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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휴먼, 보이지 않는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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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트 김시우 기자 |

 

 

지난 9월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AI 디지털 기반의 미래 미디어 계획」 발표'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독립PD협회, 웹툰작가노조, 시나리오작가조합/협회, 창작자연대 등 문화예술계 및 시민단체 9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상상력 과잉, 혹은 상상력 빈곤?!'이라는 반박 보도자료를 통해 저작권을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정책을 발표한 과기정통부를 비판했다. 

 

과기정통부의 보도자료는 생성형 AI를 통한 스토리 및 초벌원고 등 미디어 콘텐츠 창작, 디지털 휴먼 제작, 버추얼 프로덕션 인프라구축, 불법유통 방지 및 마케팅과 유통 계획은 물론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이런 콘텐츠를 시험적으로 제작 수출하는 것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를 실행하는 '추진체계' 항목에서는 민간과 정부가 협의체를 구성하고 이를 총괄할 기관을 구성한다는 계획과 일정만 나온 채 용두사미로 끝난다. 과기정통부가 '신'도 아닌데 '말씀' 즉, 지시만 하면 이 모든 계획이 실현될 것처럼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다.

 

게다가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데이터 확보가 필수적인데도 불구, 과기정통부는 데이터의 정당하고 공정한 확보 방책은 제시하지도 않고 있다. 수많은 콘텐츠의 공급자인 원저작자의 권리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다. 콘텐츠 계획을 수립하면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당사자들과의 소통이나 입장 청취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콘텐츠 공급자들이 모여 반박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성명문은 "가부처가 품은 원대한 꿈은 응원"하지만, 과기정통부의 "상상력이 과잉한 것인지, 상상력이 빈곤한 것인지 헷갈린다."고 하였다. 

 

출판계, 웹툰계, 영상계 할 것 없이 기존 출판사, 웹툰 플랫폼, 영상제작사와 저작자 사이에 체결된 계약은 저작자의 저작물을 업자가 그대로 혹은 저작 의도를 유지한 채 변형을 가해 배포할 권리를 가진다.

 

'동일성유지권'이라는 저작인격권을 지키기 위한 계약이다. 여기에는 ‘AI 학습용’에 대한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과기정통부의 발표는, 저작자의 의도에 대한 일말의 고려 없이 무작위로 여기저기서 저작물들을 끌어와 토막 낸 후 "프랑켄슈타인 같은 조합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성명서는 "인간의 저작물이 그런 무작위 조합물의 재료로 사용되는 것은 명백한 저작인격권의 훼손"임을 지적했다.

 

과기정통부의 이런 행태는 지난 9월 25일에 밝혀진 카카오의 저작권갑질 문제와 맥을 같이 한다.  네이버와 함께 국내 웹소설 시장을 양분하는 카카오는 공모전 당선작을 영화화하는 등 과정에서 작가들에게 독점 제작권을 요구하다 처음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 이들은 당선 작의 2차 저작물에 대한 독점권은 물론 우선협상권도 계약에 포함하여 제 3자에게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수 없게 하였다. 

 

성명서는 "생성형 AI 사업을 추진할 때는 어떻게 하면 쓸모있는 AI가 탄생할까와 더불어 기존 창작자들에게 어떤 피해가 돌아가는지까지 살펴야 마땅하다. 그것이 국가기관의 균형감각이자 책무 아닌가."라고 물으면서 다음 사항을 요구한다.

 

▲과기정통부는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것.

▲이를 위해 각 창작 분야의 창작자 단체와의 대화에 즉각 나설 것.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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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정통부,

상상력 과잉인가, 상상력 빈곤인가.

