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오 작가 | 길은 조랑말체험공원 입구 맞은편에서 시작되어 왼쪽으로 가면 큰사슴오름을 만난다. 노루를 만났다. 아니, 노루가 나를 만났다. 큰사슴오름을 지나면 따라비오름이 나온다. 오름의 여왕, 따라비오름. 세 개의 굼부리(분화구)를 품고 있다. 갈대가 피면 선명하게 드러나는 갈래길이 더욱 운치있다. 큰사슴 오름과 따라비 오름을 연결하는 졸븐갑마장길은 말 키우는 곳에 있는 길이다. 갑마란 우수한 말이란 뜻이며 이 길은 원래 말이 다니던, 아니 말이 낸 길이다.
김수오 작가 | 특별한 오름, 높은 오름. 높은 오름 가는 길은 구좌공설공원묘지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죽은 자들을 내려다보며 지켜주고 있는 듯한 오름. 구좌공설공원묘지를 가로질러 가파른 길을 오른다. 송당에 있는 오름 중 가장 높아서 높은 오름. 다랑쉬, 동검은이오름, 백약이로 이어지는 조망이 예술이다. 하늘에 오르는 듯 능선에 오르면 잡목이 별로 없어 선명하게 드러나는 둥근 분화구. 오름은 자유로이 방목되는 제주말의 보금자리. 운이 좋으면, 나즈막한 분화구 주변에서 한가롭게 쉬고 있는 말을 볼 수 있다. 어느날 조우한 망아지의 백골. 바람과 햇살에 서서히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 그렇게 높은오름은 삶과 죽음을 한데 아우르며 우뚝 서 있다.
김수오 작가 | MZ들 사이에서 인생샷 건질 수 있다고 소문난 바리메 오름. 비포장 도로가 섞여 있고 교행하기 어려운 좁은 길을 가야 한다. 바리매 가는 길, 어디쯤에서 찍으면 인생샷이 나올까? 인생샷으로 소문난 초지는 작물을 키우는 사유지라 들어가면 안된다. 거기 아니라도 멋진 곳 많으니까 삼가하자. 굼부리(분화구)가 바리 모양이라 하여 바리메 오름. 바리는 스님 밥그릇이라고도 하고 여성들 밥그릇이라고도 한다. 오름에 오르기 전부터도 멋진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지만, 올라가면 더 좋다. 바리메오름은 해송으로 가득한 곳. 남쪽은 숲이고 북쪽은 초지, 동쪽은 족은바리메오름, 서쪽은 큰바리메오름이다. 비온 뒤 솔향기 맡으며 솔그늘에 들꽃 영접 받고 올라보는 것도 좋다. 30분이면 오르는 오름 정상. 철쭉 군락이 있는 곳은 북봉,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쪽이 남봉이다. 북봉에서는 삼방산을 볼 수 있고, 남봉에서는 한라산 백록담 북면 부악(분화구벽)의 위용을 볼 수 있다. 남봉과 북봉 사이에는 움푹 패인 땅, 백록담처럼 둥근 모양의 굼부리가 보인다. 봄이면 흐드러진 철쭉이 무성한 해송을 배경으로 더욱 아름답다.
김수오 작가 |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큰노꼬메, 작은 노꼬메. 큰노꼬메는 높이 800미터가 넘기에 오르려면 제법 가파른 길도 만난다. 한라산 가는 기분으로 오를 수 있는 노꼬메 오름, 겨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사진으로만 남았다. 가파른 길에 나무도 우거져 있어서일까, 옛날에는 사슴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나무 계단과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소나무와 억새풀이 장관이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이고, 노로오름, 한대오름, 바리메오름, 다래오름, 괴오름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벌써 저녁 어스름, 오름에서의 노을은 언제나 옳다.
김수오 작가 | 수망(水望)리에 있는 물영아리오름, 문헌상 한자로는 수영악(水盈岳), 수영악水靈岳), 수망악(水望岳)이다. 오름의 정상 분화구에는 늘 물이 고여있어, 우리나라 최초의 습지보호구역이자 람사르습지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소를 찾다 지친 젊은이 앞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소값으로 오름 꼭대기에 큰 못을 만들어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물이 고이지 않는 이 섬의 오름 꼭대기에 항상 물이 있는 호수가 있다니, 그저 전설로만 들리지 않는다. 오름의 둘레길은 '물보라길'이라 하고, 그 안에 소몰이길, 초원길, 오솔길, 삼나무숲길, 잣성길 등 다양한 길이 있다. 소몰이길이라니! 물이 가득해 말 키우기도 좋으니 수망리 공동목장이 있어서다. 버섯, 나무, 뱀, 새, 개구리, 도룡뇽, 오소리 ,노루 등 풍성한 생태계인 물영아리오름은 아름다운 제주를 더 아름답게 해 주는 생명의 근원이다.
김수오 작가 | 폭설 속으로 사라진 말은 해가 지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함께 누비던 들판 구석구석 살펴도 그 많은 말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먼 산으로 숨어버린 모양이다. 2월 첫째날 다시 찾은 벌판, 한바탕 달려댔는지 눈밭은 이미 다 헤쳐졌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걸까? 내리쬐는 빛과 눈밭에 반사된 빛을 한껏 즐기며 아무 일 없었던 듯 벌판을 거닌다. 다음 겨울을 기다리며.
김수오 작가 | 비행기가 뜨지 못할 정도로 눈이 온 날, 말들이 사라졌다. 몇 년을 드나든 곳인데도 찾을 수가 없다. 멀리 보이는 저 산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눈덮인 무덤만 들판에 홀로 남았다.
김수오 작가 | 제주에는 오름이 아닌 산이 다섯 개 있다. 높이 순으로 보면 한라산, 산방산, 영주산, 청산(성산일출봉), 그리고 두럭산이다. 영주산은 오름이 몰려 있는 동쪽 제주의 관문이다. 300미터가 넘는 높이지만 부드럽고 완만하다. 오르는 길은 잔디로 덮여 있지만 소나무숲과 삼나무숲도 품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영주'라는 말은, 원래 제주를 뜻하고 한라를 뜻했다. 하지만 이제 영주산은 이름에 연연하지 않고 몸을 낮춰 동쪽을 지킨다. 노을진 오름능선에 나무 하나 홀로 밤 지새울때 바람슷긴 구름 사이로 북두칠성 반짝인다.
김수오 작가 | 웬만한 산보다 높은 해발 1700미터 윗세오름. 붉은오름, 누운오름, 족은오름을 아우르는 통칭으로 '위에 있는 세 오름'이라는 뜻이다. 윗세오름 1700미터가 넘는 곳에는 '밭'이 있다. 선작지왓이라는 자갈밭이다. 제주 말로, 작지는 자갈이고 왓은 밭이다. 눈이 오면 대평원처럼 보인다. 선작지왓은 봄이면 산진달래로 장관이다. 초록의 누운향나무, 백리향, 시로미 등이 산진달래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추울 수록 더욱 기대되는 봄!
김수오 작가 | 제주 오름에서 새 해를 기다립니다. 어두운 새벽 구름 뒤로 해가 느껴집니다. 순식간에 구름빛이 변합니다. 해가 떠오르니 검은 구름도 밝게 빛납니다. 바짝 다가가서 보면, 구름은 여전히 검지요. 구름이 검을 수록 해는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빛납니다. 해가 더 높이 오르니 아름다운 오름 군락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구름은 여전하지만, 오히려 조화를 이룹니다. 뉴스아트 독자 여러분, 먹구름보다 높이 솟아 모든 아름다운 것을 비추는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