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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표, 연극배우 자존심 깎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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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7월 19일 '연극배우 단가기준표 마련'에 대한 포럼이 있었다. 서울연극센터에서 지난 7월 10일부터 진행 중인 "연극생태계활성화 위한 오픈토크(이하 오픈토크)" 4회차이다. 

 

이날 포럼에서도, 배우단가표 등 기준과 목표가 있어야 우리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다, 제작비 투명 공개로 금액이 적더라도 공정하다는 느낌을 받고 싶다, 지원을 빌미로 국가에 우리 운명을 맡겨서는 안된다, 제도와 정책을 바꾸려면 우리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제 문화도 체육도 관광도 아닌 "예술부"가 필요하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발제는 극단 노을 오세곤 예술감독이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했던 「공연예술 전문 인력 표준인건비 산출연구(이하 인력표준연구)」에서 출발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2014년 발주하여 2015년 1월 최종보고서로 나온 것이다. 당시 문화부와 협의를 통해 5년 동안 권장한 뒤 의무화 할 목적이었지만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반발이 심해 무산되었다.

 

그 결과 이제는 연극 그 자체와 연극인들의 삶이 현실과 동떨어지게 되었다. 이에 "아프고 우울한 보고서" 다시 꺼내 보면서, 그 때의 물러섬이 옳았는지, 지금은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해보기로 한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다며 채택하지 않은 단가표, 이제 연극이 현실과 동떨어지다

 

오감독은 인력표준연구에서 사용한 계산 방식을 올해 적용해 보았다. 조사결과 배우, 조연출, 무대감독, 번역 등의 직군은 전업으로 할 경우에 연간 네 편 정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일반 공연의 경우 최저임금 기준으로 편 당 평균 603만원, 비영리 공연의 경우에는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374만원이 표준단가가 된다. 연출과 극작은 일년에 3편 가능하므로 편당 표준단가가 올라간다. 여기에 학력 경력 등을 감안한 가중치를 두고 가감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디자이너나 기획 등 모든 직종에 적용하였다. 


2023년 현실은 2015년 당시보다도 더 큰 격차를 보여주었다. 노동자 대투쟁 이후 표준단가 계산의 기준이 된 최저임금은 꾸준히 올라갔지만 연극계 상황은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된 2023년 공연 회당 시간당 표준단가는 다음과 같다.

 

 

이 표는 전업으로 하는 경우 주 6일 하루 4시간씩 8주 연습에 4주 24회 공연을 기준으로 하였다. 연습시간을 포함할 경우에 이렇게 처참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연극을 "직업"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이유로 매우 치욕적일 수 있는 표준단가 발표에, 플로어에서는 스스로(의 존엄성)를 깍아먹는 이런 짓 하지 말라며 소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기준을 만들지 않은 결과, 2015년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 하나는 분명해 보였다. 

 

20년 뒤를 목표로라도 당장 시작해야 인식이 바뀔 것이다

 

오감독은 2015년에 단가표를 적용하기 시작했다면 달라졌을 것이라고 하면서, 지금부터라도 시작하여 "20년 뒤에는 대졸 초임과 비슷해지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단가표를 조사 분석했다고 하였다. 정부에서는 보조금을 줄 것이 아니라 구입단가를 책정해야 하며, 그 때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단가표를 해마다 다시 만들어나가야만 연극계에서도 인건비를 경직경비(반드시 들어가는 비용)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인건비를 가장 나중에 계산하는 관행이 지금의 초저임금 상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이종승 위원장이 발제에 나섰다. 그는 2020년 연극의 해 「공연예술 생태계 공정보상 기준 마련을 위한 기초연구(이하 기초연구)」 내용을 먼저 보여주었다. 

 

기초연구에 의하면, 예술인의 절반 이상이 1년에 세 편 미만으로 활동하였다. 작품활동을 통해 얻는 수입은 연간 100만~300만원이 32.1%로 가장 많고, 100만원 미만이 26.8%로 나타났다. 

 

계약서는 88.4%가 작성하고 있지만, 인건비를 협상하는 비율은 28.6%로 대부분이 주는대로 받는 임의계약 형식이었다. 임의계약이란 임대료 등 고정비를 제외하고 남는 비용을 고루 나눠갖기로 하는 계약이다.

 

예산 편성시 인건비 우선 책정하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예산 편성의 적절성을 묻는 질문에서는 인건비를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는 예산편성 순위에서 대관료등 경직성 경비를 우선하고 있다. 경직성 경비와의 경쟁에서 인건비가 밀리지 않으려면 인건비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앞선 발제가 설득력을 가지는 대목이다. 

 

지급방식은 55.4%가 공연을 마치고 일시불로 받는 용역계약 형식이었는데, 연습시간에 대하여 별도로 보상 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이 67%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당연한 응답이겠지만, 보상 만족도 조사에서는 94.6%가 부적정하다고 응답했고 바뀌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85.7%였다. 이들은 '예술계 내 새로운 규정(53.6%)'거나 '경력에 따른 인건비 표준안 마련(50.9%)', 그리고 '최저시급제 도입(43.8%)' 등의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공모지원 사업에서도 인건비 책정 필요

 

이 조사를 기반으로 이위원장은 "공공시장 내에서의 제도 개선이 궁극적으로 민간 시장에 변화를 만들 수 있도록" 단계적 접근을 제시했다고 한다. 공모지원 사업에서라도 인건비를 책정하여 연습 시간에 대해서는 최저시급이라도 지원하도록 해 보고, 그렇게 인건비를 지급했을 때 공모사업이 불가능하다면 공모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공모사업에 시급이나 교통비 지급을 못하게 하고 대관료나 연습실비 등을 요구하면 업체를 통해 금액을 부풀리지 않으면 인건비를 지급할 수 없어요.

