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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하지만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금정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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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직후 국가권력에 의한 제노사이드 소재
85개국 영화제에서 인권상, 최우수단편상 등 수상

뉴스아트 김시우 기자 |

 

우리에게는 알고싶지 않은 진실이 많다. 국가 권력에 더 이상 실망하면 무정부주의자가 될 것만같아서다. 인간에게 더 이상 실망하면 삶의 의지가 약해질 것 같아서다. 그래도 눈 부릅뜨고 진실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야만 살 수 있기에.

 


전승일 감독은 지난 2021년 5월, <금정굴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 펀딩을 진행했다. 목표의 192%가 달성됐고, 이에 힘입어 8개월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금정굴이야기는  1950년 한국전쟁 중 10월 무렵 경기도 고양 금정굴에서 한달 여 동안 경찰과 치안대 등에 의해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집단학살, 즉 제노사이드(Genocide)사건을 다루었다. 한국전쟁 전후 전국 곳곳에서 사라지고 없는 100만여 명의 학살 희생자들 중 극히 일부분에 대한 진혼곡이다.

 

 

<금정굴 이야기> 다큐멘터리는 2020년 고양시 후원으로 (재)금정굴인권평화재단에서 발간한 소책자 <항아리가 지켜 준 아이>를 원작으로 하여, 이 사건으로 남자 가족을 대부분 혹은 모두 잃고 겨우 살아남은 서병규 할아버지와 안종호 할아버지의 실제 이야기를 담았다.

 

이 애니메이션은 85개의 크고작은 독립영화 또는 다큐멘터리 영화제와 애니메이션 영화제 등에서 수상했고, 홍콩, 일본, 뉴욕, 프라하, 로마, 토론토 등의 영화제에서 최우수단편다큐멘터리 상을 받았다. 또한 Kiez Berlin Film Festival에서는 최우수 인권영화 상을, Mumbai Shorts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애니메이션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이 작품이 이렇게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2D 그래픽, 컷-아웃, 스톱 모션, 포토 콜라주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하여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잇고, 예술적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희생자 유족들과 사회공동체와의 연결과 재구성을 추구하는 연출이 높게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수상했고, 특히 2022 서울국제대안영상페스티벌에서는 한국 부문 작품상을 수상하여 국내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전승일 감독의 작품은 비참하고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때론 섬뜩하게 때론 묵직하게 표현하면서도, 바탕은 따뜻하고 아름답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선과 색으로 은은하게 관객에게 스며든다. 이런 표현이 가능한 것은, 전 감독 자신이 경험한 국가권력 문제와 트라우마를 작품 활동을 통해 극복하는 중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승일 감독은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애니메이션과 과학융합예술 분야에서 창작 및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가이다. 졸업 후인 1992년부터 꾸준히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왔고, 움직이는 조형물인 오토마타 · 키네틱 아트 관련 전시를  30여 차례 열었다. 

 

그는 제노사이드(Genocide)와 트라우마에 대한 예술적 성찰과 치유에 깊은 관심을 갖고 HD 애니메이션 <하늘나무>, 5.18 민주화운동 애니메이션 <오월상생>, MOT 노래 <Cold Blood>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등을 연출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