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임윤찬의 연주, ‘살성’과 ‘골(骨)성’의 완벽한 균형

URL복사

지메르만처럼 투명하면서 더욱 옹골차게,
에밀 길레스의 파워와 골기(骨氣)를 발전시킨

이왕준 명지의료재단 이사장 기고 |

 

[편집자주] 이왕준 명지의료재단이사장은 10년 전부터 병원 내에 예술치유센터를 운영할 정도로 클래식을 사랑한다. 감염병 전문가로서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 방역 과정에서 중책을 성실히 수행하면서도, 환우와 의료진을 위한 힐링 콘서트를 멈추지 않았다. 수많은 예술단체를 지원하고 기업과 연결한 공로로 2021 메세나 대상 및 메세나인 상을 받았다. 이 글은 지난 8월 26일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아트홀에서 열린 임윤찬 연주회를 그가 직접 보고 쓴 후기이다. 

 

반 클라이번 콩쿨 우승 후 형성된 임윤찬 신드롬 때문에 요새 그의 실황 공연 티켓을 구하는게 하늘의 별따기이다. 어제 공연도 판매시작 10분만에 1000석이 넘는 티켓이 바로 매진되었고 5만원 짜리 티켓이 50만원에 거래되었다 한다. 가히 임윤찬 열풍은 클래식계에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초유의 현상이다. 과거 조성진 쇼팽콩쿨 우승 때 하고도 비교할 수 없다.

 

 

운 좋게 구한 티켓 덕에 실황 연주로는 처음으로 그의 타건을 직접 들어 볼 수 있었다. 어제 연주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 3번과 함께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쿨의 결승곡이었다.

 

오케스트라는 KBS 교향악단에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지휘한다. 환상의 콤비이다. 본인이 왕년에 최고의 피아니스트 아니었나? 1974년 정명훈이 21살 나이로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2등으로 입상했을 때에 김포공항에서 광화문까지 카퍼레이드 행사가 있었다. 딱 49살 차이가 나는 이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우리나라 현대사 속에서 성장해 온 클래식의 역사를 상징하는 듯 하다.

 

 

임윤찬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반 클라이번 결승 실황으로 유튜브를 통해 봤기 때문에 어떤 흐름으로 이끌어 나갈지 나름 예측이 되었다. 1악장 카덴차의 눈부신 독주, 2악장 도입부의 섬세하고 가녀린 프레이즈, 3악장의 발랄하고 날렵한 쾌속 연주 등 모두가 훌륭했다.

 

하지만 정말 궁금한 건 실황으로 듣는 그의 타건과 사운드 음색이었다. 그리고 참으로 임윤찬의 피아니즘(피아노를 치는 주법 또는 기술)이 정말 독보적이라는걸 새삼 느낄수 있었다. 굳이 기존 거장들과 비교한다면 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 에밀 길레스를 섞어 놓은 듯하다. 아니 두 거장의 장점 만을 뽑아 합성 주조한 듯 하다.

 

소위 은쟁반 위에 옥구슬 굴러가는 듯 섬세하면서도 유려한 터치의 지메르만처럼 투명하면서도 한편 더 옹골차다. 강철 타건이라 불리면서 다이나믹한 광택 소리burnished sound를 자랑하던 에밀 길레스의 파워와 골기(骨氣)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훨씬 더 부드럽고 끈적하다. 이 양면성을 다 겸비한 이 젊은 거장의 미래가 더욱 기대될 뿐이다.

 

 

피아노는 건반악기이지만 사실상 타악기이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타현악기이다. 피아노의 건반은 중간 브리지를 통해 해머를 들어올려 현을 때리게 된다. 이 섬세한 전달에 힘을 가하는 연주자의 손가락 길이, 두께, 살집 등이 소리의 차이를 가져오고 손가락의 관절 및 근육의 힘과 유연성이 타건의 차이를 가져온다.

 

손가락은 팔과 어깨로, 몸통과 목을 통해 머리로 연결되어 있다. 머리에서 다시 팔과 손가락을 거쳐 건반으로, 그리고 다리 발을 거쳐 페달을 조절한다. 그야말로 피아노 연주는 다른 현악기나 관악기와 다르게 뼈와 근육을 통해 피아노란 ‘타현 음악기계’와 온 몸이 하나로 움직이는 ‘통합적 음악 노동’이다.

 

그래서 피아노 소리에는 ‘살성’과 ‘골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고 강력하면서도 섬세한 양면성이 마치 살과 뼈가 둘이 아니고 하나로 붙어 있듯이 두뇌과 영감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피아니즘 역시도 한 연주자에게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성장,성숙,노화한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피아니스트가 정신적, 사회적으로 성숙해 가겠지만 또한 뼈와 살도 늙어 간다. 우리가 10대 20대의 천재 신예들에게 열광을 하지만 백전 노장의 대가들에게서 더 깊은 감동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윤찬의 10년 후, 20년 후가 더 궁금해진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인 연주자로서는 앞으로 최고의 길을 걸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속 롱런해서 정명훈의 나이 쯤이 되었을 때에는 정말 에밀 길레스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반열에 오르기를 고대한다.

 

 

임윤찬은 협주곡이 끝나고 앵콜곡을 연속 3곡이나 연주했다.

 

첫번째 곡은 바르셀로나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페데리코 몸포우 (Federico Mompou, 1893-1987)의 피아노 소품 <정원의 처녀들 Jeunes files aux jardins>. 처음 듣는 곡인데 카탈루니아의 향취가 훅 들어왔다.

 

두번째 곡은 쇼팽 녹턴 2번. 이 상투적인 멜로디도 임윤찬의 손에서 새로움을 얻는다. 쇼팽으로 다 짜여진 독주회를 기대하게 만든다. 세번째는 <엘리제를 위하여>. 첫 멜로디에 관객들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정말 참 잘 치는구나!!! 더 이상의 표현이 안된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니 늦여름 밤의 풍광이 고즈넉하다. 어느새 밤바람에 가을의 기운이 서려있다. 하늘이 깜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