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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에 대한 기대, 이중섭 <달과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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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사가 아니라 휴전협정 뒤 희망을 담은 그림
세련되고 비범한 조형감각을 드러낸 명작

최석태 작가 |

 

 

둥근 보름달이 떠 있는 푸르른 하늘. 무리를 향하여 내려오는 까마귀 한 마리, 맨 오른쪽 까마귀가 날아오며 무리를 향해 입을 벌려 무언가를 말하는 듯하다. 화면 중앙에 앉아 있는 녀석은, 몸은 무리 쪽으로 향하면서 고개는 날아오는 녀석 쪽으로 돌려 뭐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맨 왼쪽 녀석도 아래쪽을 보면서 마치 오라고 부르듯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까마귀들은 실제로 이런 상태를 연출했을까? 마침 이런 광경을 본 이중섭이 이를 그린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이런 장면을 연출한 것은 화가 본인이다. 이런 장면은 많은 궁리를 거치지 않고는 만들 수 없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런 연출을 했을까?

 

이 그림은 1954년 6월 대한미술협회 연례전에 출품되었고 이를 본 미국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 함께 출품한 소를 그린 그림은 이승만 대통령이 구입해 미국을 방문하면서 들고 가 선물했다고 할 정도이다.

 

유치환은 이중섭 사후 11년 만에 이 그림을 소재로 마지막 발표작이 된 시 ‘괴변-이중섭 화(畵) 달과 까마귀’를 썼다. 우리나라 최초 미술평론가 이구열은, “세련되고 비범한 조형감각을 드러낸다”고 극찬하였다.

 

 

이중섭의 불행한 개인사 때문인지, 소유권 이동도 많았던 이 그림에 대하여 ‘절망과 희망이 엇갈리는(이구열)’ ‘불길한 내용의 그림이지만 매우 아름다운’(이경성) ‘우울하고 무겁고 음산한 분위기’(임영방)라면서 가족과의 이별로 인한 외로움과 불행, 불안한 심정을 드러낸다는 담론이 많다. 과연 그런가? 

 

1953년 7월 27일에 남한 정부는 불참한 상태로 휴전협정이 조인된다. 다음 달인 8월 15일에 정부는 서울로 돌아간다. 그 무렵 때마침 부산에 머물 까닭이 없어진 이중섭은, 통영의 나전칠기강습소 책임자로 부임한 유강열로부터 강사로 오시라는 제안을 받는다. 이북사람이라 고향이 없던 이중섭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사람이 이성운이다. 이중섭은 강습소 2층 방에서 이성운과 함께 머물렀다.

 

이성운의 증언에 의하면, 이중섭은 이성운의 고향인 욕지도에도 동행하여 풍경을 그렸고, 통영에서 평화로운 소를 보았다면서 소그림 그리기에 몰두하여 여러 점의 소그림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이중섭은 통영에 내려온 직후 어느 기분 좋은 초저녁에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여태까지 이 그림은 대한미술협회 연례전이 열린 1954년에 그렸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성운의 증언을 토대로 보면, 이 그림은 휴정협정 직후인 1953년 늦여름에 그려진 것이 분명하다. 지루하던 휴전회담이 마감되고 평화로운 시기를 맞이할 희망에 부푼 이중섭의 마음을 반영한 그림이다. 그래서 선선해지기 시작한 늦여름이라는 알맞은 계절과 보름달이 뜬 좋은 시간에 까마귀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절묘하게 그려낸 것이다. 그림의 여름 하늘빛, 까마귀 한 마리, 한 마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이중섭은 많은 궁리를 했을 것이다.

 

지난 7월 27일은 휴전회담을 조인한 지 69년이 되는 날이었다. 내년에는 70주년이 된다. 지난 8월 13일에 이중섭의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가 100세를 갓 넘겨 돌아가셨다. 이중섭의 그림을 읽을 때 이런 사항을 겹쳐 읽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요즘이다.

 

 

덧붙이는 그림은 1952년 부산에서 그려졌다고 추정되는 것으로, 휴전을 앞둔 시기 한 뼘 땅을 두고 처절하게 싸웠던 북과 남의 동족 상잔을 그린 것이라고 보인다. 까마귀는 살기 힘든 환경이 되면 서로 물어 죽인다고 한다. 한국 전쟁을 겪은 어르신 여러분들로부터 들은 것을 여기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