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디지털 기술이 모든 것을 바꾸어버리고, 그 결과 모든 도시의 모습이 비슷해지고 있다. 이에 전 세계가 예술과 문화를 통해 도시의 차별성을 만들어내는 전략을 모색 중이다. 이에 지난 3월 21일에 있었던 서울문화재단예술국제포럼의 주제도 "예술하기 좋은 도시를 위한 미래 정책방향"이었다.
영국에서 잘되고 있는 창조경제 아이디어, 실은 우리도 하고 있는데...
기조발제에서 존 뉴비긴(John Newbigin)씨는 기술기반의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를 매개로한 시민참여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존 뉴비긴은 영국 '창조산업'의 정의 및 평가 기준을 만든 사람으로 '창조경제 세계회의' 운영위원이다. 창조경제, 창조산업은 존 뉴비긴이 정의한 것으로, 도시가 가진 고유한 문화 유산이나 콘텐츠를 IT와 결합하여 문화도시로 탈바꿈하게 함으로써 외부에서 방문객과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의 경제와 산업을 말한다.
그는 발제문에서 문화도시가 되려면 규모가 큰 문화중심지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영국 및 다른 나라 사례를 소개했다. 유휴공간 이용, 마을기업, 차없는 거리, 벽화거리, 야외축제, 스토리텔링, 온라인 활용, 쓰레기 문제 해결 등 그가 소개한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예술인들에 의해서 실행되었던 것들이다. 핵심은, 영국에서는 이런 아이디어가 크게 성공을 거두어 마을 살리기를 넘어 창조경제로까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비결은 시민참여라고 한다.
시민 참여, 기업 기부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에 토론자로 나선 김선영 한국문화경제학회 회장이 "문화도시 동력이 지역 주민과 기업의 참여와 기부라지만 한국에서는 별로 없는 사례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질문했다. 그런데 존 뉴비긴씨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정확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시간은 없고 토론자의 발언은 장황한 데다가, 한국 상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개의 명료하지 않은 질문에 한꺼번에 답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만 기조발제와 질의 응답에 대한 일관된 답변을 통해 짐작할 수는 있었다.
▲우선, 기회의 평등이다. 그는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를 주고, 문화예술에 접근하여 일단 "몸담아보게" 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기회 평등을 위해 청년 패스 등의 문화복지정책을 펴고 있지만, 뉴비긴씨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했다.
모두에게 혜택을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보를 디지털로 제공하는 데만 집중하면 일부만 혜택을 보게 된다. (문화도시, 스마트시티를) 타인이 운영하는 걸로 느끼게 하면 안된다. 시민이 모두 참여하게 해야 한다. -- 존 뉴비긴
▲다음은 시민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이다. 뉴비긴씨는 도시의 복잡한 문제들은 거의 모두 시민들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는 도시 유휴공간 활용이나 소외계층 문제에 대하여 예술가를 포함한 시민에게 묻고 그들의 제안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 사례들을 소개했다. 행정당국에 의한 변화가 아니라, 시민들의 재능에 의한 변화가 지속성을 가진다.
도시는 유연하다. (문제에) 대응하여 해결책을 낼 수 있다. 행정이나 복지시스템에 의존하기보다는 시민과 함께하면서 거버넌스로 민간이 주도권을 갖는 게 중요하다. 이를 문화적 맥락에서 독려하면 좋다. 문화를 매개로 많이 참여하게 할 수 있다. -- 존 뉴비긴
▲마지막으로, 문제가 아니라 자산을 바라보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하기보다, 지역이 가지고 있는 것(사람, 문화 등)을 보라는 말이다. 그랬을 때 성공적인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뉴비긴은 창조산업정책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소규모 도시 자치단체들이 해오던 것이라고 했다.
20년 전 런던의 한 작은 도시에서, 학교에 가기 싫었던 형제가 집에 비디오게임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학교에 가기 싫은 다른 학생들도 스튜디오를 차려 코딩을 하기 시작했다. 몇 년 뒤 지역에는 10개 정도의 스튜디오가 생겼다. 게임의 품질은 꽤 좋았지만 유통이 되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전문적인 퍼블리셔기업을 소개해 산업화의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정부부처는 창조산업을 위해 아트센터, 스튜디오 등이 필요하다고 말하기 전에 지역의 자산부터 파악해야 한다. -- 존 뉴비긴
뉴비긴은 지역에서 기회의 평등, 시민 주도권, 가진 것에서 출발, 이 세가지 조건을 충족할 때 문화도시의 동력이 되는 시민의 자발성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정부 주도로 대규모 계획을 세우고 인프라를 건설하는 것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님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문화예술계에서 민관거버넌스 구조가 오히려 약화되는 현상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년도에 서울문화재단 예술청 공동운영단 해체 통보로 민간위원과의 거버넌스가 사라진 것도 아쉽다.
예술가의 노동권과 공간확보의 중요성도 언급
문화도시에서 예술가는 문제를 만들고 도전하고 도발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 뉴비긴은 예술가의 노동권과 공간확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런던에서는 시의회, 예술위원회, 기업이 기금을 조성해 신탁을 만들어 예술인들이 25년 동안 저렴하게 임대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 예술가에게 작업공간은 매우 중요하다. 런던에서 주거지를 만들 때는 핵심노동자를 위한 주거공간부터 확보한다. 보건의료인력, 교육인력 뿐 아니라 예술인도 핵심노동자다. -- 존 뉴비긴
공개토론과 공동기획에 의한 관료주의 극복, 우리도 할 수 있을까?
뉴비긴은 일관되게, 민간을 포함한 공개토론과 공동기획에 의해 관료주의를 극복할 수 있고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창조경제, 창조산업이 가능한 문화도시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술하기 좋은 도시'를 목표로 마련된 이번 국제포럼에서 뉴비긴이 강조한 '거버넌스'에 대하여 서울문화재단의 반응이 궁금하다. 예술인과의 라운드테이블 등을 운영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까? 거버넌스가 무슨 뜻인지 헛갈리는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