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비의 절반이 되돌아왔다 김해와 영주와 군산과 안동에 아파트를 지은 시행사가 네 현장 모두 법이 정한 대로 미술작품을 설치하고 설치비로 4억 7,285만 원을 썼는데, 그 가운데 2억 4,696만 원이 시행사 실질 대표에게 되돌아왔다. 방식은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이 2013년 2월 21일 선고한 2012고합35 사건의 판결문에 적혀 있다. 대표는 직원에게 지시해 두 조형연구소가 실제 설치비용보다 부풀린 계약서를 쓰게 하고 그 차액을 자신에게 돌려주도록 했다. 김해 현장은 5,800만 원을 지출하고 2,800만 원을, 영주는 1억 3,004만 원을 쓰고 7,093만 원을, 군산은 2억 1,203만 원을 쓰고 1억 2,525만 원을, 안동은 7,276만 원을 쓰고 2,276만 원을 돌려받았다. 되돌아온 비율은 현장마다 31퍼센트에서 59퍼센트 사이였고 넷을 합치면 52.2퍼센트여서, 법이 미술에 쓰라고 정한 돈의 절반이 미술이 아닌 곳으로 갔다. 대구고등법원은 2015년 12월 10일 이 네 건을 모두 유죄로 유지하면서 대표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돌려받은 돈은 뇌물이 아니라 횡령으로 처리됐다. 설치비를 낸 쪽이 시행사 법인이었으므로 부풀린 차액을 대표 개
태워진 칠십칠 미터 1989년에 그림 한 점이 불탔다. 길이 77미터, 갑오농민전쟁부터 5·18까지를 담은 걸개그림이었고, 제목은 「민족해방운동사」였다. 전국 다섯 개 예술단체와 서른 개 대학 예술패 회원들이 석 달에 걸쳐 함께 그렸다. 이 그림이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여러 매체가 같은 문장으로 전하는데, 출정식에서 경찰과 백골단에 압수돼 소각됐다는 것이다.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태워졌는지를 적은 1차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슬라이드뿐이었다. 미술사학자 최열이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전시 때 찍어둔 필름이 보존돼 있었고, 서른일곱 해 뒤인 2026년 5월 그 필름을 바탕으로 이 그림이 다시 나타났다. 광주시가 개관한 미디어아트 전시공간에서 디지털과 인공지능 기술로 재창작한 영상 작품으로였다. 복원에는 석 달이 걸렸다. 77미터짜리 천 그림이 사라지고, 그것을 찍은 슬라이드가 남고, 그 슬라이드에서 영상이 만들어졌다. 걸개그림이 겪는 일이 대체로 이런 식이다. 이 그림 때문에 사람이 감옥에 갔고, 그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다. 1990년 9월 25일 선고된 90도1586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이다. 판결문은 여러 쟁점을 다루는데, 그중 하나가 걸개그
새벽 다섯 시 2026년 2월 27일 새벽 다섯 시에 화가 황재형이 죽었다. 향년 74세. 유족과 가나아트센터에 따르면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최근 병원에 입원했고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한다. 부고를 실은 신문들이 그를 부른 이름은 거의 같았다. 광부 화가, 그리고 한국 리얼리즘 미술의 대표. 1952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1982년 중앙대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고, 재학 중에 같은 대학의 박흥순·전준엽 등과 미술 그룹 '임술년'을 만들었다. 주목을 받은 것은 1981년의 「황지330」인데, 황지 탄광 매몰 사고로 죽은 광부의 작업복 한 벌을 그린 높이 2미터가 넘는 그림으로 중앙미술대전 장려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태백으로 갔다. 그림을 그리러 간 것이 아니라 살러 간 것이었고, 강원도 태백의 탄광촌에서 일용 노동자로 일하며 사십 년을 그렸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4월 30일부터 8월 22일까지 개인전 「회천(回天)」이 열렸다. 작품 65점으로 첫 개인전 이후 사십 년 작업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였다. 전시장에는 초기의 탄광촌 작업복 연작부터 후기의 머리카락 초상까지 걸렸다. 나라와 자식에게 자신을 내준 은퇴한 광부를 그린 「아버지의 자리
