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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의 점은 철학이 되었고, 철학은 뇌물이 되었다: 김건희 뇌물 스캔들이 던지는 예술작품의 본질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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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우환의 ‘점’을 욕망의 화폐로 만들었나
고고한 ‘점’의 수난…거장의 철학, 욕망의 도구가 되다
길 잃은 한국 미술 시장의 자화상

 

뉴스아트 편집부 |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의 이름이 법조계와 정치권을 뒤흔든 스캔들의 중심에 섰다. 그의 1980년 작 '점으로부터(From Point)'가 고위 공직을 향한 뇌물로 사용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점 하나에 우주를 담아내려 했던 작가의 고독한 사유는 이제 권력에 눈이 먼 악인들에 의해 세속적인 욕망의 거래 증표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미술작품이 연루된 추문을 넘어, 예술의 가치가 자본의 논리 앞에 어떻게 왜곡되고 소멸하는지를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만남'의 미학: 이우환과 모노하(物派)의 철학

 

 

이우환 화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린 '모노하(物派)'를 먼저 언급해야 한다. 1960년대 후반 일본에서 등장한 모노하는 '만드는 행위'보다 돌, 나무, 철판, 종이 등 사물(物)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며 '관계'에 주목한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이다. 서구 미니멀리즘이 산업 재료를 통해 인위성을 극대화했다면, 모노하는 자연과 사물의 고유한 성질과 존재감을 드러내며 인간과 사물, 사물과 공간의 '만남'을 탐구했다. 이우환은 이 운동의 핵심 이론가이자 가장 중요한 작가였다.

 

그의 회화는 이러한 모노하의 철학적 사유가 캔버스라는 평면 위에서 구현된 것이다. 대표 연작인 '점으로부터(From Point)''선으로부터(From Line)'는 그의 예술 세계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는 캔버스 위에 광물성 안료를 묻힌 붓으로 점을 찍거나 선을 긋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 행위는 단순히 형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신체의 호흡, 정신의 집중이 응축된 수행(修行)에 가깝다.

 

 

캔버스에 찍힌 첫 점은 무한한 공간에 던져진 하나의 존재이며, 이 점들이 모여 만들어진 리듬과 질서는 생성과 소멸의 우주적 질서를 암시한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그려지지 않은' 부분, 즉 여백(餘白)이다. 이 여백은 단순히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점과 선을 감싸 안고 그 존재를 더욱 부각하며 무한한 공명을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관객은 이 여백과의 '만남'을 통해 작품과 소통하고 사유를 확장하게 된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서구의 개념미술과는 다른, 동양적 세계관과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기에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예술의 그림자: 아트 워싱(Art-Washing)과 가치의 전도

 

이토록 심오한 정신세계의 산물이 어떻게 부정한 거래의 매개체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미술품이 뇌물이나 비자금 세탁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이른바 '아트 워싱(Art-Washing)'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구조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 가치 평가의 불투명성이다. 미술품의 가격은 작가의 명성, 작품의 희소성, 미술사적 가치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되며, 객관적인 기준이 모호하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작품 역시 불과 1년여 만에 가격이 수 배로 뛰었다는 점은 이러한 시장의 특성을 악용할 여지가 컸음을 시사한다.

 

둘째, 거래의 폐쇄성과 익명성이다. 갤러리나 경매를 통한 공개적인 거래 외에 개인 간의 사적인 거래가 활발하며, 현금 거래도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이는 자금의 출처와 흐름을 감추기 용이하게 만들어 '검은돈'이 유입될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예술이라는 고상한 명분이다. 예술품은 뇌물로 주고받기에 '품위 있는' 포장재가 된다. 뇌물 공여자는 예술 애호가라는 명예를 얻고, 수수자는 문화적 취향을 과시하며 부정한 대가성을 희석할 수 있다. 철학적 사유의 결정체였던 이우환의 작품은 이 과정에서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고, 단지 가격표가 붙은 욕망의 기호로 전락하고 만다.

 

본질을 향한 질문을 되찾아야 할 때

 

이번 스캔들은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 던진다. 한 작가가 평생을 바쳐 이룩한 예술적 성취와 철학이 한순간에 부패한 권력의 액세서리로 전락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투명한 미술품 유통 구조를 확립하고, 비정상적인 거래에 대한 제도적 감시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시급한 과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술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성숙한 태도일 것이다. 작품의 가격이 아닌 가치를 먼저 묻고, 예술이 주는 정신적 울림에 귀 기울이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는 한, 제2, 제3의 '김상민 스캔들'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이우환의 점은 우리에게 존재와 관계에 대해 물었다. 이제 그 점은 우리 사회를 향해 묻고 있다. 예술의 가치를 지켜낼 의지가 있는가. 자본의 논리 앞에서 예술의 존엄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