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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도서전의 배제된 얼굴, 오정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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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지난 2021년, 오정희 작가는 <중국인거리>라는 자신의 작품을 놓고 KBS와 인터뷰를 했다. 여기에서 그는, '문학이나 예술이 주는 가장 큰 미덕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라는 말을 한다. 

 

그는 인천 중국인 거리의 비극적 환경에서 성장한 상처투성이 주인공을 꼭 안아주면서,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봐. 네 마음대로 가 봐. 많이 슬퍼하고 많이 아파하고 그래도 괜찮아.' 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예술의 미덕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라 한 오정희 작가

 

그런데 그가 미덕으로 꼽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인해 고통받은 동료 예술인들에게는 작동하지 않는다. 존경받던 문학계 원로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얼굴은 우리 예술계와 예술이 거둔 성과조차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만든다.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되어야 할까?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자 한국인 최초로 해외문학상을 받은 오정희 작가는 탁월한 문장력으로 특히 여성작가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오작가는 36년만의 장편 소설로 주목받던 연재소설 '목련꽃 피는 날'을 단 2회만에 중단한 2006년 이후로는 이렇다 할 작품 발표 없이 각종 '위원'으로만 활동한다. 

 

블랙리스트 사건의 핵심인물로 문학계에 큰 충격 남겨

 

그러다가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및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있으면서 블랙리스트 사건의 핵심인물로 활약한다. 구체적으로는 ‘아르코문학창작기금사업, 우수문예발간지사업, 주목할만한작가사업 등에서 사회참여적 예술인으로 지목된 블랙리스트예술인들을 사찰, 검열, 배제'하는데 앞장선 것으로 확인됐다. 

 

수많은 문인과 대중의 존경을 받았던 작가가 블랙리스트 사건이라는 국가범죄에 앞장섰다는것은 문학계에 큰 충격이자 상처이다. 2018년에는 오정희 씨의 <한국문학관> 초대 이사 취임을 동료 문화예술인들이 나서서 반대하여 결국 무산시킬 정도로 문학계에 남긴 충격이 컸다. 하지만 오정희 작가는 사과하지 않았다.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하여 함구한 채 '인류애' 과시

 

오정희 작가는 이후 어떤 인터뷰에서도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언론이 질문하지 않은 것인지, 질문하지 않기로 하고 인터뷰를 한 것인지는 모른다. 그렇게 작가의 작품과 대외 활동은 철저히 분리되었다. 그간 오정희 작가는 따뜻하고 균형잡힌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부드럽고 소박하며 인류애 가득한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런 오작가가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로 위촉되면서 블랙리스트 사건의 핵심인물임이 다시 알려지자 당혹해하고 실망하는 사람이 많다. 인간의 본성과 본질을 추구하며 시대의 창이자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하는 문학계 원로가,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 전직 문체부 장차관 4명 등이 구속된 명백한 범죄행위의 핵심실행자였다.

 

후배들은 범죄행위를 멈출 때까지 질문을 멈출 생각이 없다

 

아름다운 작품으로 세상을 밝혔던 예술계 원로들이 노년에 명예와 품격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은 문화예술계를 위협한다. 슬그머니 복귀를 시도한 고은에 대한 날선 비판과 분노가 가시기도 전에, 오정희 작가로 인해 블랙리스트 사건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그 뒤를 따라가던 젊은 예술인들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지금 이 시대의 문학은, 책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동료와 후배들의 창작과 출판을 검열한 소설가가 당당하게 ‘얼굴’이 된 서울국제도서전이 어떻게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책 축제'가 될 수 있을까" 묻고 있다. 이들은 표절, 성폭력, 검열 등 각종 범죄의 주모자와 협력자를 멈춰세우기 전에는 멈출 생각이 없다.

 

18일 주제 강연에서 오정희 작가는 배제된 상태

 

오는 18일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도서전의 얼굴로 위촉된 6명이 주제 강연 ‘비인간으로서의 문학’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오정희 작가를 포함한 6명은 인간과 비인간이 관계 맺는 낯선 이야기의 세계에 대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었는데, 현재 서울국제도서전 프로그램일정 및 예약페이지에서는 오정희 작가만 삭제된 상태이다. 

 

한편 서울국제도서전 행사 가운데 하나를 진행하기로 했던 가수 이랑이 보이콧을 선언했고, 황정은 소설가, 오은 시인, 홍은전 작가도 불참을 통보했다. 도서전에 참가하여 이 문제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작가들도 많다.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른 <저주토끼>의 정보라 작가는 문체부, 대한출협, 서울국제도서전 조직위의 사과와 재발방지책을 요구했다. 도서전의 얼굴 가운데 한 명인 천선란 작가와 김초엽 작가는 오정희 해촉 기자회견을 한 작가들에 대한 무력 행사 및 블랙리스트 문제와 관련해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