파운드당 4센트 1944년 3월 6일 자 『타임』에 실린 기사는 뉴욕 플러싱의 정부 창고 이야기로 시작한다. 축축한 지하 납골당 같은 그곳에 낡은 화포 더미가 쌓여 있었는데, 어느 날 공문 한 다발에 따라 트럭 한 대가 후진해 들어와 그것을 맨해튼으로 실어갔다는 것이다. 기사는 그 화물이 무엇이었는지 곧바로 밝힌다. "거기에는 WPA가 어쩐 일인지 '배정 불가'로 판정한 수천 점의 성실한 이젤화가 있었다. … 트럭 위에서 흔들리던 그림 더미들은 폐품으로 팔렸다." 미국 연방정부가 예산을 들여 화가를 고용하고 그리게 한 그림들이다. 한 달 뒤인 4월 17일 『라이프』가 「WPA 미술의 종말」이라는 기사로 그 뒷이야기를 전하면서 가격이 처음 활자가 됐다. 롱아일랜드의 폐품상이 그 그림들을 파운드당 4센트에 사들였다는 것이다. 그림은 거기서 한 번 더 손을 바꿨는데, 커낼 스트리트에서 골동품 가게를 하던 헨리 C. 로버츠가 곰팡이 핀 꾸러미를 넘겨받아 뒷방에 쌓아두자 화상들이 몰려와 한 점에 3달러에서 5달러씩 주고 수백 점을 낚아챘다. 『타임』은 그 그림들이 "꽃 그림, 시골 풍경, 준(準)추상, 고가철도가 있는 거리 풍경"이었고 "어떤 것은 유능했고 어떤 것은
명함에 「재사」라고 새겨 넣는 자 1857년 파리에서 『리얼리즘』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 저자는 쿠르베의 친구이자 그 무리의 대변인 노릇을 하던 비평가 샹플뢰리인데, 정작 그 책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다. "스스로를 리얼리스트라 부르는 자는 누구든, 명함에 이름 다음에 「재사(才士)」라고 새겨 넣는 자만큼이나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책 제목으로 그 말을 쓴 사람이 서문에서 그 말을 쓰는 사람을 조롱한 것이다. 같은 서문에서 그는 -이즘으로 끝나는 말들을 "과도기의 말로서 딱하게" 여긴다면서,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인기를 얻을수록 그것이 오래 지속될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라고 썼다. 자기가 제목으로 삼은 말의 수명을 스스로 깎아내린 셈이다. 이유도 밝혀두었다. "나는 유파를 좋아하지 않고, 깃발을 좋아하지 않고, 체계를 좋아하지 않고, 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리얼리즘이라는 작은 교회 안에 나를 가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 설령 내가 그 교회의 신이 된다 해도." 그는 그 말의 수명을 삼십 년으로 봤다. 비평가들이 새로운 세대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려고 발명한 무기이지만 "그것을 쓰는 자를 상처 입히는 종류의 무기"이며, 삼십 년을 넘기지 못할 과도
이 도시는 왜 존재하는가 1938년 10월 17일, 워싱턴의 공무원 로이 스트라이커가 펜실베이니아의 탄광 도시 셰넌도어로 떠나는 사진가 셸던 딕에게 편지를 썼다. 첫 문장부터 카메라를 만지지 말라고 한다. 걷거나 차로 몇 바퀴고 돌면서 사람들과 상점을 보고 "주유소와 술집에서 귀를 기울이"라는 것인데, 그렇게 하루를 보낸 다음 호텔로 돌아가 한 가지 질문에 답을 써 보라고 했다. "이 질문에 답을 써 보십시오. '이 도시는 왜 존재하는가?' 그것을 한 뒤에야 상세한 촬영 대본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나무랄 데 없는 취재 방법론인데, 편지는 곧 답을 미리 정해주는 쪽으로 넘어간다. 스트라이커는 자기가 그곳에 가봤을 때 무엇을 보았는지 늘어놓는데, 산간 계곡 아래로 내려앉은 도시이고 어디를 보아도 "인간이 만든 황폐, 폐석 더미, 헐벗은 언덕, 더러운 거리"라는 것이다. 그러고는 사진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까지 지정한다. "다시 말해 이곳은 탄광 도시이고, 당신 사진은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 이곳은 교회가 지배하는 장소입니다. … 이곳은 번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술집과 거리에서 하릴없이 서성입니다. 당신은 이 실업의 감각을 잡아내야 합니다."
