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86년 건국대 항쟁

URL복사

 

뉴스아트 전승일 작자 |

 

1986년 10월 28일, 전국 각 대학에서 모인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은 건국대학교에서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을 결성하는 연합 집회를 가졌다. 당시 서슬 퍼런 전두환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2천여 명이 모여 전국 조직을 결성하는 집회를 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당시 경찰은 대학 간 연합 집회를 대부분 원천봉쇄 하였는데, 이 날 아침부터 건국대에 배치된 경찰은 검문이나 학생증 검사를 하지 않고 아무런 제지 없이 학생들을 집회장으로 들여보냈다. 학생들이 '애학투련' 결성 선언문을 낭독하고, 독재정권 화형식을 하는 순간 갑자기 대규모의 경찰 병력이 최루탄을 난사하며 학교 안으로 난입해 진압을 시작한다.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폭력 진압에 밀려 학생회관, 사회과학관, 도서관, 본관 등 5개 건물로 흩어져 들어가 건물에 고립된 채 필사의 저항을 하며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학생들의 '강요된' 농성은 추위와 배고픔 속에 3박 4일(66시간 50분) 동안 계속되었다.

 

마침내 경찰은 10월 31일 아침, 헬기까지 동원한 8천여 명의 병력을 투입해 전쟁을 방불케 하는 '황소 30'이라는 폭력적 진압 작전을 벌여 1천5백여 명의 학생들을 연행하고 1,288명을 구속했다. '건국대 항쟁'은 단일 사건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구속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치밀한 각본에 의해 '건국대 항쟁'을 좌경, 용공으로 매도하면서 '공산혁명분자 건국대 점거난동 사건'으로 꾸며냈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전두환 독재정권에 의해 1천여 명이 넘는 학생운동의 중추가 구속되었지만, 86년 '건국대 항쟁'이 남긴 투쟁 정신과 교훈은 민주화 운동 세력의 각성을 가져왔으며, 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잇고, 87년 6·10 민주항쟁으로 나아가는 가교 역할을 했다. 올해가 바로 '건국대 항쟁' 37주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