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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나비부인>, 안나 프린세바 vs. 아스믹 그레고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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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의료재단 이왕준 이사장 |

 

WHO와 국제병원연맹(IHF)을 방문하는 제네바-취리히 일정 사이에 잠깐 1박2일로 베를린에 다녀 왔다. 5월 4일자로 미리 예매해 놓은 베를린 국립가극장(Berlin Staatsoper unter den Linden)의 <나비부인>을 친척들과 관람하기 위해서다. 

 

이날 공연은 한마디로 역대급, 최고의 <나비부인>이었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관현악 반주야 어떤 곡을 들어도 최고의 수준을 보장한다지만, 오늘은 새로운 스타 탄생의 현장을 목도한 느낌이다. 막이 내려가고 관객 전원이 기립박수를 쳐댔다.

 


마치 누가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안나 네트렙코의 시대가 가고 안나 프린세바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소프라노 주인공인 초초상을 위한 오페라이다. 오늘 초초상 역의 안나 프린세바를 처음 접했는데 정말 잘한다. 작년 브리겐츠 페스티벌 <나비부인>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화려한 데뷔 과정을 거쳤지만, 실제 오페라 극장에서 실황으로 접하는건 처음이다. 

 


중저음은 부드럽고 고음은 완전 스핀토이다. 외모도 아름다우니 앞으로 대성할 일만 남은 듯 하다. 이제 막 떠오르고 있으니 조만간 세계 최고의 프리마돈나가 될거라 확신한다. 연기력도 아주 뛰어나서 <나비부인>의 1막, 2막, 3막 사이에 완전한 연기 변신이 대단하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달 코벤트가든에 이어 메트 오페라에서 <나비부인>로 데뷰하는 아스믹 그레고리안과 지금 쌍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아스믹 그래고리안은 1981년 리투아니아 태생으로 1980년 생인 안나 프린세바보다 한 살 더 어리지만 5년 이상 먼저 스타덤에 올랐다.

 

2018-19 시즌 짤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살로메>의 주인공에 이어 다음 해에 <엘랙트라>의 타이틀 롤까지를 소화해 내면서, 최고의 스타이자 소위 말하는 최근 대세 소프라노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금년에 <나비부인>으로 코벤트가든에 이어 메트 무대에까지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베를린에서는 안나 프린세바가 동시에 <나비부인>으로 데뷰전을 치르고 있으니 참으로 절묘한 매치가 벌어지고 있다. 

 

아스믹 그레고리안의 코벤트가든의 데뷔전에 대해 가다언지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지난주 4월 26일의 메트 데뷔전에 대해서 뉴욕 타임즈는 약간 디스를 가하고 있다.  ‘2000석이 안되는 유럽 극장에 비해 3800석의 메트는 그녀의 목소리에 비해 너무 큰거 아닌가?’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번 주 5월 12일 일요일 아침에 메가박스에서 코벤트가든 실황을 영화로 볼 수 있으니 직접 확인해봐도 좋겠다. 

 

 

하지만 사실 아스믹 그레고리안의 목소리가 원래 그렇게 예쁜 편은 아니다. 너무 쏘는 목소리이고, 그래서 살로메 역이나 크리소테미스 역으로는 최적이지만 초초상 역은 또 두고 볼 일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시절 그녀의 최초 스톡홀름 데뷔작은 <나비부인>이었다.

 

이런 아스믹 그레고리안과 비교해서 안나 프린세바는 본태적으로 더 리릭하고 참 예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다 파워있는 고음이 스핀토하게 울리니 현재 신진 세대의 리릭 소프라노로서는 정말 세계 최고라 아니할 수 없다. 


덕분에 <나비부인>이 정말 매력적인 오페라라는 느낌을 제대로 받았다. 그동안 <나비부인> 전막을 직간접적으로 십여회 감상했지만 항상 뭔가 불편하고 몰입감이 부족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비부인>은 정말 초초상에게 완전하게 감정이입이 되어야만 '약발'이 먹히는구나!!

 

사실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소프라노에게는 너무 어려운 작품이다. 노래의 난이도도 그렇지만 감정표현과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감동을 자아낼 수 없다.


1막은 귀엽고 들뜨고 애교스러운 소녀적 감수성을 묘사하다가, 2막에서는 버림받았지만 돌아올거라 믿고 주변의 조롱과 수모를 감수하는 비련의 여인상을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3막에서는 3살박이 아들을 위해 기꺼이 모든걸 희생하고 자결하는 18세 어린 엄마의 강인한 모성애를 표현해야 한다.


즉 3가지 캐릭터와 3명의 여자를 한번에 다 연기하고 노래해야 하니 정말 어려운 역이 아닐 수 없다. 소녀-여인-어머니로 변신해야 하는데 어느 한 막에서라도 노래와 연기가 조금만 어색하면 감동이 3/1씩 줄어든다. 

 

 

안나 프린세바는 러시아 출신이고 상트 페테스부르그 음악원에서 피아노, 합창지휘, 성악을 공부했다. 하지만 졸업 후에는 노래공부를 더 지속하기 위해 러시아를 떠나 이태리로 이주했다. 그래서 실제 오페라 데뷔와 더불어 무대활동도 러시아가 아니라 모두 독일, 이태리, 영국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그래서 그녀는 러시아 디스카운트로부터 자유로운 활동을 보여줄 것 같다.

 

세상은 계속 돌고 돈다. 장강長江의 강물은 계속 흐르고 세대는 계속 교체되고 스타와 영광도 명멸을 반복한다. 두 소프라노의 스타탄생을 목도하면서 느끼는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