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트 이명신 기자 |
올해 3월부터 게임이 법적으로 예술이 되었다. 애니메이션, 뮤지컬과 함께 게임도 예술에 포함하는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술의 범주는 계속 확장되는데, 예술의 방식은 어떨까?
지난 10월 문래동 예술공장에서 있었던 기획 전시 ‘세파리움(Separium): Monotypic Humans'은 게임의 형식을 빈 전시였다. 관객은 플레이어로서 전시(게임)에 참여한다. (관련기사 난해한 요즘 예술, 관람기)
게임이 예술에 포함되어 예술의 범주를 확장하는 것은 디지털 세대에게 너무 당연한 일이다. 범주의 확장은 불가피하게 전통예술의 비중을 줄이고, 따라서 예술의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생성형 인공지능이 가져올 게임 및 예술의 미래
지난 10월 25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사이버 루덴스 : 미래 게이밍, 테크놀로지, 미학의 토포스>라는 제목의 포럼이 3회에 걸쳐 열리고 있다. 이 가운데 2차 포럼은 '생성 인공지능, 게이밍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였는데, 여기에 뉴스아트가 참여해 게이밍을 포함한 예술의 미래를 살펴봤다.
전체 내용은 ▲인간에 의한 적절한 프롬프로 엔지니어링에 의해 인공지능은 게임(과 예술)의 지평을 넓힐 것. ▲창의성의 개념도 바뀔 것 ▲인공지능과 놀이하듯 겨룬 흔적이 작품이 되는 창작 방식이 나올 것 ▲재능이 없는 사람도 창작이 가능해질 것 ▲탐험이 곧 예술 등이었다.
협업과 집단창작 방식의 예술이 가속화 될 듯
이런 방식의 창작은 그동안의 "과대포장된 개인"이라는 진실을 드러낼 것이고 그리하여 나로부터 벗어나 창작이 즐거워질 것이라고도 했다. 협업과 집단창작 방식의 예술이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인해 더욱 민주적인 방식을 띨 수 있다는 것이다.
오영진 서울과학기술대 융합교양학부 초빙 조교수는 지난 6월 23일에 있었던 라이브퍼포먼스를 그 사례로 소개했다. '챗GPT 워'라는 이 행사는 2만원의 유료행사였음에도 순식간에 매진됐다. 3명의 엔지니어(혹은 예술가)가 각각 텍스트생성, 이미지생성, 사운드생성을 맡아 무대에서 생성형 인공지능과 대화하고, 관객은 인공지능이 내놓은 결과에 대하여 투표나 의견 제시를 통해 기여하고 개입하였다.
인간이 개입해야만 패턴을 깨고 확장된 결과물 생성
그에 의하면, 인공지능은 스토리가 무한히 갈라지게 할 수 있지만 스스로 내놓은 답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정합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인공지능은 모순된 상황에서는 (정반합이 어려워) 반반의 답을 내놓고, 표준적인 범주에서 머무는 경향이 강하다. 인간의 개입이 없다면 뻔한 결과, 뻔한 스토리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이런 생성형 인공지능을 자극하며 개입하는 활동을 '프롬프트엔지니어링'이라고 한다. 이것을 잘 할수록 생성형 인공지능은 기존의 패턴을 깨뜨리면서 우수한 결과물을 생성한다. 이는 기존의 창의성이나 예술성과는 다른 능력이다.
예술적 재능이 없어도 예술 활동 가능
이제 글쓰는 재주가 없더라도 인공지능을 창의적으로 또한 구체적으로 자극한다면 긴장감 넘치는 의외의 사건들로 구성된 스토리 작화가 가능하다. 그림 그리는 '기술'을 터득하지 않아도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지시를 잘 한다면 멋진 작품을 그려낼 수 있다. 작곡, 노래도 마찬가지다.
이는 지난 11월 8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립 50주년 기념 정책 심포지엄에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이진준씨도 이야기한 바 있다.
기술 및 AI의 발전... 장르적 가치의 시대는 이미 유효기간이 다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이 좋은 예술입니까?"라는 질문... 인문학적 소양이 결여된 예술가들은 창작자가 아니라 기술의 사용자에 불과... 미래의 예술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 예술적 담론을 형성... 지원... 해야 할 때... -- 이진준 교수, 참고기사 예술지원단체 통합 필요성 제기 by 아르코
엔지니어는 아티스트가 되고, 아티스트는 실직할 수도
융복합예술에서는, 전통적 개념의 예술인과 협업하는 '엔지니어'들도 이미 아티스트라고 불리운다. 오히려, 작품 구현이 가능한 인공지능으로 인해,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는 컨셉보드 단계 정도는 얼마든지 인공지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아티스트'들이 실직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기회이기도 하다.
김경중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개발과정과 이 거대언어모델(LLM)의 사용성을 소개하면서, 1인개발자나 독립개발자의 경우, 상위 수준의 작업만 사람이 하고 세부작업을 LLM에게 맡기는 방식의 작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이 경우 다양성이 낮아질 수 있고, 특히 창작자에 대한 저작권 및 보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이것을 거대 콘텐츠 회사에서 악용할 경우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은 지난 10월 148일만에 종료된 헐리우드 파업의 한 원인이었다.
헐리우드 파업은 3.5% 임금 인상과 넷플릭스 등에 재상영될 때의 분배금 인상 등 처우개선안과 함께, AI 사용규칙에도 합의함으로써 종결되었다. AI 사용규칙에는 작가가 이미 작성한 시나리오를 AI가 편집할 수 없다던가, 작가가 AI의 결과물을 각색하더라도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간주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이 포함되었다.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에 더 빛을 달하는 근본적인 물음
예술은 무엇인가? 예술을 향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이상혁 강의교수는, 인류가 인공지능을 만드는 이유는 그저 인간을 닮은 것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이상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인공지능은 인간 이상의 반복작업이 가능하고 인간 이상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하다. 이를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는 게임분야를 예로 들었다. NPC(플레이어가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 정해진 역할만 수행)에 생성형 인공지능의 자율성이 부여되면 게임의 예측가능성으로 인한 지루함도 줄어들고, 레벨과 무관하게 항상 몰입하여 플레이할 수 있다. 하지만 NPC가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된다면 유저의 성취감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주도권을 빼앗기고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이는 목표를 쫓아가는 것을 사람들은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예측불가능'하게 바뀌는 정책에 가장 분노한다.)
따라서 생성형 인공지능을 게임에 적용하려면, 사람이 게임에서 얻고자 하는 것과 게임에서 추구하는 재미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욕구와 본질을 기반으로 한다면, 생성형 인공지능이 적용된 게임의 체계는 기존과 전혀 달라질 수도 있다.
이 문제의식은 예술 전반으로 보편화시킬 수 있다. 엄청난 기술적 발전 앞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 향유자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예술을 찾는가' 하는 질문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결국 눈부신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에게 그동안 잊고 있던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 듯하다. 답변하지 않을수 없도록 밀어붙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