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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Jai)의 {Golden Hour} - 황금빛 노을에 물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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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하 기획자 | 25년이라는 시간이 한 뮤지션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일까. 자이의 새 앨범 {Golden Hour}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1990년대 말 '헤디마마'의 메인보컬로 데뷔한 이후, 자이는 늘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적 색채를 고수해왔다. 록과 재즈를 넘나드는 폭넓은 음악성과 독보적인 음색으로 인디음악계에서 주목받아온 그가 7년의 공백 끝에 들려주는 다섯 곡의 이야기는, 시간이 가져다준 깊이와 원숙미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앨범의 시작을 여는 '너의 데이트'는 일상의 시인으로서의 자이의 면모를 보여준다. "어제 넌 분명 구멍난 셔츠였는데/오늘은 새로 산 옷을 입고/새 구두도 신었구나"라는 가사는 겉으로는 타인의 설렘을 포착한 것 같지만, 실은 마음을 전하지 못한 이의 후회와 자책이 섞인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다. "아니 사실 내가 모지리였네"라는 마지막 독백에 이르러서야 그 쓸쓸한 진심이 드러난다. 귀에 감기는 멜로디와 박찬울, 이보람의 세련된 편곡은 이러한 양가적 감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해낸다.

 

두 번째 트랙 'Fever'는 세미 보사노바 리듬 위에 자이 특유의 허스키한 보컬이 얹히며 독특한 감성을 자아낸다. "바람아 불어라 나와 함께"로 시작되는 이 곡은 정수민의 그루비한 베이스와 권낙주의 세련된 드럼이 만들어내는 리듬 위에서 자유롭게 흐른다. 특히 후반부의 "내 사람 내 사람 내 사람아"로 이어지는 보컬 라인은 자이의 섬세하면서도 독특한 표현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오늘 이 밤을'은 레트로한 연출과 함께 관능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곡이다. "비싼 위스키를 남김없이 비운 난 그저 웃고 걸어갈 뿐"이라는 가사처럼, 한 밤의 은밀한 설렘과 망설임을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해낸다. 이보람의 피아노 연주가 곡의 분위기를 한층 더 풍부하고 깊이 있게 만든다.

 

'때늦은 옛 이야기'는 앨범의 정점을 찍는 곡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고조되는 다이내믹한 전개가 인상적인데, 특히 "이제와 사랑이라 말해봐야/때늦은 옛 이야기"라는 구절에서 폭발하는 자이의 보컬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너의 데이트' 피아노 버전은 이보람의 섬세한 편곡으로 원곡과는 또 다른 쓸쓸한 정서를 담아내며 앨범을 마무리한다. 특히 피아노 버전에서는 이 짝사랑의 아린 감정이 한층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Golden Hour}는 특별한 방식으로 탄생한 앨범이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의 기획 아래, 75명의 후원자들이 함께 참여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만들어진 이 음반은 뮤지션과 리스너가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은 자이에게 상업적 압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창작 환경을 제공했고, 이는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Golden Hour}는 프로듀서와 세션들의 호흡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프로듀서 박찬울은 자이의 보컬이 가진 다채로운 매력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리면서도, 각 곡의 정서와 분위기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너의 데이트'에서는 기타와 미디 프로그래밍으로 팝적인 세련미를, 'Fever'에서는 보사노바 리듬 위에 자이의 보컬이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프로듀서이자 기타리스트인 박찬울은 앨범 전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너의 데이트'의 미디 프로그래밍과 기타 연주는 곡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중심축이 되고, 'Fever'에서의 기타 워킹은 보사노바 리듬을 한층 자연스럽게 만든다. 여기에 정수민(베이스)과 권낙주(드럼)로 이어지는 리듬섹션이 단단한 그루브를 더하고, 이보람의 피아노가 곡의 정서를 풍성하게 채워넣는다. 특히 '오늘 이 밤을'과 '때늦은 옛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밴드 사운드는 자이의 보컬에 안정적인 토대를 제공하면서도, 각 연주자의 개성을 충분히 살려냈다.

 

이 모든 요소들은 황경하의 섬세한 녹음과 믹싱 작업을 통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특히 자이의 보컬과 밴드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순간들이 생생하게 포착되었다. 여기에 소노리티 마스터링의 이재수가 더한 음향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이 앨범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주었다. 그리하여 {Golden Hour}는 프로듀서와 연주자, 엔지니어들의 호흡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수작으로 완성되었다.

 

 

딥그린과 골드 컬러를 기조로 한 앨범 아트워크는 {Golden Hour}의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오와오와스튜디오의 김한샘 디자이너의 작업으로 마치 황금빛 노을이 도시를 물들이듯, 부드럽게 번지는 색감은 이 앨범이 담고 있는 깊이 있는 감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빛을 담아내는 사진처럼, 자이는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이 앨범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Golden Hour}는 우리 시대 싱어송라이터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