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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숨겨진 해방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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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고지>는 해방공간이 아닌 해방 직전에 그려졌다
덤불에 숨겨진 남자 모습의 애매모호함이 주는 메시지

최석태 작가 |

 

앞에서 <조난>이 1948년 6월에 벌어진 놀랍고 어처구니 없는 일을 계기로 그려진 것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그린 것이라고 하였다. 이번에 살펴볼 그림도 대작이다.

 

이쾌대의 대작 그림 4점이 이른바 해방공간에 그려진 것이라는 점은 이 그림을 논하는 사람들 모두가 동의하는 바다. 그 가운데 이번에 살펴볼 그림을 그린 시기는 광복 직전이라고 여겨진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격동하게 하여 그런 대작을 만들게 한 것일까?

 

 

먼저 볼 것은 <해방고지>의 전경이다. 그림의 아래 부분에는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림의 아래쪽 가운데에 누운 여자가 보인다.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다. 그 옆에는 주저앉은 남자가 쓰러진 남자를 보살펴주면서 고개는 여자 쪽을 향하고 있다. 이 전경에 그려진 인물은 모두 몇 명인가? 자세히 보면 세 사람 말고도 한 명이 더 있다. 쓰러져 누운 여자의 뒤에 나무 덤불이 있고 그 사이로 남자의 머리 뒷부분과 왼손이 보인다. 이 남자의 존재가 다음에 이어지는 이 그림의 제목과 더불어 이 그림이 그려진 특별한 시기를 확정 짓는 열쇠들 중 하나다.

 

 

눈길을 그림의 한 가운데로 옮겨보자. 왼쪽부터 뛰어드는 듯한 두 여자의 모습이 보이고 그 여자의 말에 놀란듯한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무리의 배경에도 전경에 그려진 고난 받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러고 보면 전경과 중경은 전경에 숨겨놓은 듯한 남자가 연결하고 있다. 이 남자는 나무 덤불 속에 숨어서 무어라고 외치는 것은 아닐까? ‘해방이 온다!’고. 이 소리를 들은 여자는 놀라서 이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필자가 미술잡지 기자 시절, 이른바 사회주의와 북한 서적이 해금되는 분위기 속에서 이른바 월북 미술가, 해방공간 등과 관련된 특집 기사들을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를 살았던 미술가들을 만나는 중에 김영주라는 분을 만났다. 나는 이분을 1970년대에 나왔던 월간지 <뿌리깊은나무>에 박수근과 이중섭에 대한 짧은 글을 쓴 분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중섭에 이어 박수근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가 <뿌리깊은나무>에 썼던 글이 박수근과 이중섭의 삶과 예술에 대해 너무나 정확하게  서술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 만난 김영주의 말과, 그 후에 만난 분들이 김영주에 대하여 언급한 것을 이어보고는 놀라고 말았다. 그는 광복 직전 이중섭의 집에 식객으로 있으면서 이중섭과 친밀한 관계인 이중섭과 박수근을 두루 알게 된 것이었다. 박수근의 삶의 궤적은 부인이 쓴 글 말고는 제대로 조사되어 쓰인 글이 드물다. 이쾌대의 경우에도, 이제는 알게 되었지만 이른바 월북한 관계로 오랫동안 제대로 몰랐다.

 

김영주는 광복 직전 어느 날에 이중섭과 함께 원산을 떠나 서울의 이쾌대 집을 방문했다가 놀라운 그림들을 보았다는 것인데, 그 그림이 바로 <해방고지>와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이라는 그림이었다는 것이다. 믿기 힘들었다. 이런 증언이 믿을만한 것임을 확신하려면 이쾌대와 그의 형 이여성에 대한 몇몇 정보가 어우러져야 한다.

 

이여성은 여운형의 이른바 오른팔에 해당하는 인사로 건국준비위원회의 주요 인사다. 광복 이틑날, 여운형이 살던 집과 담을 이어 있던 휘문고보 운동장에 모인 사람들이 여운형에게 연설을 청했으므로 집을 나와 휘문고보로 가는 사이에 찍은 사진 속 반바지를 입고 한국 사람으로서는 유난히 코 큰 모습을 한 사람이 바로 이여성이다.

 

 

그는 건국준비위원회의 전신으로 광복 두어해 전에 결성된 건국동맹 이전부터 여운형과 이어져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이른바 ‘단파방송사건’이 벌어졌다. 경성방송에서 일하던 조선인들이 당시 엄하게 금지되었던 미국의 소리 방송을 몰래 듣고 어린 사환을 시켜 여운형에게 정기 보고를 하다가 일망타진되었던 사건이었다. 여운형은 분명 이런 소식을 접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았으며, 이를 측근인 이여성에게도 알렸을 것은 확실하다.

 

이런 배경으로, 이여성의 동생 이쾌대가 1941년에 주도하여 만든 조선신미술가협회도 이여성이 파악한 정세를 바탕으로 이룩한 것이라 확신한다. 이중섭은 이쾌대, 진환과 더불어 조선신미술가협회의 중요 인사였다. 이쾌대의 집에 들렀던 이중섭에게도 이런 시대 분위기는 공유되었을 것이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었던 이쾌대의 집은 놀랍게도 홍사익의 집과 대문을 마주하고 있었다. 홍사익은 일본군 장성이 된 유일한 조선인이었고, 이쾌대의 아드님이 어머니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그 집 주위에는 일본군 제복을 입은 사람 여럿이 늘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해방고지>가 그려진 것이다.

 

이 그림의 애매모호함은 이런 배경이 작용해서 빚어진 것이 아닐까?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갈 예정이지만, 이 그림의 등장인물인 이쾌대의 얼굴에 나타난 어리둥절한 표정도 이런 상황에서 빚어진 결과라 확신한다.

 

기독교 그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수태고지’ 주제의 그림들을 살펴보면 놀라운 가운데 어리둥절한 분위기가 뚜렷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화가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잘 잡아내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해방고지>에서 내가 찾아낸 핵심은 ‘곧 해방이 온다!’고 말하는 듯한 숨겨진 남자의 뒷통수와 손이다. 광복을 맞이한 뒤에 이런 설정을 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는 점에서 이쾌대의 해방고지는 해방직전에 그려졌다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