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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해인가 오해인가, 빛고을 광주의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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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억 작품 철거 경험 후 비슷한 상황 재연,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관건

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2월 28일 광주 전일빌딩에서 열린 <검은비> 관련 시민토론회는, 훌륭한 발제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서로의 입장만 확인하고 다소 소란스럽게 끝났다. 토론에서는,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차이가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되는 발언도 나왔다.

 

 

검은비 존치를 원하는 쪽에서는 작품의 가치를 강조했다

 

발제를 맡은 주홍 작가는 “예술의 도시 광주의 대처방식은 달라야 한다”고 했다. 5년이나 상무관에서 추모비 역할을 해 온 검은비의 역사적 예술적 가치와, 그 작품을 통해 개인적으로 치유된 경험을 이야기했다. 다른 곳도 아닌 광주에서 이런 예술품에 대하여 ‘법대로’ 하자는 것은 저항하지 말자고 하는 말이기에 5·18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요지의 발언도 하였다.

 

그는 일정 기간 검은비를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직접 판단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면서, 도청복원은 (아시아문화전당 건립을 위해 옛도청을 훼손하는 등) 그동안의 ‘폐기’ 결과(이니 이번에는 폐기부터 해서는 안된다)라는 발언으로 발제를 마쳤다.

 

검은비 철거를 원하는 쪽은 민주적 절차와 과정의 공정성을 강조했다

 

옛전남도청복원법시도민대책위원회(이하 복원위) 홍성칠 집행위원장은 예술적 가치와 약속의 가치 가운데 무엇을 우선순위로 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이를 위해 객관적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고 하였다. 작가의 주장과 달리 상무관은 방치되지 않았으며, 5·18 최후 항쟁지의 하나로 옛 도청을 개방하면서 함께 개방돼 95년부터 추모공간으로 쓰였다고 하였다.

 

그는 이러한 ‘공적 장소’에 여러 유형의 작품이 전시되었다가 약속대로 철거했음에도 검은비만 이례적으로 남아 있어 문제가 된 것이라면서, 영구존치를 주장하기 전에 전시를 주관했던 당사자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유족들의 양해를 구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아쉬움을 표하면서 발제를 마쳤다.

 

팽팽하게 대립하는 중에도 차분하고 절제된 상태에서 시간 내에 발제가 마무리되었다. 특히 홍성칠 집행위원장은 “검은비의 예술적 미학적 가치에 흠이 된다면 죄송하다”라고 하면서 그럴 의도는 없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상대방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광주를 사랑하는 사람들 간에 벌어진 선의의 충돌

 

이어지는 토론에서 조경옥 작가는, “작가와 작품의 가치는 이행각서보다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518재단에서 조진태 상임이사를 대신하여 토론자로 나선 이기봉 사무처장은 재단에서 검은비를 표지사진으로 쓴 적이 있다면서, 지금의 대립을 ‘선의의 충돌’로 규정하였다. 2014년 이래 오랜 갈등을 거쳐 역사적 장소로서의 상징성을 살리기 위해, 전시관 보다는 원형복원을 선택한 판단을 존중해달라고 하면서 작가가 창의적인 방법을 제시할 것을 요청했다.

 

이어 하성흡 작가는 검은비가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문화 광주이기에 가능했다면서 질서와 법도 그것을 거스르는 새로운 의견을 존중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니 기술적 행정적 해결 방법을 찾아가자고 하였다.

 

80억원 들인 황지우 작품이 철거되던 해에 검은비는 전시 연장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허달용 작가는 전남도청 내에 설치된 당시 황지우 예술감독의 상설전시도 2020년에 철거되었음을 예로 들면서, 검은비도 철거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하였다.

 

 

허달용 작가가 언급한 작품은 황지우 시인이 2013년 기획한 <열흘간의 나비떼>라는 작품이다. 이 전시는 옛 전라남도 경찰국 민원실에서 끝나는데, 여기에는 1980년 5월 22일부터 26일까지의 해방 광주 모습을 그려낸 3층 높이의 작품 '환희:22일-26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콘텐츠 구축비용만 80억 원이 들어간 이 작품은, 2014년부터 제기된 도청복원요구로 인해 광주민주화운동의 발단과 배경 부분만 구축된 채 2016년 1월 중단되었다가 2017년에야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해 5월부터 2020년까지 간헐적, 한시적, 비공식적으로 공개되었음에도 1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하지만 역사적 장소에 사실적 기록물이 아닌 예술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도청복원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2020년에 철거되었다. 옛도청 일부가 작품 설치과정에서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리는 황지우의 이 작품을 놓고도, 도청을 원래대로 복원해 사실 중심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과 한발 앞선 전시로 마치 당시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예술작품을 보여주자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몇 년 동안 갑론을박이 오고 간 바 있다. 당시의 경험에서 광주는 무엇을 배웠을까?

 

동상이몽을 꾸기에 충분한 시간, 2년 뒤에 열린 토론회

 

2020년 황지우 작품을 철거하던 바로 그 해에, 5·18행사위원회는 검은비의 전시 연장 및 안내판 설치를 요청했다. 작가는 2년이나 한 자리에 있는 자신의 작품을 시민에게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광주시는 놓을 곳이 없다고 거절했다.

 

아시아문화전당과 광주시는 각각 2020년 6월과 9월에 당해 12월까지 계약대로 작품을 철거하라고 공식 요청했고, 이에 5월 3단체는 검은비 존치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가 당일에 실무자 착오였다면서 부인하고 검은비 철거로 입장을 바꾸었다. 이후 양측 모두 공식적으로는 어떤 소통도 없이 ‘동상이몽’을 꾸기에 충분한, 2년 반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2023년에야 비로소 이 문제에 대하여 토론회가 열린 것이다.

