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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잃은 어머니에게 바치는, 정명훈 지휘 <스타바트 마테르>

  • 등록 2024.07.15 12: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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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의료재단 이왕준 이사장 |

 

지난 7월 1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롯시니 <스타바트 마테르> 공연을 보았다. 정명훈 지휘, KBS교향악단 연주였다.

 

 

 

 

 

 

스타바트 마테르는 ‘슬픈 성모’를 뜻하는 라틴어로 <성모애가聖母哀歌>를 일컫는다. 바티칸 성당 미칼란젤로의 피에타 상이 상징하듯,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끌어내려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의 심정을 읊은 노래이다.


이 노랫가사를 지은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몇 사람 있다. 보통은 수도사였던 ‘야코포네 다 토디’가 지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작자미상으로 13세기부터 전해온 라틴어로 된 20절의 3행시이다. 원문에서 마지막 피날레인 ‘영원무궁히 아멘 In Sempiterna Saecula. Amen’을 빼면 딱 3행씩으로 된 20절이다. 롯시니는 이 20절을 10곡으로 나누어서 작곡했다.

 

이 가사로 작곡된 다른 유명한 성모애가인 페르골리지와 비발디, 그리고 드보르작의 작품도 모두 나의 애청곡愛聽曲들이다.

 

특히 페르골리지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30분 밖에 안되는 여성합창곡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도 절절하고 정말 가슴을 쥐어 짜는 절창의 연속이다. 페르골리지는 26살에 요절했지만, <마님이 된 하녀>라는 작품 하나로 오페라 부파(희가극, 喜歌劇)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곡가다. <스타바트 마테르>는 그가 요절하기 직전에 완성된, 작곡가 본인에 대한 애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성모애가의 최고 걸작은 롯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이다.

 

1792년 생인 롯시니는 도니제티, 벨리니와 함께 19세기 전반기 오페라 중흥기를 이끈 맏형뻘 작곡가이자 이태리 벨칸토 오페라의 최고봉이기도 했지만, 본인이 워낙 천재였다. 14살에 첫 오페라를 썼고 18세에 쓴 오페라 <결혼 보증서>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세빌리아의 이발사>도 24살에 쓴 것이다.

 
워낙 다작多作을 써댔고 주로 오페라 부파를 썼지만 마지막 오페라인 <월리엄 텔>처럼 오페라 세리아(정가극, 正歌劇)에서도 탁월한 기량을 보였다. 문제는 그가 37살에 절필했다는 것이다. 

 

왜 그가 한참 나이에 절필을 하고 세상을 주유했을까? 건강악화와 스폰서 상실이 주 요인이었다고는 하지만, 성공한 천재의 인생후반이 먹고 마시는데 진력盡力할 만큼 허무할 수 밖에 없었나? 

 

롯시니의 37세 절필까지 장황히 이야기 한 이유는, 그가 절필 이후 제대로 작곡한 마지막 한 곡이자 인생 최후의 대곡이 이 <스타바트 마테르>이기 때문이다. 39세에 절반을 쓰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결국 10년 만에 완성해서 50살에 무대에 올린, 롯시니의 원 픽 최고의 작품이 이 <성모애가>인 것이다. 이 곡은 내 최애 곡이기도 하고 베르디 <레퀴엠>과 더불어 평생 가장 많은 많이 들은 곡일 정도로 즐겨 들었다. 

 

 

 

 

 

 

오늘 KBS향을 지휘하는 정명훈은 이미 95년에 도이치 그라마폰에서 빈 필과 함께 롯시니 <스타바트 마테르>를 녹음 출반했다. 당시에 빈필과 빈 악우협회가 함께 하고 체칠리아 바르톨리가 메조 파트를 맡았었다. 이 음만은 아직도 이 곡에 관해서는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이 음반에서 바르톨리가 부른 제7곡의 카바티나는 정말 불후의 명창이 되었다.

 

그만큼, 이 곡에 한정한다면 정명훈은 전 세계에서 최고의 내공을 지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연주도 그 기대 만큼 풍성하고 유려하고 다이나믹하게 연출을 해냈다. 

 

인천시립합창단과 안양시립합창단이 같이 한 합창의 화음은 작년에 같은 곡을 연주했던 국립합창단을 월등히 앞섰다. 특히나 제5곡은 교향악 반주없이 아카펠라로 베이스와 주고 받는 대목이다. 정명훈은 이 대목에서 오히려 베이스 샤무엘 윤의 전체 톤을 억누르면서 슬픈 감정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합창과의 대화를 절묘하게 이어갔다.

 

“사랑의 샘인 성모여, 나에게도 슬픔을 나눠 함께 울게 하소서”

 

3행시 20절을 총 10곡으로 나누어 작곡한 만큼 합창곡과 중창곡 사이로, 4명의 독창자에게 돌아가면서 솔로 파트도 주어진다. 제2곡은 테너, 제4곡은 베이스, 제7곡은 메조, 제8곡은 소프라노 솔로곡이다.

 

 

 

오랜 만에 국내 무대에 선 테너 김승직은 제2곡에서 최근 쾰른과 린츠의 오페라 무대에서 갈고 닦은 발군의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몸무게를 상당히 감량한듯 한데 목소리가 더욱 단단해졌다. 곡 중 D♭의 고음을 주저없이 쭉 뽑아 제낀다. (D♭은 네순도르마 최고음보다 반음 높은 음이다.)

 

제7곡의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의 절창도 뛰어 났다. 풍성하면서도 열정적 표현력이 돋보였다. 그에 비해 제8곡의 소프라노 황수미는 합창을 압도하기보다는 상하를 오르내리는 아르페지오가 좀 버겁게 느껴졌다. 오히려 제3곡에서 메조와의 2중창이 훨씬 짜임새가 있고 앙상블이 좋았다. 

롯시니 <스타바트 마테르>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제9곡의 무반주합창과 제10곡의 피날레이다. 독창자들과 합창단이 오케스트라 반주 없이 교대로 성부간을 주고 받으며 응답하는데, 잔잔하면서도 깊은 슬픔이 물결친다. 


그리고 쉼없이 바로 피날레로 몰아쳐 간다. 매우 극적인 다이나믹스가 폭포수처럼 일렁이고 활기찬 생동감이 넘쳐난다. 정명훈은 이 대비를 극단으로 몰고 가서 감동의 낙차를 극대화시킨다. 역시 최고의 <스타바트 마테르> 지휘자이다. 1995년 레코딩 이후 30여 년간 정명훈의 음악이 어떻게 연마되었는지 그 세월의 무게마저 느끼게 한다. 브라보 마에스트로!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애통하게 자식을 잃고 지금도 슬피 울고 있는가! 특히 팔레스타인에서, 우크라이나에서!


그러므로 <스타바트 마테르>는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사모곡이자 억울함과 비통함 속에 싸여 있는 이 세상의 피에타들에게 보내는 위로곡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이 곡을 바쳐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