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클래식 가곡 연주회가 지루하다는 사람이 많다. 지난 10월 21일, 세종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 18회 <우리노래 펼침이> 공연을 관람하기 전에 같은 걱정을 하였다. 어찌 보면 돈보다 중요한 것이 시간이기에, 공연이 즐겁고 감동적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관객의 권리일 것이다.
프로그램은 신동수 작곡 '주기도문'을 바리톤 황영호가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한껏 느리고 장중한 분위기의 이 곡 뒤에 나온 것은 박원준 작곡 '긍정적인 밥'이었다.
함민복 시인이 쓴 같은 제목의 시에 곡을 붙인 이 곡은, 시 한 편 값을 쌀 두 말에, 시집 한 권 값을 국밥 한 그릇에 비교하면서 수입은 비록 적어도 세상을 따뜻하고 긍정적으로 보는 시인의 마음을 담고 있다. 이 곡으로 관객의 소박한 마음을 두드려 무장해제시킨 뒤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된다.
소프라노 임단과 바리톤 김우주의 연주에 이어 매우 늦은 나이에 성악에 입문한 소프라노 신현령이 연주했다. 올해 74세의 고령에도 '솟대'와 '빛나던 사랑이더라' 두 곡을 소화했다. 전공자가 아님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뒤늦게 연주자의 나이를 알고 놀란 관객이 한 둘이 아니다. 한국 가곡은 이런 분들의 열정을 동력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어진 바리톤 김진추의 연주는 감동적이었다. 듣기에 좋은 노래는, 곡이 좋은 것인지 연주를 잘하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정말 어렵겠구나싶었다. 휘몰아치다가 멈추고, 애를 태우다가 슬며시 돌아나오는 그의 노래는 호흡 하나하나가 관객의 애를 태우기 위해 계산된 듯 했다.
소프라노와 바리톤 만으로 구성된 연주가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무렵, 테너 부서훈이 나와 김수영 시, 성용원 작곡 '푸른 하늘을'과 '풀'을 연주하여 분위기를 밝고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위에 몽환적인 목소리의 임성빈이 이순교 작곡 '봄이 온 줄 알았네'를 연주했다.
소프라노 박성연의 연주에 이어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색의 소프라노 김성혜가 연주했다. 관객은그야말로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듯하다며 환호했다. 이후 소프라노 이영주의 연주에 이어 느티나무 남성중창단의 연주가 있었다.
이날 마지막 곡은 이상렬 시, 박원준 작곡 '앰블런스'라는 곡이었다. "처 자식 땜에 정신차려야지..."로 시작되는 범상치 않은 노랫말로 시작되었는데, 경쟁사회에서 생계에 허덕이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앰뷸런스를 타고 가며 생사를 넘나들면서도 처자식을 생각하는 40대 가장의 처지를 위트있게 표현한 곡이었다.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 노랫말을, 이 과정을 이미 다 거쳐온 느티나무남성중창단원들이 실감나게 연주하니 한껏 집중하며 즐길 수 있었다.
대중과 언론의 외면 속에서도 우리 가곡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치열하다. 그리고 이 노력에는 너나가 없고, 프로와 아마추어도 없으며, 심지어 국적도 없다. 이번 공연도 조금은 지루하고 전형적인 면이 있었지만, 생활속의 주제를 가곡으로 가져와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고, 다양한 국적과 연령의 연주자들이 참여하면서 가곡 저변을 넓히고자 노력한 결과 감동과 재미로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관객들의 연령대가 전반적으로 높고 가족 지인 구성이 많다는 것이다. 젊은 층들은 한국 가곡에 대한 배경지식이 적다. 그렇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클래식 연주의 진행 방식은 가뜩이나 낯선 음악을 더 지루하고 재미없게 만든다.
지금은 40~50대 이상 중장년들이 뒤늦게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면서 한국 가곡 시장을 지탱해주고 있지만, 자발적으로 찾아주는 젊은 관객이 없다면 한국 가곡의 미래가 불안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다.
지난 9월 16일 미국 미시간대에서는 매튜 톰슨(40) 음대 교수가 기획하고 사회와 연주까지 도맡아 진행한 'K-가곡: 한국 가곡 리사이틀'이 열렸다. 그는 한국의 작곡가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막을 열었고, 외국인과 한국인 성악가들이 또박또박한 한국어 발음으로 11곡의 한국 가곡을 선보였다. 이날 의자 수십개를 더 구해와야 할 정도로 호응이 컸다고 한다.
그는 2011년부터 한국 가곡을 집대성한 무료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지금까지 1천여곡을 수록하였다. 뉴스아트에서는 이전 기사에서' 한국어 음성표기만 있다면 한국 가곡을 부를 의사가 있다'는 외국인들의 반응을 소개한 바 있다. 톰슨 교수는 이들 1천곡에 대한 한국 가곡의 음성표기까지 수록하고 있다.
우리 가곡을 부르는 무대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챙겨보기 어려울 정도다. 각종 성악 혹은 예술가곡 협회나 연주회의 정기연주회, 작곡가 초청 연주회, 가곡교실이나 동호인 음악회, 추모가곡제, 개인 혹은 단체의 가곡 콘서트 등이 전국 곳곳에서 일년 내내 끊임없이 열린다.
그 가운데 <우리노래 펼침이>는 일 년에 한 번, 한국 창작가곡의 성과를 확인하고 공유하는 모임이다. 신동수 작곡가와 이순교 작곡가가 "우리말과 우리글로 된 우리의 노래를 잘 다듬어 짓고, 이를 널리 펼치자"는 의미에서 2004년에 시작하였다고 한다.
'조촐하게' 시작한 이 모임은 최근 코로나를 비롯한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18년을 견뎠다. 이제는 한국메세나협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도 지원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우리 가곡의 커다란 연례행사가 되었다. 외국인 성악가들은 물론, 우리 가곡에 대한 열정과 실력이 전문가 못지 않은 작곡가와 성악가들도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