 

술자리 사담(거짓말?)으로 더욱 무너진 신뢰, 커진 의혹

 

이날 준비된 토론에서 옥의 티는 허달용 작가의 발언이었다. 허작가는 정영창 작가와 ‘막걸리 마시면서’ 한 이야기라고 하면서, 정작가가 전시 연장을 요구했고 검은비를 판매하려고 했으나 ‘안 팔려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했다. 페이스북 생중계로 이를 지켜보던 정영창 작가는 댓글을 통해 ‘거짓말’이라고 하였다.

 

 

이후 허작가는 정작가의 작품은 ‘(도면만 있으면) 아무나 만들 수 있다 또 만들면 된다’, ‘쌀을 하나하나 물들여서 붙인 것이 아니라 쌀을 붙이고 검은 물감을 칠한 거다’, ‘그걸 왜 굳이 독일에서 만들어 오냐’, ‘나라면 독일에서 안 만든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이에 독일 체류 중인 정영창 작가는 토론이 끝난 뒤 뉴스아트와의 통화에서, “사실이 아닌 것을 어떻게 저렇게 사실처럼 말을 하는지 정말 놀랍습니다”라고 하면서, “검은비 철거 문제에 광주 작가들의 이해관계가 개입된 것 같다"라고 하였다. 그는 또한 “상무관의 검은비는 그들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광주의 오월에 그것도 상무관에 외지의 작가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허작가가 공개한 술자리 사담이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입증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말이 이전부터 쌓여온 ‘동상이몽’에 또 다른 불신과 추론을 얹은 것은 분명하다.

 

<검은비> 존치는 특혜이다 VS. <검은비> 철거는 음모이다

 

허달용 작가의 발언으로 인해 검은비 문제는 돈과 기득권의 문제로 비추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문제의 본질은, 우리 사회가 절차와 과정의 중요성을 얼마나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독재의 시대, 부정부패의 시대에는 과정과 절차가 투명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존중받을 수 없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시민의 한 사람으로 참석한 아시아문화전당의 한 관계자는 과정상의 공정이 중요하다면서, "시민과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야지 한 작품을 고집하는 건 특혜"라고 하였다. 민중미술협회의 한 회원도 작품성을 존중하지만 악법도 법이니 원칙과 절차 존중해 달라고 하였다.

 

 

홍성칠 위원장도 상무관을 포함한 도청복원 계획은 3년 동안 공청회외 시민 서명 등을 거쳐 확정된 것이지만 추모의 내용과 형식은 아직 논의과정에 있으니 이후 공적 기관이 절차를 밟아갈 일이라고 하였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약속대로 검은비를 철거하고 이후의 콘텐츠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검은비의 존치를 원하는 사람들이 이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작품 철거과정에서 작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이외에 ‘광주’에 대한 불신도 있다. 광주의 작가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외지 작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후의 절차가 공정하게 민주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광주의 과정과 절차가 모두의 존중을 받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일까?

 

검은비 사태는 과정과 절차의 공정성 확보 과정이라야

 

검은비 사태는 상무관 복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이며, 광주 문화예술계에서 과정과 절차의 공정성이 확보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아시아문화전당이 광주지역과 충분한 논의 없이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었고, 이로 인해 도청 원형이 파괴되어 5·18 최후 격전지로서의 역사성이 지워졌다는 실망감으로 도청복원요구가 거세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황지우의 작품이 철거되었다. 그 뒤에는 또 검은비가 논쟁거리가 되었다. 검은비가 철거되어도 유사한 문제가 계속될 수 있다. 토론회에서 이미 상무관 복원을 놓고 어느 정도로 원형복원을 할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의 차이가 드러났다.

 

5월여성역사해설자라고 밝힌 참석자는, “작가의 노력이나 작품 가치를 폄훼할 생각은 없지만, 기념물이나 추상물이 원형보다 앞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검은비 앞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형복원이 필요하다.”라고 원형복원을 원하는 이유를 밝혔다.

 

광주항쟁 당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는, “피와 눈물 한이 서린 장소를 왜 자기 집으로 만들려고 하냐 언제 법이 있어 우리 새끼들 죽였냐.... (시한 정해놓고) 옮겨라. 그 시기 넘기면 (검은비는) 우리가 뜯어낼 거다...”라고 하면서 5·18 당시의 모습 그대로 관을 재현하는 원형복원을 주장했다.

 

또 다른 시민은, “검은비는 특혜에 가깝에 존치되었다.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시하려면 얼마나 까다롭고 힘든데”라고 하였다. 그는 모든 작가에게 열린 공간이길 바란다고 하였다.

 

5·18 항쟁의 거대 서사가 갖고 있는 상상력... 양쪽이 격돌보다는 논의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논의는 해야 한다.   -  2016년 9월 황지우 시인, <열흘간의 나비떼> 작가

 

2020년 이전에 했어야 할 토론,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홍성칠위원장은 광주시와 5·18행사위원회가 이 사태를 초래하였다고 했다. 그는 검은비와 관련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말을 이전부터 계속해왔다고 하면서, 이 토론은 2020년 이전에 했어야 할 토론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논의는 물론이고 법과 절차도 시기적절하게 집행될 때 수월하다. 시기를 놓친 검은비 사태는 불신을 키워가면서 임계점을 향해 가고 있다. 파국을 피하려면, 충분한 토론을 기반으로 한 과정과 절차의 공정성이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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