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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의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언제 그려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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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의 자화상.
얼굴 표정으로 읽을 수 있는, 그림이 그려진 시기

최석태 작가 |

 

 

그림에 대한 묘사부터 시작하자. 중절모라고 부르는 모자를 쓴 인물은 한 손에는 흔히 팔레트라고 부르는 물감 섞는 판을 여러 자루의 붓과 함께 거머쥐고, 다른 한 손에는 붓을 쥐고 있다. 그 뒤로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입고 있는 두루마기가 흰 색이 아니라 푸른 빛이라는 점이 남다르다. 실내에 앉은 자세로 책을 읽는 형을 우리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 남다른 면모를 보여준 화가답다고 할까? (편집자주. 이쾌대는 친형님 이여성이 개다리소반에 책을 펼치고 읽는 모습을 유화로 그렸는데, 일반적인 유화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배경의 풍경을 자세히 보자. 흰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두르고 무언가를 머리에 인 여인 셋이 그림을 보는 사람 쪽으로, 못 사이로 난 길을 걸어오고 있다. 야트막한 산등성이에는 지붕이 동글해 보이는 초가들과 밭이 보인다. 얼굴 중간쯤 뒤로 멀리 펼쳐진 풍경에 보이는 하늘과 산이 맞닿은 부분도 떠 있는 구름과 마찬가지로 희다. 어떤, 희망을 보여주는 것일까? 

 

이번에는 이 그림의 주인공인 인물을 살펴보자. 얼굴 표정이 좀 불안하지 않은가? 그림 그리기를 마치면 대부분 그린 사람의 이름과 그림 그린 때를 적는다. 이 그림에는 이런 기록이 없다. 그래서 미루어 짐작한다. 많은 논자들이 1948년 어름이라고.

 

그림이 그려진 때는 과연 언제일까?

 

이 그림에 대해 언급한 논자들 대부분은 이 그림을 1940년대 후반에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적어놓지 않았으므로 제작 연도를 짐작할 뿐이다. 나도 마찬가지. 나는 이 그림의 제작 연도를 1945년 8월 15일 이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추정의 가장 확실한 근거는 바로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 자신의 얼굴 표정이다. 조금은 얼떨떨한 표정!

 

 

이 연재가 세 번째로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이쾌대의 초기 작품을 살펴보지는 못했다. 일본 강점기 첫 연대에 태어나 30살이 되도록, 그 눌린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그려진 그림을 다루지는 않았다.

 

앞서 글에서 다룬 <해방고지>가 이민족의 억압 아래에서 보낸 시기의 맨 마지막 그려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다루는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도 광복 직전에 그려진 것이라고 주장하려고 한다. <해방고지>도 그렇고, 후자의 그림도 절묘한 점이 있는 시기에 그린 것이라는 점이 무슨 큰 내용을 품고 있기에 나는 이 사실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이 자화상에도 전자와 같은 남다른 장치가 의도하지 않게 들어있다고 본다. 거듭 말하지만, 얼굴 표정이 그것을 말해준다. 약간은 어리둥절한 느낌을 풍기지 않는가? 얼굴 표정에 대해서는 주관적인 의견이 강한 것이므로 더이상 논의하지 않고, 붓을 쥔 손과 팔뚝에 눈길을 보내보자.

 

 

이 손 모양은 동과 서, 고와 금의 어느 자화상보다 더 강하게 무언가를 외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하면 과장이라고 하겠지만, 그런 비판을 무릅쓰고 나는 외쳐본다. 이 유화에 남다른 점이라면 그림의 주인공의 붓을 쥔 손이 있는 위치다. 이 자세는 마치, ‘나는 화가다’ 라고 외치는 것 같지 않은가! 

 

이런 설정이 어리둥절해 보이는듯한 표정과 아울러서, 광복 직전에 곧 광복이 온다는 귀뜸을 받고 그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곧 광복이 온다는 것은 앞서 연재에서 단파방송사건과 여운형 선생이 주도한 건국동맹과 연관된 형 이여성과 연관되어 있음을 설명했다.

 

이 그림에 보이는 이쾌대의 얼굴 표정은 어리둥절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손 모양은 동양화 붓을 쥔 것같다. 그 때까지 이쾌대가 추구한 우리식 유화가 완성에 이르른 시기, 1944년을 전후한 어느 시기에 곧 도래할 광복의 소식을 듣고 벅차하면서 ‘나는 조선의 화가다’라고 외치는 듯하다. 그래서 이 그림은, 해방을 알리는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쾌대가 추구했던 우리식 유화의 사례는 다음 글로 자세한 사연을 말해드리겠다고 기약하며 이번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