 

 

지정토론에 나선 임지언 연출은 "단가표를 보기가 겁난다. 나는 제대로 받고 있는지 혹은 드리고 있는지 착잡하다."는 말로 시작하였다. 그는 독립영화는 학생들 조차도 제작비의 10프로를 인건비로 책정하고 미리 출연료를 제시하고 시작한다는데, 연극에서는 왜 인건비가 가장 뒤로 밀리는가 반문하며 과거에 했던 낭독 축제 등, 연극인들이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행사를 서울문화재단 등에 요청했다.

 

하지 말아야 할 작품에 응하는 우리들의 태도부터 살펴봐야

 

하지만 정말 임연출이 하고싶었던 말은 "우리의 인식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였다.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해서는 안되는 작품에 출연하기도 하는데, 출연료나 제작환경이 열악한데도 그 작품에 참여해야 할 명분이 분명하지 않다면 단호하게 돌아서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래야만 정책도 제도도 바뀐다는 것이다.

 

돈도 한 푼 안받고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하면서도 작업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거부터, 나부터, 내 주변부터, 내가 속한 팀부터 바뀌어야... 예를 들어 티켓 매니저... 실제로 극장에서 일하는 시간은 2시간~3시간인데... 감독님도 오퍼를 구하지 못해서 공연팀한테 구하라고 하거든요... 2만원에 안하는 게 당연한데 2만 원에 오지 않는 걸 요즘 애들은 생각이 다르다고 하세요. 

 

다음 지정토론자는 임대일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이었다. 그는 방송 출연시 연극배우들은 단가기준이 없어서 비용을 지급받을 수 없었다고 하면서, 2013년도에 할 수 없이 21살은 2만 1000원, 33살은 3만 3000원 방식으로 기준표를 만들고 연습비는 50%로 책정하되 경력과 기여도에 따라 가감하기로 하면서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임이사장은 플랫폼이 다변화된 상태에서는 더더욱 기준이 있어야 외부 제작사도 배우도 활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런 것을 근거로 단체장이나 기관장이 모여 입장을 정하고 정책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정비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예산, 예술쪽 지출이 어렵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년 예산이 630조인데 고정비가 600조이다. 대만은 고정비가 140조, 우리보다 인구가 많은 일본은 440조이다. 우리나라는 고정비가 높기 때문에 필요한 비용을 집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은 예산의 1%인 6조 7000억이다. 10년 전에는 나라 예산의 4%를 목표로 했는데 오히려 줄었다.

 

이 1% 가지고 (고정비 지출하면서) 한류 문화, 체육계 지원, 콘텐츠 개발, 기술융합 다 하고 있어요... 연극으로 돌아올게요. 공연 잘하려면 단체장들이 모여 열심히 고민해서 정책담당자에게 같이 싸워야 할 문제예요.     

 

임이사장은 이어진 플로어토론에서 문화체육관광부에는 예술이 없다면서, 제대로 된 예술정책과 그에 맞는 예산 지원을 받으려면 이제 예술부가 필요할 때라고 하였다. 

 

 

플로어토론에서 나온 다양한 목소리는 다음과 같았다. 

 

투자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직업이라 연극영화과에 사람이 몰리는 거다. 시급 제대로 주면 미어터질 것이다. 좋은 배우로 만들어주는 연출 밑에는 (시급 안 줘도) 몰려 올 거다. 영국에서 국립극장 지원 끊었을 때 선투자 받아서 깊이 있는 고급 뮤지컬 만들어 살아남았다. 우리도 그런 대안을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 운명을 어떻게 이런 나라에 맡기려고 하느냐

 

20년차 배우인데 정리가 잘 안된다. 보장해주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다. 지원금에 의존하는 연극에서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가는 금액이 적더라도, 제작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서로 합의한다면 공정하다고 느낄 것이다.  

 

연출입장에서 보니, 중장기 상주단체 지원을 받으니 극단이 좋아졌다. 총수입은 비슷한데 예측이 가능하니까 합리적인 지출과 운영이 가능하다. 이런 지원이 많으면 좋겠는데... 단가표의 경우, 자체제작하는 연극에 적용하기는 어려우니 공공부문부터 적용하면 좋겠다.

 

단가표까지는 아니더라도 극단마다 배우 개런티 기준이 있다. 그런데 내가 배우였을 때 공연이 잘 되어도 출연료를 못받아 피해의식이 생겨 출연료를 미리 정하는 것이 좋았다. 제작자가 되어 그렇게 하니 빚이 1억이다. 개런티 기준이 있어도 계속 조정할 수밖에 없다.

 

단가표 혜택을 보는 사람은 10~15% 정도다. 단가표는 기준을 만들자는 거고, (민간이나 비영리 공연 등 현실적으로 어려운 곳에서는) 특약으로 합의하면 된다. 출연료를 줄 수 없다면 지분계약이라도 요구해서 자신이 기여한 데 대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단가표기준은 외부에서 사업이 들어올 때 협의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