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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예술을 생각한다 - 제 2회 이안삼 가곡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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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0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1년 뒤 비슷한 시기 타계한 이수인 선생도 함께 추모

뉴스아트 김시우 기자 |

 

제 2회 이안삼 가곡제가 열린다. 이안삼 가곡제는 한국가곡에서 빼놓을 수 없는 故 이안삼 작곡가를 추모하기 위해 작년부터 열리는 가곡제이다. 고인이 12회까지 이어 오던 ‘작곡가 이안삼의 음악여정’을 이어받는 가곡제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고인과 고인이 작곡한 노래들은 그 이전에 작곡된 한국가곡에 비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80년대 이후 한국가곡이 퇴조기에 접어들면서, 애호가들 사이에서만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다. 

 

정년 퇴임 후에 더욱 활발하게 한국가곡계에 족적을 남긴 고인은 여러 가곡단체를 만들고, 변화한 시장에 맞춰 한국가곡에도 일관제작시스템을 도입하고자 애썼으며, 해설이 있는 가곡음악회와  크고 작은 가곡음악제를 주도하며 한국가곡이 대중과 만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순수 예술가곡의 틀을 유지하면서 대중음악적 요소를 가미하게 위해 클래식(Classic)과 팝(Pop)의 장점을 합친 클래팝이라는 장르를 제안하기도 했다.


고인은 원래 트럼펫을 전공했는데 '가고파'의 작곡가 김동진 교수의 권유로 작곡으로 전환하고 졸업 후 34년 동안 마산중, 김천중고교 교사 및 대학 강사로 재직하였다. 정년퇴임 후인 2008년 서울로 올라와 '이안삼 카페'라는 인터넷 가곡 동호인 카페를 운영하면서 가곡 생산자와 가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게 함으로써 한국 가곡 시장의 흐름을 바꾸었다. 

 


그 즈음 한국가곡은 90년대부터 급부상한 대중음악에 밀려 시장성을 거의 잃고 있었다. 고인은 정년퇴임을 3년 앞둔 2003년에 이미, 여생을 한국가곡 부흥에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해에 ‘그리운 금강산’의 최영섭, ‘내 맘의 강물’의 이수인, ‘강 건너 봄이 오듯’의 임긍수와 함께 ‘4인 작곡가회’를 결성하여 전국을 돌며 음악회를 열었다. 

 

카페에 몰려든 한국가곡 애호가들은 직접 노래하고싶어했다. 고인은 이들을 대상으로 가곡교실을 열었는데 요즘 말로 '대박'이 났다. 회원들의 실력이 향상되자 프로성악가를 초청하여 함께 음악회를 열기도 하면서 한국가곡 동호회의 외연을 확장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가 많게는 한달에 30회 가까이 열리는 지금의 소규모이지만 다채로운 한국가곡음악회이다. 

 

이러한 한국가곡음악회가 어찌나 많은지, 예술인활동증명 과정에서도 엄격히 심사하여 증명 발급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제외할 정도이다. 하지만 개인 렛슨을 받아가면서 노래하는 한국가곡 동호인들의 열정은 그 어떤 음악 장르에도 뒤지지 않는다.

 

 

1981년 MBC에서는  "건전하면서도 따라부르기 쉬운 애창가곡을 찾아내 널리 알리고자" <MBC대학가곡제>를 개최하였다. 제 1회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가곡 '눈'은 당시 경제학과 대학생이던 김효근 현 이화여대 교수가 작곡하여 화제가 된 곡이다.

 

이 곡은 성악가들 뿐 아니라 수많은 한국가곡 동호인들의 사랑을 받았고, 유튜브에 다수의 영상이 업로드되어 수십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2018년 5월에는 대학가곡제 원본 영상이 업로드되어 지금까지 84만 번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렇듯 한국가곡의 인기는 트로트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 학창시절 합창대회를 통해, 음악수업을 통해, 그리고 명곡을 탄생시킨 대학가곡제를 통해 우리가곡을 익히고 접한 사람이 많다. 방송에서 한국가곡이 실종된 것은, 한국가곡 암흑기에 성장한 제작자들이 방송가의 주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가곡은 클래식이고, 기초예술이다. 그동안 만들어진 주옥같은 곡들은 세계적인 클래식이 될만한 잠재력도 가지고 있다. 한국가곡계의 거장이라 불리우는 故 이안삼 작곡가가, 한국가곡의 위상이 높아지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을지 고인의 이름을 딴 가곡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