 

과기정통부는 9월 12일 ‘AI와 디지털 기반의 미래 미디어 계획’을 발표했다. ‘디지털 미디어·콘텐츠 산업혁신 및 글로벌 전략’의 후속 조치로서, 요는 생성형 AI를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 접목시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국가부처가 품은 원대한 꿈은 응원한다. 그런데, 꿈이 꿈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계획이 필요하고 계획은 철저히 현실에 발을 디뎌야만 한다. 하지만, 과기정통부의 보도자료에 명시된 계획을 보면 해당 부처의 상상력이 과잉한 것인지, 상상력이 빈곤한 것인지 헷갈린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생성형 AI가 위력을 발휘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방대한 양의 학습데이터다. 말 그대로 다다익선. ‘글로벌 전략’이라고 하니 적당히 학습시킬 요량은 분명 아니다.

 

그런데 발표된 계획 어디에도 생성형 AI가 학습할 데이터들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은 일언반구 없다. 출판계, 웹툰계, 영상계 할 것 없이 기존 출판사, 웹툰 플랫폼, 영상제작사와 저작자 사이에 체결된 계약은 저작자의 저작물을 업자가 그대로 혹은 저작 의도를 유지한 채 변형을 가해 배포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AI 학습용’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람은 서로 상대의 것을 본 적 없이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인간은 상상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컨대 대본 생성형 AI는 반드시 누군가의 대본을 학습해야만 결과를 낸다. 게다가 그 대본은 한 인간이 품은 감정, 사상, 아이디어가 오랫동안 땀과 눈물이 응축된 노동을 통해 표현된 결과물이다. 그래서 사회가 지적재산으로 인정하고 보호해왔다. 만약, AI에게 인풋(Input)으로 섭취된 저작물들의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면, 거꾸로 AI가 낸 아웃풋(Output) 역시 지적재산으로 인정될 수 없다.

 

또한, 우리 저작권법에는 저작인격권이 있고 그 안에는 ‘동일성유지권’이 있다. 인간의 저작물에는 저작자의 의도가 투영되어 있으므로, 저작물이 활용될 때 반드시 저작자의 의도가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AI는 저작자의 의도에 대한 일말의 고려 없이 무작위로 여기저기서 저작물들을 끌어와 토막 낸 후 프랑켄슈타인 같은 조합물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저작물이 그런 무작위 조합물의 재료로 사용되는 것은 명백한 저작인격권의 훼손이다.

 

세계적 추세를 봤을 때도 과기정통부의 계획은 시대에 역행한다. 이미 챗GPT를 만든 오픈AI도 저작권 침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 제소된 상태다. 이런 상황임에도, 과기정통부는 AI가 섭취할 인간의 방대한 저작물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나 계획도 없이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라며 ‘AI와 디지털 기반의 미래 미디어 계획’을 발표했다.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가 그렸던 미래처럼 AI가 인간을 배제한 채 스스로 필요를 충족하는 세상이라도 온다는 것인가?

 

상상력의 과잉이든 상상력의 빈곤이든, 이런 괴이한 계획이 나오는 이유는 과기정통부가 창작자와 소통하지 않고 계획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의 보도자료에는 ‘콘텐츠 산업계’가 참여하는 의견 청취 과정을 여러 차례 거쳤다고는 했으나, 대체 어떤 창작자로부터 의견을 들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창작자는 ‘콘텐츠 산업계’의 일원이 아니란 것인가?

 

과잉 혹은 빈곤한 상상력이 품은 원대한 꿈은 용두사미로 그치거나 재앙이 되기 일쑤다. 과기정통부가 수백억 원의 혈세를 투입해 생성형 AI 사업을 추진할 때는 어떻게 하면 쓸모있는 AI가 탄생할까와 더불어 기존 창작자들에게 어떤 피해가 돌아가는지까지 살펴야 마땅하다. 그것이 국가기관의 균형감각이자 책무 아닌가.

 

이에 우리는 요구한다.

 

1. 과기정통부는 현실을 직시하고 세금으로 집행되는 예산이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것.

 

2. 이를 위해 각 창작 분야의 창작자 단체와의 대화에 즉각 나설 것.

 

 

2023년 9월 22일

 

문화예술노동연대,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웹툰작가노동조합, 창작자연대 창공(준), (사)한국독립PD협회, (사)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 (사)한국방송작가협회, (사)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사)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