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오 작가 | 동쪽에 있는 신의 땅, 동검은이오름. 원형분화구와 말굽형분화구가 모두 있는 특이한 오름으로, 정상에서 보이는 4개의 봉우리 외에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는 귀여운 알오름이 여러 개. 너른 들판엔 황소울음이 들리고 저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 섭지코지도 보인다. 함부로 오솔길로 들어서지 마라 길 잃는다.
김수오 작가 | 빛알갱이들이 운무를 뚫고 백약이 오름에 오른다. 백약이 오름은 온갖 약초가 피어나는 곳. 찔레나무 이뇨제, 오이풀 지혈제, 층층이꽃 감기약 복통에는 방아풀, 무릎 아프면 쇠무릎, 열 내릴 때 하눌타리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약은, 백약이 오름의 아름다움. 길 끝에 탁 트인 전경과 멀리 보이는 어머니산 한라산.
나무컬럼니스트 이동고 | 음식의 간이 맞지 않아 매우 짜거나 쓴맛이 나면 흔히 ‘소태맛’이라고 한다. 쓴맛은 본능적으로 기피하게 되는 맛이라 안전을 위해서도 사용한다. 유아들이 삼키기 쉬운 크기가 작은 장난감이나 마시면 위험한 부동액이나 농약 등에는 강한 쓴맛을 느끼게 하는 비트렉스(Bitrex)라는 물질이 첨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보다 이 쓴맛에 대해 거부반응이 커서 어른보다 더 고통스럽게 느낀다. 아이들이 알칼로이드를 함유한 채소를 싫어하는 이유가 다 있다. 쓴맛 수용체가 어른보다 7배 정도 더 많아 알칼로이드 쓴맛이 약해도 아이들에게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쓴 약을 먹일 때는 한판 전쟁을 치르고, 사탕은 보상이다. 소태나무 껍질은 아주 쓴맛이 강하다. 소태나무는 한자로 고수(苦樹), 고목(苦木) 등이다. 그 맛을 본 사람은 드물겠지만, 소의 태(胎)가 쓴맛이 강하다는 데에서 소태나무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소의 태반이나 탯줄은 그저 물컹하고 질기기만 할 뿐 별다른 맛이 나지 않는다. 혹 쓸개라면 모를까. 실제로 중국의 소태나무 별칭 가운데 하나가 웅담수(熊膽樹)다. 예전에는 따로 간식을 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봄이 아니래도 장터에 가면 씨앗 봉지를 펼쳐놓고 열심히 설명하는 씨앗 장수를 만난다. 1990년에 전북순창장에서 만난 씨앗 장수 할매는 하얀주머니를 만들어 그 안에 씨앗을 담아 팔면서 어떤 씨가 어느 봉지에 담겨 있는지 훤히 꿰고 있었다. “할머니 머리가 좋으시네요” 인사를 하면 장사하는 사람은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며, 씨앗 봉지 같은 미소를 지었다. “금매 아욱씨 100원어치만 주랑께 왜 안판다고 그러요. 100원은 돈이 아닌감네이!” 백원어치는 안판다는 할매와 백원어치만 팔라는 할매가 한참을 실갱이 하면서 찾아낸 합의점이 500원어치다. 신문지에 500원어치 아욱씨앗을 싸주자 씨앗을 받아든 안씨할매가 구시렁구시렁 볼멘소리를 하지만 못들은 척 고개를 돌려 돈을 셈하고 있다. 이들을 한참 지켜보면 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인생을 순하게 살아내는 모습이 참으로 숭고해 보인다. 한치 양보도 없을만큼 팽팽하더니 500원치 아욱씨를 통크게 산 할매가 보자기 속에 씨앗을 넣더니 머리에 이고 총총히 사라진다. 이렇듯 장터에 가면 살아있는 날것 그대로의 삶을 만난다. 장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기 전에 정(情)을 나누는 고향이 아닐까 싶다.
김수오 작가 | 여러 개의 분화구로 이루어진 용눈이 오름, 제주 동쪽에서 가장높은 오름이다. 사진가 김영갑을 사로잡은 흘러내리는 곡선미. 그는 여기서 평화로움과 이상세계를 봤다고 한다.
김수오 작가 | 제주 동쪽 바다를 품고 봄에는 철쭉, 가을엔 억새로 꾸며져... 아름답기로도, 높이로도 손꼽히는 다랑쉬 오름. 그 옆에 사이좋게 붙어 있는 자그마한 오름, 아끈다랑쉬. 석양에 4·3의 원혼들을 부르는 듯, 다랑쉬굴 가는 길가 붉은 만장만 깃발처럼 휘날린다. 작가의 말 : 4·3때 해안마을 사람들이 다랑쉬굴 속에 피신해 있다가 토벌대에게 발각되어 굴속에서 모두 질식사하였다. 40여년의 세월이 지난 1992년, 당시 같이 피신했다 살아난 마을분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국은 이 때 발견된 유골을 모두 화장해 유족들이 배를 타고 나가 직접 바다에 뿌리도록 압박했다. 제주 4·3평화공원에는 당시 굴속에서 발견된 엄마와 아이들 등 십여구의 백골이 '재현'되어 있다. 나중에 유족들은, 뼈조각 하나라도 남겨두었으면 무덤이라도 만들어주었을텐데 수십 년 굴속에 갇혀있다가 햇볕을 보자마자 다시 수장되었다고 안타까와했다. 마지막 사진은, 올해 4월 다랑쉬굴 30주기를 맞아 원혼을 위무하기 위해 위령제와 위령돌탑을 쌓는 행사를 했고 이를 위해 다랑쉬굴 가는길에 걸린 만장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소프라노 이윤순 기고 | [편집자주] 이 글은 이탈리아 베르가모 국립음대 외래교수로 재직 중인 소프라노 이윤순씨가 현지에서 보내온 소식이다. 16년 전 공연 도중 뛰쳐나갔던 최고의 테너 알라냐가 돌아와 오른 첫 무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2022년 10월15일 토요일, 이탈리아 밀라노 스칼라 극장은 2021/2022년 시즌 후반기 프로그램 움베르토 죠르다노의 오페라 <페도라> 첫 공연을 올렸다. 이번 공연은 16년 만에 스칼라 무대로 돌아온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되었는데, 알라냐가 출연하는 페도라 개막일 표는 일찌감치 매진되었고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낮 1시부터 줄을 서서 현장 판매 예약을 기다렸다. 코로나 이후 스칼라 극장은 매진된 공연의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당일 오후 1시부터 선착순 50명에게만 이름을 적고 번호를 매겨 갈레리아라고 불리는 극장 맨 위층 관람석 표를 구입할 기회를 주고 5시 반에 다시 모이게 한 후 번호순으로 10명씩 끊어 매표소로 들여보내 현장 판매한다. 줄서기부터 시작해서 저녁 8시 공연이 시작되는 시간까지 몇 시간을 기다리며 왔다 갔다 해야 하지만 성악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오페라 애
김수오 작가 | 예상치 못한 비극에 힘든 주말이었습니다. 8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우리는, 피우지도 못하고 져버린 젊음을 또 이렇게나 많이 보태고 말았습니다. 제주 일만 팔천여 신 가운데 동쪽 신들의 본향인 송당 당오름에서, 젊은 영혼들의 명복을 빕니다.
김수오 작가 |
김수오 작가 | 굼부리 안 삼나무숲 품은 아부오름 (편집자주) 굼부리는 구멍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분화구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