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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보장 못하는 예술인권리보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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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예고 기간에 공식적 의견 수렴 전무,
부처 협의나 예산 확보 없이 예술인복지재단에 떠넘기나?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권리보장법)>이 2022년 9월 25일 시행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지난 6월 20일부터 8월1일까지 입법예고 기간에 이 법의 시행령을 만들기 위해 문화예술계 의견을 수렴하여야 했다.

 

하지만 새로 출범한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부처간 협의나 예산 확보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예술현장과도 단 한 번의 회의나 의견수렴 없이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고 말았다. 입법예고기간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미세조정하여 법이 실질적인 실행력을 갖도록 하는 데에 집중해야 하는 기간이다.

 

지난 공청회에서 법 초안을 마련한 황승흠 국민대 교수는, "너무 당연한 조항은 법령 심사에서 삭제되었으니 앞으로 만들어질 운영매뉴얼(시행령과 규칙을 의미)에 반영하거나 직제규정이나 직무규정에서 준비중이라고 믿는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입법예고 기간에는 전혀 준비된 것이 없는 셈이다.

 

게다가 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기존에 운영하던 예술인 신문고를 통해 각종 예술인 권리침해 사례들에 대한 대응과 처리를 떠맡게 되는 것은 물론, 예술인노동조합신고 업무도 도맡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추가 예산이나 인력 지원에 대한 계획은 없는 상태이다. 가뜩이나 과중한 업무로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예술인복지재단이 이로 인해 예술활동증명 등 고유한 업무에 지장이 있을까봐 예술인들은 걱정하고 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안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이념적 이유로 예술인을 배제하는 블랙리스트 사태 및 그와 존엄성 침해 행위 방지이며 둘째로는 젠더폭력(성희롱, 성폭력) 근절이다. 

 

젠더폭력 근절이 주요 목적의 하나로 등장하는 이유는 현행법이 지금의 상식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는 성희롱 성폭력이 발생하면 경찰서를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경찰서에서는 강간 등 성폭력 신고만 가능하다. 


현행법상 성희롱만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장애인, 아동, 노인에 대한 성희롱만 징역이나 벌금형이 명시되어 있다. 그 밖의 사람에 대한 성희롱을 처벌하려면 형사법을 개정해야 한다. 직장이나 공공기관에서의 성희롱 또한 가해자를 형사처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주나 기관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인권리보장법에 관련 조항을 포함하여 예술인도 성희롱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하고자 했다. 이런 면에서 예술 현장에서는 예술인권리보장법 상 '예술인'의 범주를 최대한 넓게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예술계 성희롱은 밀폐된 공간에서의 1:1 개인 레슨과정에서 일어날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 및 젠더폭력 근절에 적합한 법령을 만들기 위해 예술인들은 문체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요구하여 상당히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조정을 마쳤다고 한다.

 

하지만 입법예고 기간에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상호 합의된 사항을 적용할  예산과 조직이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실질적 업무를 담당할 위원회 구성과 관련된 논의도 없었다. 이는 예술인들의 지난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사문화된 법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문화연대와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이에 우려를 표하며 공동 논평을 발표했다. 이들은 어렵게 만들어진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법 적용 대상 확대 및 예산과 전담 기관이 필요하므로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반영해 달라고 요구했다.

 

1. 예술인을 폭넓게 정의할 것

2. 예술인권리영향평가 내용과 항목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

3. 성희롱 성폭력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구제 항목을 실질적으로 구체화 할 것

4. 예술인 권리보장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 위원회 선발구성 방법을 구체화 하고 현장 예술인에게 위원 추천권을 줄 것

5. 예술인보호관은 겸직이 아니라 선입직으로 해야 한다.

6. 이미 업무 한계에 도달한 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인권리침해행위에 대한 업무를 위탁하지 말고 별도의 지원기관을 마련해야 한다.