그림을 감정한 사람 1998년 3월 13일, 대법원 제3부는 유화 한 점을 이렇게 읽었다. 그림 상반부는 북한이며, 나무숲 오른쪽 아래에 그려진 산은 북한에서 '혁명의 성산'으로 일컬어지는 백두산이고, 꽃이 만발한 곳의 초가집은 김일성 생가를 암시한다. 그 아래에서 농민들이 오곡과 풍년을 경축하며 춤을 추는 장면은 결과적으로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그림 하반부는 남한이고, 농부가 황소로 써래질을 하며 이티(E.T)와 람보와 양담배와 코카콜라와 레이건과 나카소네와 전두환을 남해 바다로 쓸어버린다. 이 장면은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일으켜 연방제 통일을 실현한다는 북한 공산집단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결론은 한 문장이었다. 이 그림은 "반국가단체인 북한 공산집단의 활동에 동조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물"이다. 이 판독이 어디서 왔는지, 지금은 알 수 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2004년에 채택한 결정문에 반대신문 결과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반대신문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그 감정인은 전직 북한 공작원이자 전직 그림 교사였으며 미술에 관한 그 이상의 전문적 식견은 없었다. 그는 경찰청 대공전술연구소에 고용되어 있었고,
더불어민주당 김현 의원(경기 안산시을)이 지난 7월 6일 대표발의한 두 건의 법률 개정안이 온라인상에서 "혐오 및 범죄조장 음원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며 검열 논란을 낳고 있다. 그러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등재된 법안 원문을 확인한 결과, 실제 규율 범위와 조문 구조는 유포되고 있는 서술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현 의원, 두 법안 동시 발의…소관위 다르고 형사처벌 조항 없어 먼저 분명히 해둘 점은, "혐오 및 범죄조장 음원방지법"이라는 명칭의 단일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현 의원이 발의한 것은 ①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219775)과 ②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219778), 두 개의 개정안이다. 같은 날 같은 10인이 공동발의했지만 소관 상임위는 서로 다르다. 음악산업진흥법 개정안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관이며, 두 법안 모두 7월 7일 각 상임위에 회부돼 현재 입법예고 기간 중이다. 아직 상임위 상정조차 되지 않은 초기 단계다. 규율 대상은 "혐오 음악 전반"이 아니라 "청소년이 만든 유해 음원
뉴스아트 편집부 | 지방자치단체가 콘서트장 대관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가수와 소속사는 물론, 공연을 예매했던 관객들의 피해까지 인정하는 이례적인 판결을 내렸다. 공공 무대를 볼모로 한 지자체의 '서약서 요구' 등 무리한 행정권 남용에 사법부가 엄중한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913단독(박남준 부장판사)은 가수 이승환과 소속사 드림팩토리, 예매자 100명이 구미시와 김장호 구미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구미시는 원고들에게 총 1억 2,500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구미시가 이승환에게 3,500만 원, 소속사에 7,500만 원, 예매자 100명에게 각각 15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당초 원고 측이 청구한 총 2억 5,000만 원(이승환 1억 원, 소속사 1억 원, 예매자 각 50만 원) 중 절반 상당을 법원이 인용한 것이다. ■ "정치적 언행 말라" 서약서 거부하자 공연 이틀 전 전격 취소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24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미시는 12월 25일 구미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이승환의 데뷔 35주년 콘서트 '헤븐(Heaven
예술인들이 스스로 조성한 기금을 바탕으로 신용협동조합의 대출 인프라를 활용하는 새로운 상호부조 금융 모델이 제도적 기반을 갖추게 됐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이사장 서인형)은 22일 신용협동조합중앙회(회장 고영철), 태릉신용협동조합(이사장 백석빈)과 함께 '예술인상호부조대출' 운영을 위한 3자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은 예술인 당사자 조직이 조성한 기금과 신협의 오랜 생활금융 인프라를 결합해, 예술인 조합원이 긴급한 생계자금이 필요할 때 고금리 대출로 내몰리지 않고 제도권 금융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공식화한 것이다. 예술인이 예술인을 돕는 기금, 신협 대출로 연결 협약의 핵심은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이 자체 조성한 '예술인상호부조대출기금' 이다. 이 기금은 태릉신용협동조합이 한국스마트협동조합 조합원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전용 대출상품의 대손충당금 준비금으로 활용된다. 대출 과정에서 연체 등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 기금이 대위변제 재원이 되는 구조다. 다시 말해 예술인들이 상호부조의 원리로 모아둔 기금이 버팀목이 되고, 그 위에서 신협이 실제 대출 심사와 실행을 담당하는 분업 모델이다. 예술인 입장에서는 불안정한 창작 소득 이력이 금융권 심사의