현실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우선, 조사대상자의 78.3%가 지난 3년간 100석 미만의 극장에서만 작업을 하였다고 응답했다. 소규모 극장에서는 안전교육 경험도 적고 만족도도 낮았는데, 극장에서 안전교육을 요청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는 곧 예산과 일정 때문이다. 

 

그런데 안전사고 유형은 경상 74%, 중상 19%로 중상율이 높은 편이었다. 이는 소규모 무대에서 예술인의 부담이 매우 크다는 말이다. 

 

조사 대상자의 70%는 출연자였는데, 무대작업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고 신상정보 파악도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후 공연장 안전교육 및 안전관리 사례가 발표되었다. 현장 안전 교육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상황에서 충분히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 한 달 공연이나 하루이틀 공연이나 공히 한 시간 안전교육을 수행해야 하는 문제, 업무별로 필요한 안전교육을 하기 어려운 현실, 예술적 완성도를 위해 갑자기 바뀌는 무대환경 문제, 잦은 인원 변동 문제, 예산 인력 등의 문제로 책임자가 없거나 아마추어가 임시로 무대공연에 관여하게 되는 문제 등 다양한 사례와 고충이 제기되었다. 현장에서는 이러한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하고 있었다.

 


집담회에서 공히 지적된 것은 안전불감증이었다.

 

발표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안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교육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한다. 안전지원센터에는 안전 교육을 꼭 받아야 하냐는 민원이 빗발친다고 한다.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럴 때 연출이나 감독 등 책임있는 사람이 안전을 당연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건설현장에서 안전 의식이 자리잡는 데에 수십년이 걸렸듯이,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무대안전 문제도 자기를 잡기까지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극장과 프로덕션 간의 관계, 감독과 출연진의 관계도 변해야 한다. 박송희씨 사건 당시에도 무대감독의 고압적 태도가 문제가 되었다. 감독의 고압적 태도가 안전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극장과 프로덕션은 서로 협업하는 관계가 되어야 하고, 무대감독은 안전수칙을 어기려는 사람들에게 고압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교육 내용에 대한 의견도 많았다. 안전교육에서 다양한 사례를 들어주고, 박송희씨 사건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경각심을 일으킨다면 교육 효과가 높아질 수 있다.

 

집담회 발표 내용 중에 공연법 개정에 대한 기대감을 조사한 것이 있었다. 긍정적  평가가 58%, 부정적이거나 무관심한 경우가 42%였다. 이들의 기대는 무엇일까?

 

 

무대작업 안전사고 발생 후 어떻게 대처하였는가에 대한 질문에 규정에 따랐다는 응답은 9%였다. 77%가 '공연팀 내 구성원들이 알아서 대처'했다고 응답했다. 중상이 아니면 내부에서 적당히 처리하거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10%)는 말이다. 공연법이 개정된다면, 사고도 덜 나고 사고가 나도 잘 처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무대 안전을 위한 법적 근거는 마련되었다. 이제 무대 사고에 대하여 본격적인 조사를 하여 ▲사고의 원인을 심층 분석하고 ▲무대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직군, 중상률이 높은 사고 유형 등 작업 플로우에 따라 위험도를 파악하고 ▲안전관리 매뉴얼화 및 통합적 관리, 그리고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규모 공연장의 안전문제 해결이라는 과제가 남았다.

 

집담회에 참석했던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의 여청구 행정사무관은, 다양한 사례를 접하게 된 것에 고마움을 표하면서 앞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더욱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으로 문체부가 법령을 현실에 적용하고 안전 문화를 만들어감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한다.

 

예술을 위해 모험을 하는 것은 위험요소를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선택할 일이지, 강요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