 

공동논평 전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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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논평]

예술인을 위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마련되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6월 20일부터 8월1일까지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예술인 권리보장법) 시행령 입법 예고를 통해 문화예술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기간을 가졌다. 시행령 입법 예고는 예술인권리보장법이 구체적으로 시행되기 이전에 문화예술 단체들과 현장예술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바, 본 법의 시행령이 법적 효력을 갖기 전이나 이후에도 현장예술계의 다양한 의견수렴을 충분히 반영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계는 입법 예고된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령 입법 예고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령은 무엇보다도 현장예술인들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실행 내용들로 채워져야 한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술인을 부당하게 배제하는 블랙리스트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오랫동안 문화예술계에 만연되었던 젠더폭력이 근절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화예술 현장에서 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거나, 정치적, 이념적 이유로 지원에서 배제될 경우 <예술인 권리보장법> 시행령은 블랙리스트 실행기관과 실행자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젠더폭력의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행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과 시행령 마련을 위해 그동안 현장예술인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 노력들이 본 법과 시행령의 주요 내용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시행령에 담긴 제2조 “예술인의 범위”를 예비 예술인까지 폭넓게 정의하고, 제4조 예술인권리 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제6조 예술인조합의 계약협의 방법 및 절차, 제17조 예술인권리침해행위 등 신고방법에 있어 구체성을 담고 있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럼에도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령이 현장예술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내용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보완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예술인의 정의에 있어 공공기관뿐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 예술교육을 가르치고 배우는 기관과 사람까지 폭넓게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제4조 예술인권리영향평가는 평가의 기본 취지와 절차만을 명시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평가 내용과 항목들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특히 예술인권리에 있어 그 지위의 사회적 영향, 표현의 자유, 창작물에 대한 권리보장, 피해구제와 보호의 대상들에 대한 기본 평가 항목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셋째, 제8조 성희롱·성폭력 방지조치, 제9조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의 실시, 제10조 성희롱ㆍ성폭력 예방 및 피해구제 지원기관의 지정 기준 및 절차 등 성희롱 성폭력과 관련된 시행령에 있어서 방지와 예방 조치에 대한 일반적인 사안들이 잘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구제와 보호에 대한 좀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조치에 있어서는 구체적으로 보완할 부분이 많다. 
넷째, 제12조 예술인 권리보장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 위원회의 구성·운영에 있어서 위원회 후보추천위원회 조항은 명시되어 객관적 위원 추천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위원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절차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명시되어 있지 않다. 위원회 위원을 최종적으로 누가 어떻게 선발하는가, 위원장은 누가 어떻게 선임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실질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위원을 추천하는 후보추천위원회, 위원구성, 위원장의 선임에 있어 현장예술인들이 직접 결정하는 권한은 가져야 할 것이다. 
다섯째, 제15조 예술인보호관의 자격·직무 등이 있어 예술인보호관을 장관이 지정하게 되어있는데, 지정방식이 선임인지 겸직인지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 법의 취지와 목적이 제대로 시행령에 담기기 위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고위공무원 중에서 겸직보다는 선임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여섯째, 제24조 업무의 위탁에 있어 ‘예술인권리침해행위’의 업무를 예술인복지재단에 위탁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이는 현재 예술인복지재단의 고유 업무 성격이나, 예술인복지법과의 관계, 예술인권리보장법의 제정 취지에 있어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제한된 직원으로 격무에 시달리는 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인권리침해행위에 대한 모든 업무를 위탁할 경우 신속한 업무 처리가 보장되기 어려울뿐더러 예술인복지재단의 고유 업무인 복지지원 업무마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예술인권리침해해위에 대한 업무들은 예술인복지업무 만큼 중요하고 그 범위도 광범위할 뿐 아니라,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및 젠더평등을 위한 고유의 업무를 독립시킬 수 있는 별도의 지원기관이 마련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번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령에 대한 현장예술단체들과 예술인들의 의견제시를 충분히 경청하여 반영할 부분들은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제반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예술인권리보장법과 시행령이 본격적으로 발효되기 전과 그 후에도 이 법의 주요 내용들에 대해 현장예술인들에게 설명하는 자리를 충분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각종 예술인 권리침해의 사례들에 대응하고, 성희롱 성폭력 사건들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예술인복지재단에 위임하지 않고, 별도의 지원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예술인복지법은 예술인복지재단이,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예술인권리보장을 위한 독립적인 지원기관이 담당해야 할 것이다.


2022년 8월 3일


문화연대,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