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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묻는 이쾌대의 그림 <조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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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3년 동안의 분위기를 은유와 암시로 그려낸
최근 100년 내 시각 예술 작업 중 가장 문제작

최석태 작가 |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이 문장을 읽으면 어떤 그림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그대가 답을 말하기 전에 그림 한 장을 보여드립니다. 이쾌대의 <조난>이라는 그림입니다. 2미터가 넘고 높이가 180센티미터 가까우니 제 키보다 10여 센티미터나 긴 그림입니다. 크다는 점과 아울러 등장인물이 많으며 무엇보다 아주 잘 그려진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보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림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훓어가는 방식을 잠시 접어야 합니다. 아마 이런 말이 없더라도 여러분의 눈은 그림의 오른쪽에 큰 비중으로 그려진 어떤 폭발로 갈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앞에 펼쳐지는 여러 무리의 인간군상으로 눈길을 옮기게 될 것입니다. 무리의 오른쪽에는 서로 싸우는 사람들, 비탄에 빠진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왼쪽의 무리는 그림 왼쪽 바깥에 있을 어딘가로 향해 가는 듯합니다. 여자와 아이들 무리가 그것입니다. 아이의 손에 무엇이 들려있나요? 푸른 나뭇가지입니다. 다툼과 폭력, 혼란을 넘어서 화해와 보살핌으로 가야 한다고 하는 듯 하지 않습니까?

 

 

이 그림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어떤 은유가 아닐까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는 1945년 미국과 소련이 우리나라를 공동으로 분할 점령한 때입니다. 신탁통치안과 남한 단독정부 수립안이 대립하면서 9월 총파업, 10월 대구 폭동이 일어나고, 마침내 여운형 선생이 테러로 돌아가셨습니다.

 

제대로 된 나라를 다시 세울 꿈은 사라지고 남과 북에 각기 정부가 수립될 것이라는 전망이 뚜렷해진 때인 6월 9일, 독도 가까운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서 물고기를 잡고, 미역을 채취하던 어민들에게, 어디선가 날아온 비행기들이 폭격을 퍼붓고 나아가 연발총을 쏘아 배가 부서져 가라앉고 사람이 다수 죽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내 그 비행기는 미국군에 속한 것이라는 것도 밝혀졌습니다만, 얼마나 놀랐을까요?

 


전시회에서 이 그림을 본, 화가이자 미술에 관한 글을 막 쓰기 시작한 박고석은 이쾌대의 이 그림이 바로 이 독도사건을 그린 것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만큼 독도사건이 주는 충격이 컸다는 것으로 저는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이쾌대의 이 그림이 가리키는 바는 특정한 사건이나 사안이 아닙니다. 당시는 어느 때보다도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만화나 만평 그리고 기록화 같은 것이 너무나 적다 할 정도로 엄중한 시기였습니다. 

 

이쾌대는 독도사건을 계기로 해방 이후 3년 동안의 분위기를 은유와 암시로 그려냈습니다. 폴 고갱이 그의 만년작이자 전지구적이라 할 순례를 거쳐 이룬 작품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1897년, 천에 유채, 375x139센티미터, 보스턴 미술관 소장)에서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가요?

 

이 그림을 그린 직후 남북 간에 전면전이 일어났습니다. 이쾌대는 살기위해 도망치다가 붙잡혀서 포로수용소들을 전전하다가 가족들과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족들이 모두 전란통에 죽었다고 생각하여 포로석방 때 북을 선택해서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당시의 시대상황에 이쾌대와 마찬가지로 반응한 사례가 있습니다. 1988년의 해금조처로 우리가 다시 접할 수 있게 된 설정식의 시 <제신의 분노>입니다. 독도사건은 또한 발생 10년 후인 1958년에 소설가 전광용의 <해도초>에 등장합니다. 전광용은 이 짧은 소설을 통해 그 사건을 묘사한 위에 우리가 이 사건을 통해 품어야 할 생각을 환기하고자 한 것 아닐까요?

 

특정한 사건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그림이나 글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요. 하지만 그것만이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요? 이쾌대의 그림은 격동했던 19세기에 멍하니 있다가 나라를 빼앗겼다가, 제 힘으로가 아니라 남의 힘으로 그 족쇄에서는 풀려났지만, 어이없이 나라가 쪼개지는 그 즈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보약 또는 치유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쾌대의 <해방고지>라는 또 다른 대작 그림은 이 그림보다 앞서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에 그려지기 시작한 그림이라고 확신합니다. 왜 그런지 등 이 그림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에서 이어가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일련의 이러한 이쾌대 대작 그림은 모두 4점으로, 광복 후 월북하기 전에 그려진 것이다. 한국현대사 연구자 정병준 이화여자대학 사학과 교수도 이 그림을 <조난>이라고 보았지만, 덕수궁미술관은 2015년에 <군상4>라는 제목으로 전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