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태 작가 | 둥근 보름달이 떠 있는 푸르른 하늘. 무리를 향하여 내려오는 까마귀 한 마리, 맨 오른쪽 까마귀가 날아오며 무리를 향해 입을 벌려 무언가를 말하는 듯하다. 화면 중앙에 앉아 있는 녀석은, 몸은 무리 쪽으로 향하면서 고개는 날아오는 녀석 쪽으로 돌려 뭐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맨 왼쪽 녀석도 아래쪽을 보면서 마치 오라고 부르듯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까마귀들은 실제로 이런 상태를 연출했을까? 마침 이런 광경을 본 이중섭이 이를 그린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이런 장면을 연출한 것은 화가 본인이다. 이런 장면은 많은 궁리를 거치지 않고는 만들 수 없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런 연출을 했을까? 이 그림은 1954년 6월 대한미술협회 연례전에 출품되었고 이를 본 미국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 함께 출품한 소를 그린 그림은 이승만 대통령이 구입해 미국을 방문하면서 들고 가 선물했다고 할 정도이다. 유치환은 이중섭 사후 11년 만에 이 그림을 소재로 마지막 발표작이 된 시 ‘괴변-이중섭 화(畵) 달과 까마귀’를 썼다. 우리나라 최초 미술평론가 이구열은, “세련되고 비범한 조형감각을 드러낸다”고 극찬하
최석태 작가 | 그림에 대한 묘사부터 시작하자. 중절모라고 부르는 모자를 쓴 인물은 한 손에는 흔히 팔레트라고 부르는 물감 섞는 판을 여러 자루의 붓과 함께 거머쥐고, 다른 한 손에는 붓을 쥐고 있다. 그 뒤로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입고 있는 두루마기가 흰 색이 아니라 푸른 빛이라는 점이 남다르다. 실내에 앉은 자세로 책을 읽는 형을 우리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 남다른 면모를 보여준 화가답다고 할까? (편집자주. 이쾌대는 친형님 이여성이 개다리소반에 책을 펼치고 읽는 모습을 유화로 그렸는데, 일반적인 유화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배경의 풍경을 자세히 보자. 흰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두르고 무언가를 머리에 인 여인 셋이 그림을 보는 사람 쪽으로, 못 사이로 난 길을 걸어오고 있다. 야트막한 산등성이에는 지붕이 동글해 보이는 초가들과 밭이 보인다. 얼굴 중간쯤 뒤로 멀리 펼쳐진 풍경에 보이는 하늘과 산이 맞닿은 부분도 떠 있는 구름과 마찬가지로 희다. 어떤, 희망을 보여주는 것일까? 이번에는 이 그림의 주인공인 인물을 살펴보자. 얼굴 표정이 좀 불안하지 않은가? 그림 그리기를 마치면 대부분 그린 사람의 이름과 그림 그린 때를 적는다. 이 그림에는 이런 기
최석태 작가 | 앞에서 <조난>이 1948년 6월에 벌어진 놀랍고 어처구니 없는 일을 계기로 그려진 것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그린 것이라고 하였다. 이번에 살펴볼 그림도 대작이다. 이쾌대의 대작 그림 4점이 이른바 해방공간에 그려진 것이라는 점은 이 그림을 논하는 사람들 모두가 동의하는 바다. 그 가운데 이번에 살펴볼 그림을 그린 시기는 광복 직전이라고 여겨진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격동하게 하여 그런 대작을 만들게 한 것일까? 먼저 볼 것은 <해방고지>의 전경이다. 그림의 아래 부분에는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림의 아래쪽 가운데에 누운 여자가 보인다.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다. 그 옆에는 주저앉은 남자가 쓰러진 남자를 보살펴주면서 고개는 여자 쪽을 향하고 있다. 이 전경에 그려진 인물은 모두 몇 명인가? 자세히 보면 세 사람 말고도 한 명이 더 있다. 쓰러져 누운 여자의 뒤에 나무 덤불이 있고 그 사이로 남자의 머리 뒷부분과 왼손이 보인다. 이 남자의 존재가 다음에 이어지는 이 그림의 제목과 더불어 이 그림이 그려진 특별한 시기를 확정 짓는 열쇠들 중 하나다. 눈길을 그림의 한 가운데로 옮겨보자. 왼쪽부터 뛰어드
최석태 작가 | 1948년 11월, 이쾌대는 조선미술문화협회의 제3회 정기전에 야심적인 크기의 그림을 발표한다. 150호 크기는 높이가 170센티를 좀 넘고, 가로는 2미터가 넘는 크기다. 그림의 제목은 <조난(遭難)>이다. 이 그림이 그려지고, 발표된 때는 1945년 8월에 광복이 된 때로부터 3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다. 잘 알다시피 남과 북에는 따로 각기의 정부가 세워진 때다. 그림을 본 사람들은 다투어 한마디씩 했다. 그만큼 문제작이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담긴 내용과 화법이 남달랐다. 화가 박고석은 “문제작”이라 했고, 해방공간에서 이쾌대의 처신을 격렬히 비난해 오던 비평가 박문원은 “독자적인 경지를 이루고 있으며 또 벽화나 대작을 꾸미기에 우선 적당한 하나의 양식을 창조한 사람”, “인민미술에 대한 열정은 (그가 속한 조선미술문화협회 회원 중에서) 오직 이쾌대씨에게서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리얼리즘이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화가 겸 미술문필가 김용준은 “그 기법이 현대적인 사실이 아니요, 16, 7세기적인 사실의 인상을 주는 위험성이 있었다.”고 했고, 문학평론가 김동석은 이쾌대의 <조난> 이전에 발
최석태 작가 |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이 문장을 읽으면 어떤 그림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그대가 답을 말하기 전에 그림 한 장을 보여드립니다. 이쾌대의 <조난>이라는 그림입니다. 2미터가 넘고 높이가 180센티미터 가까우니 제 키보다 10여 센티미터나 긴 그림입니다. 크다는 점과 아울러 등장인물이 많으며 무엇보다 아주 잘 그려진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보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림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훓어가는 방식을 잠시 접어야 합니다. 아마 이런 말이 없더라도 여러분의 눈은 그림의 오른쪽에 큰 비중으로 그려진 어떤 폭발로 갈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앞에 펼쳐지는 여러 무리의 인간군상으로 눈길을 옮기게 될 것입니다. 무리의 오른쪽에는 서로 싸우는 사람들, 비탄에 빠진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왼쪽의 무리는 그림 왼쪽 바깥에 있을 어딘가로 향해 가는 듯합니다. 여자와 아이들 무리가 그것입니다. 아이의 손에 무엇이 들려있나요? 푸른 나뭇가지입니다. 다툼과 폭력, 혼란을 넘어서 화해와 보살핌으로 가야 한다고 하는 듯 하지 않습니까?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